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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경종지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이 의주까지 몽진하는 데 참여하였다. 1597년(선조 30) 임실의 수령으로 재직 중, 이 고을이 새로 병화를 겪어 흩어진 백성들을 소집하고 창고 곡식을 수습하는 일을 결코 예사 사람에게 위임할 수 없는데, 수령된 자의 사람됨이 용렬하여 탕패한 고을을 다스리기에 적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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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곡부). 자는 희성(希聖)·응성(應聖), 호(號)는 휴암(休巖). 창원공씨의 시조인 공소(孔紹)의 5대손이자, 공숙(孔俶)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공의달(孔義達)이다. 어머니는 죽산 박원인(朴元仁)의 딸이며, 처는 파평 윤영세(尹永世)의 딸이다. 공서린은 1507년(중종 2) 진사시를 거쳐 같은 해에 급제하였다. 낭관과 사간원 정언으로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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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곡부). 자(字)는 사홍(士弘)·성지(星之). 공서린(孔瑞麟)의 9대손이며, 공원인(孔源仁)의 아들이다. 공윤항은 가세가 몹시 빈곤하였으나, 1792년(정조 16) 정조가 초계문신(抄啓文臣)을 직접 시험하는 과강(課講)과 일차유생의 전강을 실시할 때 학문이 뛰어나다고 해서 왕명으로 특별히 전시를 볼 수 있었다. 1794년 알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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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무신. 1576년(선조 9) 전라도우수사, 1578년 경상도병마절도사, 1591년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방어사로서 용인·금산(錦山) 전투에 참가하였으나 패주, 사헌부로부터 전란 이후 단 한 번도 용감하게 싸움을 못한 졸장(拙將)이라 하여 탄핵을 받았다. 1595년 우변포장(右邊捕將)·행호군(行護軍)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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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현풍. 호는 석천(石川). 시호는 문헌(文憲).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곽돈효(郭敦孝)이며, 어머니는 조운경(趙雲卿)의 딸이다. 곽원진은 문과에 급제하고 1306년(충렬왕 32) 총랑(摠郞)으로서 원 황제의 생일을 축하가기 위한 성절사로 파견되었다. 당시는 고려가 정치적으로 몽고의 간섭을 받던 시기였다. 여몽관계가 중요했던 시기에 곽원진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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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으로 유배된 문신. 황보인(皇甫仁)[?~1453]의 사위이며, 홍원숙(洪元淑)의 동서이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한명회(韓明澮)[1415~1487] 등과 함께 문종의 유지를 받드는 황보인·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자 권은은 용인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의금부(義禁府)에서 백호(百戶)를 보내어 쫓아가서 체포하여 변방에 안치하도록 건의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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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하(景賀), 호는 창백헌(蒼白軒)·남애(南厓)·계형(繼亨)이다. 증조부(曾祖父)는 권항(權伉), 할아버지는 권속(權謖), 아버지는 권수(權𢢝)이다. 1710년(숙종 36) 생원(生員)이 되고, 1713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홍문관에 등용되어 정자(正字)가 되었다. 1716년 검열, 이듬해 대교(待敎)가 되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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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백심(伯深), 호는 운소(雲巢).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의 손자이며, 형조판서 김효대(金孝大)의 아들이다. 김사목은 문음(文蔭)으로 관직에 나간 뒤 김제군수를 거쳐, 1772년(영조 48)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 부교리, 보덕(輔德), 승정원동부승지를 거쳐 1774년에는 승지가 되었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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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사백(斯百), 호는 식암(息庵)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육(金堉)이고, 아버지는 병조판서 김좌명(金佐明)이다. 1657년(효종 8) 진사가 되었으며,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장원하여 전적이 된 후 이조좌랑·정언·지평·부교리·수찬·헌납·교리 등을 차례로 역임하고, 1674년 겸보덕(兼輔德)에 이어 좌부승지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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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김호(金灝)이다.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였고, 1696년(숙종 22)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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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지비옹(知非翁)이다. 할아버지는 한성소윤(漢城少尹) 김근(金近), 아버지는 첨정 김훈(金薰)이며, 어머니는 진천(鎭川) 송씨 송학(宋翯)의 딸이며, 부인은 부사 이탁(李鐸)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다음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여러 관직을 거쳐 수찬, 사헌부지평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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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구경(久卿), 호는 척약재(惕若齋). 아버지는 대광(大匡) 김정(金鼎)이다. 아들은 김처(金處)와 김허(金虛)이다. 아들 김처는 아버지가 명나라에서 죽자 미쳤으며, 김허는 벼슬이 부정(副正)에 이르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1371년(공민왕 20)에 실시된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로로 나섰다. 이후 전교주부(典敎注簿)가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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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계림군 김균(金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찰방 김성진(金聲振)이다. 처는 정응규(鄭應奎)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 성균관에 있을 때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모하자 몇몇 유생들과 함께 이를 비판하는 복합상소를 올려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하옥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1627년 전주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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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회정당(晦靜堂)이다. 증조부는 김덕수(金德秀), 할아버지는 김비(金棐), 아버지는 김흥우(金興宇)이고, 외조부는 조희맹(趙希孟)이다. 아들은 김좌명(金佐明), 손자는 김석주(金錫胄)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급제하고 이후 성균관에서 수학했다.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16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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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또는 소미산인(少微山人). 일찍이 용인 탁영봉(濯纓峰)의 한림대에서 김구(金龜) 등과 학문을 하였다. 그에 따라 봉우리도 김일손의 호를 따 탁영봉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1486년(성종 17)에 생원이 되었고, 같은 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가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가 되었다가 곧 정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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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학광(學光). 증조는 지중추부사 김영유(金永濡), 할아버지는 첨정 김훈(金薰), 아버지는 김세필(金世弼)이며, 외조는 이탁(李鐸)이다. 김저는 1539년(중종 34) 문과에 급제하고 홍문관 박사, 이조좌랑을 지냈다. 1545년(명종 1)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중형을 받고 안동으로 유배되었으며, 1547(명종 2)년 벽서(壁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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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광교산 전투에 참여한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수부(秀夫). 할아버지는 전설사별좌(典設司別座) 김영(金瑛)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두남(金斗南)이며, 어머니는 도호부사 김희필(金希弼)의 딸이다. 1608년(선조 41)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황해도·경상도·함경도의 병영에 근무하였다. 1617년(광해군 9) 인동부사가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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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숙진(叔珍), 호는 눌암(訥庵). 조부는 김려(金濾), 아버지는 형조참의 김언침(金彦沈)이다. 1567년(명종 22)에 진사가 되고, 1568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1570년에 검열(檢閱)이 되고, 이후 대교·봉교·전적·형조정랑·검상·사인·이조정랑 등의 관직과 지평·집의·정언·헌납·사간·수찬·교리·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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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도원(道源).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거주하였다. 1759년(영조 35) 정시(庭試)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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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평숙(平叔). 1735년(영조 11) 식년시(式年試)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찰방(察訪)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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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중(子中), 호는 낙애(樂涯). 1691년(숙종 17) 증광시(增廣試) 문과에 갑과(甲科) 제2위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지사(知事)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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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또는 미재(美齋). 개국공신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남식(南烒)이고, 아버지는 현령 남일성(南一星), 어머니는 권박의 딸이다. 송준길(宋浚吉)[1606~1672]의 문하에서 수학, 1651년(효종 2)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5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가주서·전적·사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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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자빈(子彬)이다.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승지 남언순(南彦純)이고 아버지는 부호군 남타(南柁)이며, 외조는 장사랑 현덕형(玄德亨)이다. 남구만(南九萬)의 조부이다. 부인은 연산 서주(徐澍)의 딸이다. 남식은 문음(門蔭)으로 집현전참봉을 배수한 이후, 사옹원봉사·장악원직장·사복시주부를 지냈다. 외직으로 무주현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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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개국공신.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 남천로(南天老),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남을번(南乙蕃)이며, 형은 영의정 남재(南在), 아우는 우정승 남지(南贄)이다. 1374년(공민왕 23) 성균시에 급제, 1380년(우왕 6) 사직단직(社稷壇直)이 되고 이어서 삼척지군사(三陟知郡事)가 되어 왜구를 격퇴,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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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무신. 기개와 호기의 대장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로 출생지가 분명하지 않으나, 『용인읍지(龍仁邑誌)』 ‘충효열 인물’ 조항 중에 “용기가 매우 뛰어났으며 이시애(李施愛)를 토벌, 건주위(建州衛)를 정복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라는 기록이 있어 용인 출신임을 가늠하게 한다.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태종의 부마인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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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 자는 중휘(仲輝), 호는 의졸(宜拙). 좌의정 남지(南智)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강원도 평강현감 남식(南烒)이다. 어머니는 연산서씨 증참판 서주(徐澍)의 딸이다. 형은 남일성(南一星)이다. 부인은 청송심씨 감역 심지함(沈之涵)의 딸이다. 아들이 요절하여 남수만(南受萬)으로 뒤를 이었다. 딸이 둘 있는데 장녀는 우의정 민진장(閔鎭長)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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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덕휘(德輝), 호는 의졸(宜拙). 부친은 남식(南烒)[1589~1650]이고, 동생은 남이성(南二星)[1625~1683], 아들은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다. 평소에는 어버이를 공경하는 데 힘을 썼고, 관직에 종사할 때는 절용(節用)을 우선으로 하였으며, 재물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1656년(효종 7) 내시교관(內侍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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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한 조선 후기 무신. 본관은 전주이며,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류익(柳翊),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서 4남 중 막내로 1651년 용인에서 출생하였다. 류문수는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여 1682년 영등만호(永登萬戶), 1685년(숙종 11) 토산현감(兎山縣監)을 역임하였다. 1698년(숙종 24)에는 보성군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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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경노(景魯). 할아버지는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낸 평숙(平叔) 목천수(睦天壽)이고, 아버지는 공집(公集) 목회경(睦會敬)이다. 1747년(영조 23)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61년(영조 37)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사직서령(社稷署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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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원(景園), 호는 황사(黃史), 사호(賜號)는 지당(芝堂)이다. 증조부는 민백흥(閔百興), 할아버지는 민상섭(閔相燮), 아버지는 민치오(閔致五), 외조부는 김원식(金元植)이고, 아들은 민영소(閔泳韶)다.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합격한 뒤, 명성황후가 왕비로 책립되자 중용되기 시작하여 1867년(고종 4) 이조참의로 등용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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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현감 민치서(閔致敍)의 아들이며, 민영준(閔泳駿)의 아버지이다. 민두호는 1880년(고종 17) 황주목사(黃州牧使)를 지냈으며, 1882년 여주목사(驪州牧使)에 재임하였다. 1886년에는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춘천부사에 재임하였으며 독련어사(督鍊御史)의 역을 맡기도 하였다. 행정구역이 개편된 뒤 춘천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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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복경(復卿). 시호는 충정(忠正). 민치구(閔致久)의 아들로, 민치록(閔致祿)에게 입양되었으며,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오빠이다. 1860년(철종 11) 명릉참봉에 임명되었고, 1864년(고종 1)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66년 여동생이 왕비로 책봉되자 중용되어 이조참의, 1867년 호조참판에 임명되었다. 1872년 형조판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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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민두호의 아들이다. 고종(高宗)[재위 1864~1907] 때 민씨 세도의 거두였고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선혜당상(宣惠堂上) 및 통위사(統衛使)의 직위에 있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있는데 비에 새겨진 글의 내용으로 보아 그가 선혜당상으로 있을 당시, 용인 고을에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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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문약(文若), 호는 계정(桂庭). 호조판서 민겸호(閔謙鎬)의 아들이다. 백부(伯父)인 여성부원군 민태호(閔泰鎬)에게 입양되었다. 1877년(고종 14)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으며, 이듬해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정자(正字)·검열(檢閱)·설서(說書)·수찬(修撰)·검상(檢詳)·사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1881년 동부승지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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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 자는 사원(士元), 호는 섬촌(蟾村)·정암(貞庵)이다.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의 손자이고, 문충공(文忠公) 진후(鎭厚)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연안이씨(延安李氏)로 현감 이덕로(李德老)의 딸이다. 1714년(숙종 40)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권상하(權尙夏)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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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보(聲甫), 호는 오헌(梧軒)이다. 증조부는 민광훈(閔光勳), 할아버지는 민시중(閔蓍重), 아버지는 이조판서 민진주(閔鎭周)이다. 외조부는 정상징(鄭尙徵), 부인은 조태동(趙泰東)의 딸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1715년에는 주부·정랑에 올랐다.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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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대수(大受), 호는 노봉(老峯)이다. 증조부는 민여건(閔汝健), 할아버지는 민기(閔機), 아버지는 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 이광정(李光庭)의 딸이다. 부인은 신승(申昇)의 딸이고 아들은 민진장(閔鎭長), 형제는 민시중(閔蓍重)·민유중(閔維重)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거주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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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유(聖猷), 호는 단암(丹巖)·세심(洗心)이다. 증조부는 민기(閔機), 할아버지는 민광훈(閔光勳), 아버지는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이다. 외할아버지는 송준길(宋浚吉), 부인은 윤지선(尹趾善)의 딸이다. 또한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오빠이자 우참찬 민진후(閔鎭厚)의 동생이다. 아들은 민형수(閔亨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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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 자는 치구(稚久). 증조부는 민기(閔機), 할아버지는 민광훈(閔光勳), 아버지는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남이성(南二星)의 딸이고, 외할아버지는 홍처윤(洪處尹)이다. 1686년(숙종 12)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함으로써 조(祖)·부(父)·자(子) 3대가 장원하여 ‘삼세문장(三世文壯)’이라 일컬어졌다. 장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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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시호는 효헌(孝獻). 민태현(閔泰顯)의 아들이다. 문음(文蔭)으로 청하현감(淸河縣監)을 지내다가 1885년(고종 22) 9월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등제한 뒤 홍문관부수찬·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거쳐 1887년 9월 사간원대사간에 임명되었다. 사간원 재임시 여러 차례 직간(直諫)을 올리고 대사간을 사임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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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회부(晦父). 1455년(세조 1) 현감으로 있으면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60년(세조 6)에 용인현(龍仁縣)에 현령(縣令)으로 부임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합하여 용인현이라 하였으며, 이때부터 현령이 임명되었겠지만 기록에 전하는 것이 없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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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초명은 박승업(朴承業), 자는 응휴(應休), 호는 암수(巖叟)·추탄(秋灘). 박은(朴誾)의 증손이다.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장령·사간원정언을 지냈다. 1599년 대사헌 홍여순(洪汝諄)을 탄핵·파면시켰으나, 뒤에 그가 다시 기용되자 사헌부집의 김신국(金藎國), 사간원사간 송일(宋馹) 등과 함께 파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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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회헌(晦軒). 고려에서 정승을 지낸 박전지(朴全之)의 고손이며, 할아버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며, 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고,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딸이다. 아들은 영의정 박원형(朴元亨)이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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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만기(萬基).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박환(朴煥)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부안임씨(扶安林氏)이다. 박세성은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1년(효종 2)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관을 거쳐 홍문관정자·예문관검열·봉교 등을 역임하였다. 1653년 겸설서(兼說書)·전적·감찰·정언 등을 역임하고, 그 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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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남계(南溪)이다. 아버지는 교리(校理) 박의(朴猗)이며, 부인은 원두추(元斗樞)의 딸이다. 성균관 유생 시절에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주장, 효종의 꾸지람을 받자 과거를 포기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 1차 예송논쟁(禮訟論爭)에서 기년복(朞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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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지구(之衢), 호는 만절당(晩節堂). 증조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고, 할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며, 아버지는 병조참의를 지낸 연흥군(延興君) 박고(朴翶)이다.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따님이다. 아들은 찬성사(贊成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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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열(仲說), 호는 읍취헌(挹翠軒). 아버지는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박담손(朴聃孫)이며, 어머니는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 이이(李苡)의 따님이다. 부인은 대제학 신용개(申用漑)의 딸이고, 맏아들은 박인량(朴寅亮)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능하여 15세에 이르러서는 문장에 능통하였다. 당시 대제학(大提學)이었던 신용개(申用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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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어의. 1882년(고종 19)에 유학(幼學)으로서 의약동참(議藥同參)에 차하(差下)되어 내의원에 군직(軍職)으로 직사(職仕)하다가 1883년 어의(御醫)의 신분으로 용인현령(龍仁縣令)이 되었다. 그 이듬해 막중한 대동미(大同米)를 마음대로 대봉(代捧)하고 한 해가 지나도록 납기를 어겼다 하여 직무불이행 죄로 용인현령직에서 파직되었다. 이에 규례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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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으로 유배된 무신. 본관은 죽산. 호는 호곡(壺谷). 조선 건국에 대장군으로서 공이 있어 개국공신 2등에 책봉되고, 사헌중승(司憲中丞)을 지냈다. 그러나 1394년(태조 3) 자기는 논공(論功)에서 2등이 되고 이무(李茂)는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에 책봉된 것을 비방하였다가 도리어 죽주(竹州)[현재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에 유배되었으나 얼마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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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 자는 상보(尙甫), 호는 여호(黎湖)·요계(蓼溪)이다. 군수 박태두(朴泰斗)의 아들이다. 1717년(숙종 43) 영의정 송상기(宋相琦)의 천거로 시강원자의(侍講院諮議)가 되었다. 지평(持平)·장령(掌令)·진선(進善)·집의(執義) 등을 지내고, 세자찬선(世子贊善)·이조판서·우찬성(右贊成)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 때 서원을 철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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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여술(汝述), 자호(自號)는 수우(守愚). 참봉 박동민(朴東民)의 아들이다. 박환은 어릴 때 부모를 모두 여의고 둘째 고모와 숙부 밑에서 자랐다.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한 공로로 6품직에 특제(特除)되어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인제현감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고을의 군사를 모아 부원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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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곤산(昆山)[昆陽]. 자는 달지(達之), 시호는 양호(襄胡)이다. 곤산배씨(昆山裵氏)의 시조이다. 어려서부터 담력이 뛰어났으며 궁마(弓馬)와 병법에 능통했다. 1447년(세종 29) 내금위 사용(司勇)에 임명되었고 1454년(단종 2) 무과에 급제했다. 1464년(세조 10)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있을 때 진응사(進鷹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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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무신. 본관은 해미(海美). 호는 풍암(楓巖). 백광언은 무과에 급제하여 용맹하고 과감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일찍이 정여립(鄭汝立)의 권세가 높아지자 도내(道內)의 문무사류(文武士類)가 모두 이와 결탁하였으나, 홀로 동조하지 않은 까닭에 미움을 받아 1589년(선조 22) 북청판관(北靑判官)으로 체직(遞職)되었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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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평보(平甫), 호는 소고(嘯皐)·재간(在澗)·보졸재(保拙齋)·송현(松峴), 시호는 문익(文翼). 증조부는 남원부사 서정리(徐貞履), 조부는 병조참의 서문상(徐文尙), 아버지는 영의정 서종태(徐宗泰)이다. 어머니는 이헌의 딸이다. 아버지로부터 아들 서지수(徐志修)까지 3대가 대신을 지냈으며, 부인 또한 3대가 대신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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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충신. 본관은 순창(淳昌). 호는 송헌(松軒). 보국판서(輔國判書) 설안통(薛安統)의 아들이고 중랑장을 지낸 암곡 설응(薛凝)의 아우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건국되자 죽산(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으로 돌아가 자정(自靖) 하였다. 이후 태종이 두 번이나 병조참의를 제수하고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고 절의를 지켰다. 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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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송소(宋玿)의 아들이다. 송광우는 어려서부터 착실하고 인품이 출중했다. 문과에 급제하여 시랑이 되었고, 1350년(충정왕 2) 봉익대부 호조전서를 지냈다. 오랫동안 관직에 있었으나 청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수정산에 단(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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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호는 대은(大隱). 아버지는 호조전서(戶曹全書) 송광우(宋匡祐)이다. 고려 우왕 때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자 낙향하였으나, 조선이 개국된 뒤에 다시 관직에 나왔다. 1417년(태종 17) 6월 형조정랑(刑曹正郞)에 있으면서 황단유(黃丹儒)의 자손인 박은·박자청(朴子靑)·조원(曹瑗) 등과 박송비(朴松庇)의 자손인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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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용경(龍卿). 1712년(숙종 38)에 송식(宋熄)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부는 송세익(宋世益)이고, 증조부는 송변, 외조부는 이제(李堤)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거주하다가 1740년(영조 16)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하였다. 사간원의 정언·헌납, 사헌부의 장령·지평을 거쳐 승정원의 승지까지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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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입지(立之). 송백순(宋伯純)의 아들이다. 송립은 11세인 임진왜란 때 아버지가 검지산(黔指山)에서 병력을 모집하여 싸우다가 죽고 그의 형제도 포로가 되어 밀실에 갇히게 되자, 송곳으로 벽을 뚫고 밤에 달아나 아버지의 시체를 수습하여 안장하였다. 1616년(광해군 8) 무과에 급제, 선전관이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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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의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은진.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또는 우재(尤齋). 증조부는 봉사(奉事) 송구수(宋龜壽), 조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선산곽씨로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1625년(인조 3) 도사 이덕사(李德泗)의 딸 한산이씨와 혼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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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경초. 단양군수를 지낸 신국량(申國樑)의 아들이다. 1576년(선조 9)에 생원진사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 후 45세에 벼슬길에 올라, 태학의 추천으로 참봉을 거쳐 1590년(선조 23)에 문경현감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상주를 거쳐 문경을 침공하자 당시 문경현감이었던 그는 관병 수십 명을 이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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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통지(通之). 증조부는 전리정랑(典理正郞) 심용(沈龍)이고, 할아버지는 좌정승(左政丞) 청성백(靑城伯) 정안공(定安公) 심덕부(沈德符)이며, 아버지는 영의정(領議政) 청송부원군(靑松府院君) 안효공(安孝公) 심온(沈溫)이다.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동생으로, 세종의 처남이다. 문종과 세조의 외숙부이며, 아들은 심정원(沈貞源)이다 14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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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화오(華五). 심즙(沈檝)의 아들이다. 심규로는 1782년(정조 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97년 집의 이명연(李明淵)의 상소로 조정이 시끄러울 때 교리로서 부교리 이기양(李基讓)·박윤수(朴崙壽)와 함께 이명연에게 제직(除職)한 명을 거두라고 연명소(聯名疏)를 올렸다가 파직됨과 함께 강외(江外)로 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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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공망(公望), 호는 서돈(西墩)이다. 영의정 심온(沈溫)의 5대손이며, 경력(經歷) 심의검(沈義儉)의 아들이다. 유학(幼學)으로 1572년(선조 5) 문과에 급제, 홍문관에 들어가 정자·박사·수찬을 지내고, 1584년 지평에 이르렀다. 이때 동서의 붕당이 생기려 하자, 언관으로서 붕당의 폐단을 논하였으며, 이어서 사인·사간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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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시호는 양혜(良惠). 증조부는 전리정랑(典理正郞) 청화부원군(靑華府院君) 심용(沈龍)이고, 할아버지는 좌정승(左政丞) 청성백(靑城伯) 정안공(定安公) 심덕부(沈德符)이며, 아버지는 부윤(府尹) 심징(沈澄)이다. 아들은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심선(沈璿)이다. 세종의 장인인 심온(沈溫)의 조카이며,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昭憲王后)의 사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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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심존지는 1819년(순조 19) 9월 21일 용인현령으로 부임하여 1820년 2월 29일까지 용인현령을 지냈다. 담양부사로 있을 때인 1829년(순조 29) 전라좌도 암행어사 유성환(兪星煥)이 잘 다스렸다고 조정에 보고하여 포상을 받았다. 용인현 백성들은 현령으로 재직할 때의 공덕을 기려 선정비를 세웠는데 이 비가 지금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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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원지(源之), 호는 만사(晩沙)이다. 증조부는 심금(沈錦), 할아버지는 심종열(沈宗悅), 아버지는 심설(沈偰)이다. 외조부는 청원도정(靑原都正)이었던 이간(李侃)이고, 부인은 윤종지(尹宗之)의 딸이며, 그의 아들 심익현은 효종의 딸 숙명공주와 결혼해 효종과는 사돈관계였다. 1620년(광해군 12)에 정시문과에 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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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자장(子章), 호는 창주(滄洲). 심탁(沈倬)의 아들이며, 정엽(鄭曄)의 문인이다. 심지한은 1618년(광해군 10) 동학유생(東學儒生)으로 조경기(趙慶起) 등 8인과 함께 폐모론을 주도하는 이위경(李偉卿)·정조(鄭造)·윤인(尹認) 등을 극형에 처하도록 상소하였다. 이 일로 아버지 심탁과 함께 가산이 적몰되고, 문외출송(門外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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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죽계(竹溪). 자는 흥숙(興叔), 호는 우졸재(愚拙齋)·백암(栢巖). 관찰사(觀察使) 안종도(安宗道)의 증손이며, 좌찬성으로 추증된 안세복(安世復)의 손자이며, 순양군(順陽君) 안몽윤(安夢尹)의 아들이다. 첫째 부인은 판서 이경황(李慶滉)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는 봉림대군(鳳林大君)[효종]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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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1728년(영조 4) 당시 용인·양성(陽城) 두 지역을 중심으로 양성의 권서린(權瑞麟), 용인 직곡의 안엽(安熀)·안정 형제와 안지원(安趾遠), 과천(果川) 상포(霜浦)의 이인좌(李麟佐) 형제 등은 이사성(李思晟)의 집에 모여서 무신의 난을 일으켜 역모를 꾀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신임사화를 기화로 ‘임금이 소론(少論)을 쓰기 때문에 노론(老論)이 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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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신경(藎卿). 찬성사 안문개(安文凱)의 9대손이며, 안언필(安彦弼)의 둘째아들이다. 안홍국은 1583년(선조 16)에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 임진왜란 때 선전관으로 임금을 의주까지 호종하였고, 삼남 지방을 돌며 왕명을 전달하였다. 그 공로로 뒤에 호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그 뒤 3도수군통제사 이순신(李舜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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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할아버지는 양우(梁祐), 아버지는 양석륭(梁碩隆)이다. 부인은 전주부윤 권담(權湛)의 딸이고,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가 그의 아들이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있다. 의정부우찬성 남원부원군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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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양지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증조부는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 양석륭(梁碩隆)이고, 할아버지는 예빈시윤(禮賓寺尹) 양구주(梁九疇)이며, 아버지는 남원군(南原君)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문양공(文襄公) 양성지(梁誠之)이다. 1466년(세조 12) 양원은 진위현령(振威縣令)이었는데 외람되게 도둑을 잡은 공에 공신의 아들이란 점이 작용되어 상직(賞職)을 받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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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1699년(숙종 25) 과거 시험에 이성휘(李聖輝)가 제출한 시권(試券)에 부정이 발견되어 이에 여러 사람들이 문초를 받는 기묘과옥(己卯科獄)이 발생하였다. 문초를 받던 사람 중에는 이성휘와 함께 과거 시험을 본 송성(宋晟)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송성의 매부가 바로 어사주(魚史周)였다. 송성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고자 어사주에게도 증인이 되어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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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집(聖執), 호는 일재(一齋). 어약우(魚若愚)의 아들이다. 어윤중은 9세에 어머니를, 1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을 하면서 밤에는 독서를 하였다. 20세 때인 1868년(고종 5) 지방유생 50명을 뽑아 바로 전시(殿試)를 볼 수 있는 칠석제(七夕製)에 합격하고, 이듬해인 1869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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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계휘(季輝), 호는 추담(秋潭). 오경민(吳景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선공감역을 지낸 오희문(吳希文)이고, 아버지는 오윤해(吳允諧)이며, 어머니는 최형록(崔亨綠)의 딸이다. 경기도 송탄의 이충부락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19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634년(인조 12)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장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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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오달천(吳達天)[1598~1648]은 조선 중기 선조 대부터 인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으로 한성(漢城) 숭교방(崇敎坊)[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해주(海州). 할아버지는 오희문(吳希文)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이다. 1620년(광해군 12) 모친상을 당하여 삼년상을 마치고 벼슬길에 나아가 사산현역(四山縣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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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이중(爾重).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역임한 오윤겸(吳允謙)이며, 오달천(吳達天)의 둘째 아들이다. 부인은 함평이씨이다. 47세의 나이로 죽어 현달하지 못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선영에 있다. 숭정대부 좌찬성겸 지의금부사 세자이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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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오달천(吳達天)이며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 도사(都事) 조간(趙幹)의 딸이고, 아들은 오수채(吳遂采)이다. 오도일(吳道一)[1645~1703]은 4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에게서 자랐다. 성강(星江) 조견소(趙見素)에게 글을 배웠으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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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사상(士常), 호는 모암(慕菴)·영모당(永慕堂)이다. 고조부는 영의정 오윤겸(吳允謙), 증조부는 오달천(吳達天)이고, 아버지는 오수량(吳遂良)이다. 외할아버지는 여성제(呂聖濟)이고, 부인은 최기창(崔起昌)의 딸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705년(숙종 31)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1709년 교리를 거쳐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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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사수(士受), 호는 체천(棣泉)이다. 증조부는 오윤겸(吳允謙), 조부는 오달천(吳達天), 아버지는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오도일(吳道一)이다. 외조부는 정엄(鄭淹), 부인은 윤행교(尹行敎)의 딸이다. 아들은 오명보(吳命普)이다. 음보로 주부(主簿)가 되었고, 영조 11년(1735)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부수찬(副修撰)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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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 자는 정지(貞之). 석성현감을 역임하였다. 후손들이 매우 번창하였는데, 사후 2백여 년이 지나는 동안 자손들이 거의 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손자 오희문(吳希文)[1539~1613]은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오희문의 아들 오윤겸(吳允謙)[1559~1636]도 영의정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척화신으로 심양에 잡혀가 순절한 삼학사(三學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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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익(汝益), 호는 추탄(楸灘) 또는 토당(土塘). 사헌부 감찰을 지낸 오경민(吳景閔)의 손자이고, 선공감역 오희문(吳希文)의 아들이며, 부인은 이응화(李應華)의 딸이다.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한 뒤 문음으로 영릉참봉(英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다시 봉선전참봉(奉先殿參奉)에 임명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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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군신(君信), 호는 추은(楸隱). 좌승지를 지낸 오경우(吳景愚)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오경순(吳景醇)의 아들로 경우에게 입양된 오세공(五世恭)이다. 어머니는 삭녕최씨의 딸이다. 첫 부인은 김황(金晃)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이민신(李敏信)의 딸이다. 7세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슬퍼함이 성인과 같았다고 한다. 광해군 때 문음으로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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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화(汝和), 호는 만운(晩雲). 아버지는 오희문(吳希文)이며, 큰아버지 오희인(吳希仁)에게 입양되었다.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의 아우이고, 오달제(吳達濟)의 아버지이다. 선조 말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세자익위사부솔(世子翊衛司副率)이 되고, 이해 별시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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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비연(斐然). 석성현감(石城縣縣監) 오옥정(吳玉貞)의 손자, 장성현감 오경민(吳景閔)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남인(南寅)의 딸이다. 부인은 연안이씨로 이석형(李石亨)의 증손녀이고, 외할아버지는 익양군(益陽君) 이회(李懷)이다. 외가인 영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으나 집은 서울 관동(館洞)[지금의 명륜동]에 있었다.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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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원주. 자는 자용(子容), 호는 형설(螢卨)이다. 1759년(영조 35) 무과에 급제하여 1764년 용인현령으로 부임하였다가 이듬해에 평양 중군으로 옮겼다. 충청도수군절도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인 1782년(정조 6) 진천에서 행적이 수상한 자들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진천현감 박인영 등과 함께 파직되었다. 다음 해 여주목사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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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전주. 선조로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 시 의병장으로 외삼촌인 경상우도관찰사 김성일(金誠一) 휘하에서 활약하다가 성이 함락당하자 김천일(金千鎰)[1537~1593] 등과 함께 자결한 유복립(柳復立)[1558~1593]이 있다. 아버지는 유은(柳訔)이다.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뒤 경기도 용인시에 낙향하여 은거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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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문화. 자는 계창(季昌), 호는 만암(晩菴). 영의정을 지낸 류상운(柳尙運)의 아들이다. 1697년(숙종 23) 과거에 합격하였다가 그 부친이 고시를 주관하면서 아들을 급제시킨 것이 문제가 되어 삭과되었다가 1699년 다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첫 부임지인 용인현에서 재임기간 동안 선치하여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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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학원(學源). 찬성사(贊成事) 류만수(柳曼殊)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지낸 류은지(柳殷之)이다. 1445년(세종 27) 류사(柳泗)[1423~1471]는 내금위에 소속되었다가 1447년(세종 29) 오위(五衛) 부사정(副司正)으로 있었다. 이때 죄를 지어 죽은 할아버지 유만수의 녹권이 삭제당하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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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 증조부는 유한규(柳漢奎)이며 조부는 유희(柳僖), 외조부는 반남박씨 박형수(朴衡壽)이다. 아버지는 유성소(柳聖昭)이며 생부는 유성무(柳聖武), 부인은 동래정씨 정한조(鄭漢朝)의 딸이다. 28세 때인 1887년(고종 2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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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여회(汝懷), 호는 성곡(聖谷). 문성공 유순정(柳順汀)의 9대손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 유진운(柳振運)이다. 남구만(南九萬)에게 수학했으며, 문필로 이름이 있었다. 1706년(숙종 32) 진사시에 급제한 뒤 괴음현감(槐陰縣監)을 지냈으며, 1721년(경종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였다. 이후 영남어사(嶺南御使)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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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문인으로서 무인을 능가하는 무예를 가지고 있었다. 야인(野人)을 정벌하여 정세를 편안히 하였으며, 중종의 즉위에 공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었으며, 이과(李顆)의 옥사를 다스려서는 정난공신(定難功臣)에 추대되었다. 또한 삼포왜란(三浦倭亂)을 토벌한 공으로 영의정에 오르기도 하였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지옹(智翁), 호는 청천(菁川). 증조부는 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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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기계. 자는 사호(士鎬), 호는 대재(大齋)이다. 권상하(權尙夏)·이재(李縡)의 문인이다. 유일로 천거되어 세자시강원 자의(諮議)가 되었다. 그 후 사헌부 지평, 집의, 경연관 등을 역임하였고, 이조·형조·호조의 참의를 거쳐 돈녕부도정에 이르렀다가 사직한 후 안성에 은거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1782년(정조 6)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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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유무근(柳茂根)이다. 1874년(고종 11)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여 유학(幼學)으로서 1893년(고종 30)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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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단오(端五), 자호는 애오로(愛吾盧). 문성공 유순정(柳順汀)의 9대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유진운(柳振運), 아버지는 유담(柳紞)이다. 부인은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쓴 사주당(師朱堂) 이씨이며, 『언문지(諺文志)』의 저자 유희(柳僖)의 아버지이다.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벼슬은 높지 않았으나, 담운(澹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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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반정공신이자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연(子淵). 증조부는 부지돈녕부사 유자해(柳子偕), 할아버지는 광주목사 유양(柳壤), 아버지는 영의정(領議政) 유순정(柳順汀), 어머니는 별좌 권효충(權孝忠)의 딸이다. 딸은 중종과 숙원홍씨(淑媛洪氏) 사이에서 태어난 해안군(海安君) 이희에게 출가하였다.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혔으며, 1506년의 중종반정 당시 이를 주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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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신백(信伯), 호는 신곡(薪谷)이다. 할아버지는 교리 윤섬(尹暹), 아버지는 현감 윤형갑(尹衡甲)이다. 외조부는 황치경(黃致敬)이고, 부인은 박정원(朴鼎元)의 딸이다. 그의 친동생 윤집은 청나라 와의 화의를 강경하게 반대한 3학사의 한 사람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상소하여 척화를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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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여진(如進), 호는 과재(果齋)이다. 증조부는 윤시영(尹時英), 조부는 윤징(尹澄), 아버지는 윤우신(尹又新)이다. 외조부는 유문윤(柳文潤), 부인은 원경심(元景諶)의 딸이고, 아들은 윤형갑(尹衡甲)이다. 1583년(선조 1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檢閱)·지평(持平) 등을 지냈다. 1587년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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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덕풍(德豊). 자는 기지(起之). 증조부는 윤경복(尹景福), 외조부는 윤완(尹完), 조부는 윤춘령(尹春齡)이며, 아버지는 윤집(尹鏶), 부인은 이수길(李綏吉)의 딸이다. 1584년(선조 17)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627년(인조 5)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부사를 역임하였으며, 1635년(인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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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중옥(仲玉), 호는 퇴암(退巖). 아버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며, 아들은 청주목사(淸州牧使) 윤행엄(尹行儼), 증영의정(贈領議政) 윤행임(尹行恁) 등이 있다. 영조·정조 시대에 활동한 문인으로 청렴한 자세로 이름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하였고 진사시 급제 후 여러 고을의 원을 하였는데 특히 금산군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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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 자는 성숙(成叔). 증조부는 윤곡(尹曲), 외조부는 조유형(趙惟珩), 조부는 윤형태(尹衡泰)이며, 아버지는 윤상(尹床), 부인은 우세중(禹世重)의 딸이다. 1704년(숙종 30) 10월 임금은 윤취은을 포함한 관학 유생들에게 친히 강경(講經)을 시험한 후 직부전시(直赴殿試)하도록 명하였다. 1705년(숙종 31) 윤취은은 식년문과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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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윤행엄(尹行儼)[1728~1799]은 음서 출신이었으나 실무에 밝았고 북벌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어머니의 죽음에 슬픔이 극에 달하여 이듬해 세상을 떠났을 정도로 효자였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경보(敬甫), 호는 수묵당(守黙堂). 조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며, 아버지는 익찬(翊贊) 윤염(尹琰), 부인은 달성서씨(達成徐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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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윤행임(尹行恁)[1762~1801]은 시파(時派)의 중추적인 인물이다. 시파와 벽파(辟派)의 당쟁이 극심하였던 정조 대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나 탄핵 또한 빈번하여 자주 유배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성보(聖甫), 호는 방시한재(方是閑齋)·석재(碩齋). 조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며, 아버지는 익찬(翊贊) 윤염(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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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숙보(叔保). 윤관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문하평리 충간공(忠簡公) 윤승순(尹承順)이고, 할아버지는 좌명공신(佐命功臣) 소정공(昭靖公) 윤곤(尹坤)이며,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영천부원군(鈴川府院君) 윤삼산(尹三山)이다. 아들은 윤은로(尹殷老)와 정국공신(靖國功臣)인 윤탕로(尹湯老)이다. 딸이 성종의 세 번째 왕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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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원(聖源). 할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장양공(壯襄公) 이일(李鎰)이고, 아버지는 이숭의(李崇義)이다. 1644년(인조22)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좌수사(慶尙左水使)에 이르렀다. 경상좌수사로 있을 때 할아버지 이일의 전공을 묘사한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 등을 그려 문중의 여러 파(派)에 배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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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 자는 효백(孝伯). 증조부는 이선흥(李善興), 조부는 이후배(李厚培), 아버지는 이만림(李萬林)이며, 부인은 권만경(權萬慶)의 딸이다. 유학(幼學)으로 47세 때인 1747년(영조 23) 식년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찰방과 정랑(正郞)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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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이경석(李景奭)[1595~1671]은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 산림의 학자들을 대거 천거하여 요직에 오르도록 도와주었으나 훗날 그가 천거한 송시열과 정적이 되어 노소분당(老少分黨)이 이루어지면서 소론의 비조가 되었으며, 조선 중기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하였던 명상(名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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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때 용인의 험천 전투에서 전사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아명(兒名)은 경민(慶敏). 초명(初名)는 경징(慶徵). 자(字)는 군선(君善) , 호(號)는 남포(藍浦),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의 다섯째 아들이다. 이경선(李慶善)은 1624년(인조 2)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고, 1632년(인조 10)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길에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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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이경장(李敬長)[1482~1561]은 은의(恩義)로 백성을 다스렸으며 근면함을 생활신조로 삼았다. 두루 관직을 역임하면서 80세가 되도록 큰 허물이 없었으니 모든 사람들이 칭송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흠중(欽仲). 호는 역헌(櫟軒). 증조부는 증 좌의정(贈左議政) 이회림(李懷林)이고, 조부는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석형(李石亨)이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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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한산, 자는 계행(啓行), 호는 송서(松西), 시호는 문간이다. 현감 이희선(李羲先)의 아들이다. 1822년(순조 2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직각·이조참의·이조참판·평안도관찰사·대사간·대사헌·한성판윤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849년 철종이 즉위하자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고종 때 영의정에 올랐고 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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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성(汝省), 호는 송음(松陰)·미강(眉江). 할아버지는 절도사 이원, 아버지는 군수 이통(李通)이다. 어머니는 영의정 유전(柳㙉)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 19세의 나이로 진사가 되었으나, 당시 폐모론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두문불출하다가 인조반정 후인 1624년(인조 2)에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처음 전적에 임명되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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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자는 경담(景膽). 1567년(선조 즉위년) 임금에게 기묘사화(己卯士禍)에 화를 당한 사람들을 포증(褒贈)하기를 청하였으며, 그것이 허락되자 『기묘록(己卯錄)』에 기록되었다. 1589년(선조 22) 장성현감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을 떠나자 도보로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러 삼등현령(三登縣令)에 임명되었으며, 군사를 다스리는 일과 양곡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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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사무(士武), 호는 우계산인(雨溪散人). 증조부는 사간원사간 이의무(李宜茂), 할아버지는 좌의정 이행(李荇), 아버지는 도사 이원상(李元祥), 어머니는 동부승지(同副承旨) 신옥형(申玉衡)의 딸이다. 1567년(명종 22) 생원이 되고, 1574년(선조 7)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권지성균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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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에서 활동한 문신. 1776년(정조 즉위) 영조의 서녀(庶女) 화완옹주(和緩翁主)와 함께 정조의 즉위를 반대하던 홍인한·정후겸이 죽임을 당한 뒤인 7월 훈련원정으로 있었을 때, 헌납 신응삼(辛應三)이 이광운의 형인 무관 이철운(李喆運)이 홍인한의 총애를 받았다는 사실 등을 이유로 탄핵하여 사판(仕版)에서 삭제되었다. 1788년 경기도 용인에서 살다가 “세자를 세워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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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백첨(伯瞻), 호는 석음와(惜陰窩). 호는 배우는 데 힘쓰고 시간을 아껴 매사에 부지런히 하라는 뜻으로 송시열이 지어주었다 한다. 고조부는 증직제학 병조정랑 이신충(李藎忠), 증조부는 증집의 정선군수 이영인(李榮仁), 조부는 증좌승지 이사익(李士益),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이후망(李堠望)이다. 송시열과 동향으로 송시열의 자손들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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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수지(修之), 호는 계은(桂隱). 증조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李承顔)이고, 조부는 상호군(上護軍) 이정공(李靖恭)이다. 아버지는 증좌의정(贈左議政) 이원발(李元發)이며, 어머니는 성천김씨(成川金氏)로 중랑장(中郞將) 김남보(金南寶)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홍언수(洪彦修)의 딸인데 후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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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이귀산(李貴山)[?~1424]은 형 이귀령(李貴齡)과 함께 태조가 임금이 되기 전의 친구였으나 태조 대에는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고 주로 태종 대에 활동하였다. 각 도의 관찰사를 역임하면서 지방 행정을 담당하여 국초의 창업 기틀을 잡는 데 공헌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흥서(興瑞), 호는 괴은(槐隱, 塊隱). 증조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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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이자 의관.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청백리인 이백지(李伯持), 조부는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이수령(李守領),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이효검(李孝儉)이며 어머니는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권복(權復)의 딸이다. 부인은 윤사흔(尹士昕)의 딸이며, 아들 이원량(李元亮)을 두었다. 형제로는 이개보(李介甫)와 이우보(李祐甫)가 있다. 1457년(세조 3)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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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 자는 계야(季野). 목은 이색(李穡)의 5세손으로서 증조부는 이숙무(李叔畝), 조부는 지중추원사를 지낸 이형증(李亨增), 외조부는 종사랑(從仕郞) 품계를 지낸 선산(善山) 김관안(金寬安)이다. 부인은 찰방을 지낸 최홍보(崔洪輔)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증광시에 진사로 합격하였다. 이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역임하였으며 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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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능(幼能)이며, 호는 정관재(靜觀齋)·서호(西湖)다. 증조부는 이계(李啓), 할아버지는 좌의정 이정구(李廷龜), 아버지는 대제학 이명한(李明漢)이다. 외조부는 박동량(朴東亮), 부인은 이행원(李行遠)의 딸이다.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설서(說書)·대교(待敎)·교리(校理) 등을 거쳐 이조와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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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중구(仲久), 호는 정존재(靜存齋). 아버지는 도승지로 추증된 이종유(李宗蕤)이며, 어머니는 영월엄씨(寧越嚴氏)이다. 부인은 경세인(慶世仁)의 딸이다. 12세 때 부친을 여읜 후 학문에 힘써, 동리 가까이 살던 학덕이 높은 유우(柳藕)의 문하가 되었다. 결혼 후에는 장인 경세인에게 사사하며 식견을 넓혀 나갔다. 이후 천문, 산술, 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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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상여(相如). 아버지는 이백주(李白州)이다. 1651년(인조 20) 아버지 이백주가 시험관으로 있던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남달리 총명하고 시문(詩文)이 아름다우며 풍도(風度)가 있었다. 그러나 부친의 병간호로 마음을 졸이고, 부모상을 당하여 몸이 상하여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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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사추(士秋), 호는 귀락당(歸樂堂)·행호거사(杏湖居士)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이할(李劼)의 증손이며,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의 손자이며, 우의정 이숙(李䎘)의 둘째 아들이다. 후에 사헌부 지평(持平)에 추증된 중부(仲父) 이흡(李翕)의 후사가 되었다. 부인은 안동김씨로 영의정 김수흥(金壽興)의 딸이다. 효종 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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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가구(可久)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이할(李劼)의 증손이며,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측실에게서 출생한 진사 이휘(李翬)이다. 첫째 부인은 청송심씨(靑松沈氏)이며, 둘째 부인은 광산김씨(光山金氏) 김장생(金長生)의 서손(庶孫)이다. 『주역(周易)』을 즐겨 읽어 앞날을 예측하였다. 1681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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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사하(士夏)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이할(李劼)의 증손이며,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의 손자이며, 우의정 이숙(李䎘)의 둘째 아들이다. 병조판서를 지낸 이만성(李晩成)의 형이며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아버지이다. 외가인 부안에서 출생하였으며, 10세 전에 경사(經史)에 통달하는 총명함을 드러내었다. 1675년(숙종 1)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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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청해(靑海). 자는 이질(而質). 개국공신(開國功臣) 1등에 책록된 청해군(靑海君) 이지란(李之蘭)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고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된 이옥(李沃)이다.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고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된 이인기(李麟寄)이다. 아버지는 이명노(李明老)이고, 부인은 밀양박씨 박영신(朴榮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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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백눌(伯訥), 호는 풍서(豊墅) 또는 상와(常窩)이다. 증조부는 부제학 이단상(李端相),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이희조(李喜朝), 아버지는 사간원 대사간 이양신(李亮臣)이다. 1747년(영조 23) 진사시에 합격하여 음보(蔭補)로 시강원의 동궁요속(東宮僚屬)에 임명되었고, 장악원정을 거쳐 1788년 동부승지에 특배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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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군수를 역임한 관리. 1898년 11월 19일 지금의 수지 지역인 지내면의 김병하가 탁지부에 과세 폐단을 시정해 달라고 요구하다 거부되자 1899년 6월 29일 김량장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군 청사에 들어가 수서기(首書記) 박희종을 끌어내자 박희종의 동생 박희순이 시위 농민들을 습격하여 70여 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사건이 벌어졌다. 1897년(고종 34) 12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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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동암(東巖)·북산(北山)이다. 증조부는 이달선(李達善), 할아버지는 이공인(李公仁), 아버지는 이중호(李仲虎)이다. 외조부는 윤구(尹衢)이고, 부인은 박이(朴苡)의 딸이다. 전라남도 남평에서 출생하였다. 1568년[선조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573년 문과에서 장원급제하였다. 이듬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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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판서를 지낸 이광시(李光時)이고, 할아버지는 홍복도감판관(弘福都監判官)을 지낸 이중인(李中仁)이다. 아버지는 호조판서를 지낸 이사위(李士渭)이고, 어머니는 지군사(知郡事) 임세정(任世正)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대호군(大護軍) 윤보(尹寶)의 딸이었고, 사별한 뒤 판관(判官) 권경(權敬)의 딸을 둘째 부인으로 맞았다. 아들은 증이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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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원(聲遠). 시호는 충정(忠貞).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의 재종손이며, 영의정 이의현(李宜顯)의 조카이다. 아들인 이경호·이중호 형제를 비롯하여 후손 6명이 대과에 급제하였고, 손자 이재협은 1789년(정조 13)에 영의정을 지냈다. 이보혁이 1728년(영조 4) 성주목사로 있을 때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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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이익기(李翊奇)의 아들이다.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교리로 출사하였다. 이듬해에는 병조참의에 올랐고, 1884년 사간원 대사간으로 있던 중 김옥균(金玉均)·서광범(徐光範)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원조를 요청, 청군의 지원으로 개화당 정부를 타도하였다. 그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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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선명(善鳴). 문강공(文康公) 이석형(李石亨)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이조판서 이만상(李萬相), 어머니는 예조판서 오준(吳竣)의 딸이다. 부인은 전라감사 홍주삼(洪柱三)의 딸이며, 아들은 송벽당(松檗堂) 이정신(李正臣)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여 1669년(현종 10)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정릉참봉(貞陵參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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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사언(士彦). 증조부는 신종군(新宗君) 이효백(李孝伯), 조부는 장연령(長淵令) 이은동(李銀同), 아버지는 순안령(順安令) 이여귀(李如貴)이다. 외조부는 윤맹경(尹孟卿)이고, 부인은 남정진(南廷縉)의 딸이다. 1576년(선조 9)에 식년시(式年試) 문과의 병과(丙科) 7위로 급제하였다. 묘비에 의하면 고양군수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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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이선(理善), 호는 쌍곡(雙谷). 조부는 병조정랑 이신충(李藎忠), 아버지는 진사 출신 이계인(李啓仁)이다. 어머니는 세종의 6세손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외가에서 자랐다. 1590년(선조 23) 생원 급제 후 1601년(선조 34) 식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 시작하여 병조좌랑·형조좌랑·예조좌랑과 삼화현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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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호는 평은(平隱). 구성부원군 이중인(李仲仁)의 맏아들이다. 이사영(李士穎)[?~1406]은 일찍 문과에 급제하여 청주목사(淸州牧使), 안동부사(安東府使), 형조전서(刑曹典書)를 거쳐 1391년(공양왕 3) 밀직사우대언(密直使右代言)에 임명되었으나, 정몽주(鄭夢周)가 격살된 후 당여(黨與)로 몰려 이색(李穡), 이숭인(李崇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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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지후(祗候) 이석(李奭)이고, 할아버지는 판서(判書) 이광시(李光時)이다. 아버지는 홍복도감판관(弘福都監判官) 구성부원군(駒城府院君) 충숙공(忠肅公) 이중인(李中仁)이다. 문효공(文孝公) 전신(全信)의 외손이다. 형제로는 전서(全書)를 지낸 형 이사영(李士潁)과 지주사(知州事)를 지낸 아우 이사이(李士彛)가 있다. 아들은 이백지(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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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석(頤奭). 정종(定宗)의 왕자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의 7세손이고, 아버지는 사직서참봉(社稷署參奉) 이전(李瑑)이다. 이상경(李尙敬)[1609~1674]은 인조 대부터 현종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1636년(인조 14)에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宣傳官)으로 등용되어 도사(都事)가 되었다.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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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회(汝恢). 정종의 일곱째 아들 이덕생(李德生)의 후손으로 승지에 추증된 이징후(李徵厚)의 손자이다. 양주(楊洲) 조희석(趙禧錫)의 외손자이며, 아버지는 대사헌(大司憲)에 추증된 이제상(李齊尙)이다. 아들은 이정인(李廷仁)이다. 이상성(李相晟)[1690~1741]은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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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용인 전투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부평(富平). 자는 문거(文擧). 군수 이덕일(李德一)의 아들이며,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 이자신(李自新)의 외손자이다.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에 등용되어 저작에 올랐다. 1636년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이 되었다. 이해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도관찰사 정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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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치수(稚秀). 아버지는 이학연(李學淵)이고, 할아버지는 이익원(李益原), 증조부는 이회만(李會晩)이다. 외조부는 의령 출신의 남경하(南敬夏)이며, 처부는 전주 출신의 이사의(李師義)이다. 이상준은 용인에서 태어나 거주하다가 1786년(정조 10) 식년문과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벼슬로는 정6품인 사간원정언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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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용인에 은둔한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남곡(南谷).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낸 이송현(李松賢)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경덕재생(慶德齋生) 이흡(李洽)이며, 어머니는 영천윤씨(永川尹氏) 윤취(尹就)의 딸이다. 이석지(李釋之)는 이곡(李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341년(충혜왕 2)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함께 성균시(成均試)에 급제하여 진사(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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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이석형(李石亨)[1415~1477]은 세종 대부터 성종 대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김반(金泮)의 문인이다. 뛰어난 학문으로 당대 8대 문장가로 꼽히기도 하였다. 집현전학사였으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死六臣)에는 포함되지 않으며,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를 짓는 것에 그쳤다.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에 “중국은 다만 성곽(城郭)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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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차옹(次翁), 호는 졸옹(拙翁). 할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이중손(李仲孫)이고, 아버지는 판관(判官)을 지낸 이희안(李希顔)이다. 이성동(李成童)은 조선 중기 연산군 대에 활약한 문신으로 기묘명현의 산사람이다. 1495년(연산군 1) 생원으로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지평(持平)·사간(司諫)·직제학(直提學)·대사간(大司諫)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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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중경(仲庚), 호는 북계(北溪)·우사(雩沙). 파주목사 이정악(李挺岳)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 동지중추부사 김광찬(金光燦)의 딸이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외증손이며, 외삼촌은 유명한 문곡공 김수항(金壽恒)이다. 아들 이의현(李宜顯)은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는데, 부자 정승으로 유명하였다. 특히 용인이씨 가계 중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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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지숙(持叔). 증조부는 대사간 이사경(李士慶), 아버지는 나주목사 이하악(李河岳)이다. 1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한 후 1694년(숙종 20) 알성 문과에 을과로 합격하여 전설사별검(典設司別檢)·장흥고주부(長興庫主簿)·감찰·공조좌랑·황주판관·남원현감·성균관직강·병조좌랑·병조정랑·시강원사서·문학·사헌부지평·정언·경기도도호부사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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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해(靑海). 자는 일경(一卿). 개국공신(開國功臣) 1등인 이지란(李之蘭)의 후손으로 첨정(僉正) 이문주(李文柱)의 손자이며, 금구(金溝) 이준생(李俊生)의 외손자이다.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이후(李詡)이며, 부인은 통덕랑(通德郞) 안두극(安斗極)의 딸이다. 이수민(李壽民)[1651~1724]은 숙종 대에서 경종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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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중우(仲羽), 호는 일휴정(逸休亭). 관찰사 이지신(李之信)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승지(承旨)에 추증된 이할(李劼)이다. 아버지는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이며, 어머니는 윤홍유(尹弘裕)의 딸이다. 부인은 박호(朴濠)의 딸이다. 이숙(李䎘)[1626~1688]은 인조 대부터 효종, 현종, 숙종의 4대 35년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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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이숙기(李淑琦)[1429~1489]는 세조와 성종 대에 활동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으며, 기개가 넘쳐 무신의 자질이 뛰어났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할 때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에 봉해졌고,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는 등 국경을 수비하는 데 힘을 기울인 명장(名將)이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근(公瑾). 증조부는 판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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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여순(汝詢), 호는 죽유(竹牖). 아버지는 개성유수 이후산(李後山)이고, 어머니는 풍산김씨로 판서 김수현(金壽賢)의 딸이다. 1663년(현종 4)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이듬해 정릉참봉(靖陵參奉)에 임명되었다. 1673년(현종 14) 빙고별검(氷庫別檢)이 되었으나 파직 당하였다가 1678년(숙종 4) 복직되었으며, 이어 동몽교관(童蒙敎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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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경제(景制)이며, 호는 망은(忘隱). 1575년 청백리에 녹선된 이백지(李伯持)의 아들로 태어났다. 1606년에 진사가 되었고, 덕산현감과 종묘서령(宗廟署令)을 지냈고, 초서와 예서에 능했다. 서법에 대한 책을 간행한 것이 있다고 전하지만 제목은 알 수 없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호암미술관 뒤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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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해(靑海). 자는 치도(稚度). 아버지는 이창석(李昌錫)이며, 할아버지는 이송연(李松然)이다. 증조부는 이경장(李慶章)이며, 외조부는 구수훈(具壽勛)이다. 처부는 남양 출신의 홍윤조(洪胤祚)이다. 이승헌은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거주하였다. 정5품 품계인 통덕랑(通德郞)으로서 1826년(순조 26) 정시문과(庭試文科) 병과로 급제하였다.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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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중화(仲和).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석형(李石亨)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형조정랑(刑曹正郞) 이빈(李贇)이며, 어머니는 찬성(贊成)에 추증된 전의(全義) 이언우(李彦佑)의 딸이다. 부인은 현감 수안(遂安) 이형장(李亨章)의 딸이다. 이시정(李時程)[?~1653]은 선조 대에서 광해군, 인조, 효종의 4대에 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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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유(聖兪), 호는 죽창(竹窓)이다.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석형(李石亨)의 6대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정현(李廷顯), 아버지는 청암도찰방(靑巖道察訪) 이빈(李賓)이다.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3년(인조 1) 별제가 되었다. 1624년(인조2) 직장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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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기재(器哉). 이조판서(吏曹判書) 이경증(李景曾)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대사간(大司諫) 이혜(李嵇)이다. 아버지는 광주목사(光州牧使) 이희담(李喜聃)으로, 이희담에게는 부인이 두 명 있었다.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은 모두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첫째 부인은 현감 홍수업(洪受業)의 딸이며, 둘째 부인은 홍현(洪鉉)의 딸인데 이식은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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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이애(李薆)[1363~1414]는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1396년 태조의 8남 5녀 중 맏딸인 경신공주(慶愼公主)[?~1426]와 혼인하여 상당군(上黨君)과 상당후(上黨候)가 되었다. 본관은 청주(淸州). 아명은 백경(伯卿). 초명은 이저(李佇). 아버지는 청허자(淸虛子) 이거이(李居易)이며, 청평부원군에 봉하여졌다가 공신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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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충렬서원의 원장을 세 차례나 지냈고,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에 있는 덕봉서원의 원장도 역임하였다. 본관은 덕수. 자는 치보(治甫)·자삼(子三). 호는 수곡(睡谷)·수촌(睡村)·포음(浦陰)이다. 아버지는 시정(寺正) 이신하(李紳夏)이고, 할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이식(李植)이다. 증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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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불린(不磷). 고조부는 목은(牧隱) 이색(李穡). 증조부는 제학을 지낸 이종학(李種學)이며, 할아버지는 이숙묘(李叔畝)이다. 아버지는 이형증(李亨增)이고, 어머니는 조아(趙雅)의 딸이다. 부인은 선산김씨로, 김관안(金寬安)의 딸이다. 아들은 좌참찬(左參贊) 이자(李耔)이다. 이예견은 성종 대에 활약하였다. 승사랑(承仕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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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평보(平甫). 이조판서 이경증(李景曾)의 증손이며, 대사간 이혜(李嵇)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광주목사(光州牧使) 이희담(李喜聃)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현감 홍수업(洪受業)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박씨(密陽朴氏)로 참판 박봉령(朴鳳齡)의 딸이다. 이완은 큰아버지 통덕랑(通德郞) 이희유(李喜濡)가 일찍 죽어서 그 양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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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이완(李莞)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때 활약한 무신으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조카이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을 도와 공을 세웠는데, 1598년(선조 31) 노량해전(露粱海戰)에서는 이순신의 전사를 알리지 않고 병사를 독려하여 대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열보(悅甫). 이정(李貞)의 손자이며, 진주(晋州) 강세온(姜世溫)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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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호원(浩源), 호는 포곡(蒲谷). 아버지는 이숭의(李崇義)이다. 이용(李涌)은 조선 중기 선조 대부터 현종 대까지 활약한 무신이다.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대왕을 공주까지 호종(扈從)하였다. 그 공훈으로 의금부도사를 제수받았으며, 원종1등공신 영국공(寧國公)에 녹선되었다. 또한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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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양지현감을 역임한 문신. 이용신은 1724년(경종 4) 7월 양지현(현재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현감으로 부임하여 1728년(영조 4) 4월까지 역임하였다. 재임 기간에 아이들의 성과 이름을 초록(抄錄)해 두었다가 책(冊)을 만들었다. 그들이 장성하기를 기다렸다가 군액(軍額)에 충정(充定)하여 군영(軍營)에는 수효가 모자람이 없게 하고, 고을에서 백골(白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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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치명(穉明), 호는 종산(鍾山). 증조부는 이숭호(李崇祜), 조부는 이재학(李在學), 아버지는 이규현(李奎鉉), 외조부는 박사소(朴師邵), 처부는 서이순(徐彛淳)이다. 1829년(순조 29) 문과 급제 후 1849년(헌종 15) 성균관대사성을 비롯하여 이조참의·이조참판·경기도관찰사·형조판서를 거쳐 사헌부대사헌을 세 번 역임하였다. 18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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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경원(景元). 6판서 집안으로 아버지는 예조판서 이삼현(李參鉉)이다. 1867년(고종 4)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가 되었다. 1880년(고종 17) 성균관대사성에 등용된 뒤 이듬해 이조참의·사간원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883년(고종 20)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정사(正使) 민종묵(閔種黙)과 함께 청나라에 가서 흥선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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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수익(受益), 호는 만회(晩悔). 할아버지는 관찰사 이지신(李之信), 아버지는 증승지(贈承旨) 이력이다. 광해군 때 스승 조수륜(趙守倫)이 화를 당하여 죽자 스승의 친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는데 그가 예에 따라 습렴을 하였다. 또 인목대비의 폐비론이 일자 그에 대한 잘못을 직언하여 죄를 받았다. 이때 초야에 있으면서 당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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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이영발(李英發)이고, 이명민(李命敏)의 조카이다. 1453년(단종 1) 이명민(李命敏)이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김종서·황보인 등과 함께 살해되자 조카 이은동은 연좌(緣坐)되어 관노가 되었다. 1468년(세조 14)에 임금의 병이 심하여 세자(世子)가 계유년(癸酉年) 이래의 난신(亂臣)의 숙질(叔姪)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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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덕재(德哉), 호는 도곡(陶谷). 증조부는 찬성공 이후연(李後淵), 조부는 파주목사 이정악(李挺岳), 아버지는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이다. 어머니는 정경부인으로 군수 정창징(鄭昌徵)의 딸이고, 홍익한(洪翼漢)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서울 북부 진장방(鎭長坊) 소격동의 외가에서 출생하여, 21세 때 도승지로 있었던 아버지 이세백이 기사환국(己巳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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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화진(和軫). 조부는 이경진(李景震), 증조부는 이시정(李時楨), 외조부는 김인태(金寅泰)이고, 아버지는 이세흡(李世翕)이다. 1794년(정조 18) 정시(庭試) 문과 병과(丙科) 31인으로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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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이익은 효종 대에서 숙종 대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송시열을 추종하여 치열한 사색당쟁 속에서 노론과 성쇠를 같이 하였다. 1659년 정언(正言)이었을 때는 술 마시고 추태를 부리는 대신을 탄핵하여 강직함을 드러냈으며, 1674년 송시열이 유배된 뒤 계속된 탄핵으로 양덕(陽德)으로 귀양 갔다가,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후 1682년 송시열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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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희성. 예문대제학을 지낸 이조년(李兆年)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성산군 이포(李褒)이며, 형은 우왕 때 권신인 이인임(李仁任)이다. 태조의 사위인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 이제(李濟)가 그의 아들이다. 밀직사사, 서경부원수 등을 지냈다. 우왕 때 형 이인임이 권력을 남용하여 원성을 사자 여러 차례 충고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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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1558년(명종 13) 무과에 급제, 전라도수군절도사로 있다가, 1583년(선조 16) 니탕개(尼湯介)가 경원(慶源)과 종성(鐘城)에 침입하자 경원부사(慶源府使)가 되어 이를 격퇴하였다. 1586년 니탕개가 재차 회령(會寧)에 침공하자 회령부사(會寧府使)로서 그 본거지를 소탕하는 등 공을 세워 함북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순변사(巡邊使)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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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재학은 조선 후기 영조 대에서 순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이다. 대사간으로 재임할 때는 “오늘날 허다한 하자와 폐단을 이루 거론할 수 없습니다만, 그 병든 근원을 찾으면 오로지 군신상하(君臣上下)가 실(實)이란 하나의 글자를 실행해나가지 않는 데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라고 임금께 당대의 폐단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중(聖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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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여고(汝皐). 조부는 인평부원군 이보혁(李普赫), 아버지는 병조판서 이경호(李景祜)이다. 1757년(영조 33) 정시(庭試) 춘당대에서 장원 급제하였고, 사간원지평·홍문관교리 등 청요직을 역임하였다. 1763년(영조 39) 암행어사로 호서 지방을 감찰하였다. 이어 홍문관교리로서 세자시강원필선·문학 등을 겸임하였고, 사헌부헌납·홍문관수찬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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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종(伯宗). 아버지는 이익령(李翼齡)이며, 조부는 이진규(李震奎), 증조부는 이명웅(李命雄), 어머니는 박희인(朴希仁)의 딸이다. 1740년(영조 16) 증광시(增廣試)에 병과(丙科) 21인으로 급제하였고, 벼슬로 지평·정언·장령·헌납을 거쳐 형조참판에 이르렀으나 1761년(영조 37)에 파직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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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집(景集), 호는 완서(翫西). 이용규(李用奎)의 아들이다.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에서 출생하였다. 1876년(고종 13)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으며, 1880년 감찰(監察)로 수신사 김홍집의 수행원으로, 이후 조병호의 종사관으로 활동하였다. 1882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영선사 김윤식의 고선관으로, 또 사은겸진주사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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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쌍계(雙溪). 증조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흡(李洽)이며, 할아버지는 고려 말기 판도판서(版圖判書)로 있다가 물러나 용인현에 은거하며 조선 건국의 혼란기를 벗어났던 이석지(李釋之)이다. 아버지는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낸 이안직(李安直)이고, 어머니는 문화류씨(文化柳氏)로 판의금(判義禁) 유호(柳滸)의 딸이다. 동생은 제주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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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으로 낙향한 문신. 이종겸은 세종 대 문신으로 활동하다가 세조의 즉위에 따른 혼란과 화를 면하기 위해 형과 함께 문종 때 낙향하였다. 조부인 이석지(李釋之)가 은거했던 용인현 남곡(南谷)으로 내려가 효우당(孝友堂)을 짓고 산수를 읊는 등 한가로운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암곡(岩谷). 증조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흡(李洽)이며,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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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이종무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활동한 무신으로, 이 시기에 빈번하게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성질이 순박하고 진실하였으며, 죽은 뒤에 용인시 고기리에 묻혔다. 태종 대에는 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여 통원군(通原君)에 봉해졌으며,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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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에서 활동한 문신. 1453년(단종 1), 증광시(增廣試) 정과(丁科) 7인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1481년(성종 12) 7월 13일, 장원서장원(掌苑署掌苑)에 제수되었다. 이전 관직은 양지현감이었는데, 이 때 청렴한 생활을 유지하는 한편 훌륭한 시정을 베풀었기 때문에 고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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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정종의 서자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이주국(李柱國) 장군의 고손이다. 아버지는 참판에 추증된 이재의(李載毅)이다. 1809년(순조 9)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승지 및 포도대장을 역임하였다. 묘소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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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이주국은 건장하고 뛰어난 용모와 강직한 성품으로 부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아 명망이 있었다. 문무의 차이가 심한 사회에서 문신의 횡포를 감내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아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언(君言), 호는 오백(梧栢). 정종의 서자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적(李滴)이며, 어머니는 찬성(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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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이중인은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충숙왕 2년에 개경의 일청재(一淸齋)에서 태어났다. 소위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 한 사람이다. 본관은 용인(龍仁). 호는 진초(秦楚). 증조부는 내시낭중(內侍郎中) 이유정(李惟精)이고, 조부는 합문지후(閤門祗候) 이석(李奭)이며, 아버지는 판도판서(板圖判書) 이광시(李光時)이다. 어머니는 행주기씨(幸州奇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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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이증은 세종의 둘째 서자로, 계양군에 봉해졌다. 세종이 끔찍이 사랑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여 공부하기에 게을리 하지 않았고, 특히 글씨에 능하였다. 그러나 세조의 즉위와 관련해서는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안평대군을 제거하였으며, 좌익공신에 책록되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현지(顯之). 아버지는 세종이고 어머니는 신빈김씨(愼嬪金氏)이다.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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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이지노는 좌의정 박세채(朴世采)가 1694년(숙종 20) 노모 봉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면서 자신을 대신할 사람들을 천거할 때 거론했던 인물이다. 숙종은 박세채의 사직을 만류하는 한편, 추천한 사람들을 임용하였다. 또한 이조판서 유상운(柳尙運)으로부터도 재차 추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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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영이(詠而), 호는 송암(松庵). 우의정 이무(李茂)의 후손으로, 아우는 이지례(李之禮)이다. 1567년(선조 즉위년) 무과에 장원급제, 훈련원정으로 있다가 문장에 능통하였으므로 특별히 동반직(東班職)인 주서(注書)에 등용되었고, 곧이어 문무를 겸비한 것을 인정받아 승지로 발탁되었다. 1583년(선조 16)에는 이성현감(利城縣監)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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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이진방은 현종 대에서 경종 대까지 활동한 무신으로 무과에 급제한 뒤 용호위부호군(龍虎衛副護軍)을 거쳐 강진병사(康津兵使)를 지냈다. 묘소는 원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에 있었으나, 1982년에 모현읍 갈담리 갈월마을로 천묘하였다. 사후에 가선대부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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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이징은 태조의 조카이며, 고려 때부터 벼슬에 나아갔지만 주로 활동한 시기는 태종과 세종대이다. 본래 풍질이 있어 이로 인해 죽었다. 아버지가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태종을 도와 난을 진압한 공이 있었고, 이징도 태종대부터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특히 일생에 세 번이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외교적인 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하였다. 본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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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무신. 이찬조는 조선 중기 선조 대부터 인조 대까지 활약한 무신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별천선전관(別薦宣傳官)으로 인조(仁祖)를 남한산성까지 호종(扈從)하였다. 이 후 의병을 이끌고 지금의 성남시 세곡동에 이르렀을 때 적군인 청군(淸軍)에게 포위되었다. 민진익(閔震益)과 함께 힘을 다해 싸워 여러 명의 적군을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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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재원(載元), 호는 허주(虛舟). 아버지는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이시정(李時程)이다. 이천기는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서 일찍부터 학문을 닦았고 예의범절에 밝았다. 1653년(인조 13)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별과로 급제하여 승지(承旨)·한림(翰林)·삼사이랑(三司吏郞)을 역임하였고, 벼슬은 감사(監司)에서 그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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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자안(子安), 호는 눌재(訥齋)·목수(木叟). 영의정 이직(李稷)의 현손이며, 증조부는 이계령(李繼寧)이고, 할아버지는 이숙생(李叔生)이다. 아버지는 정자(正字) 이윤탁(李允濯)이며, 어머니는 신회(申澮)의 딸이다. 부인은 용인이씨(龍仁李氏)로, 이효언(李孝彦)의 딸이다. 아들은 이염(李爓)이다. 이충건은 1510년(중종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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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대이(大爾). 아버지는 효행으로서 감찰(監察)에 증직(贈職)된 이호정(李鎬貞)이며,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 이응회(李應會)의 딸이다. 1882년(고종 19) 58세에 비로소 벼슬길에 들어가 선공감역(繕工監役)을 지냈다. 1893년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하는 한편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제수 받았다. 효성이 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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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덕승(德升). 호조참판증영의정(戶曹參判贈領議政) 이정신(李正臣)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증정경부인(贈貞敬夫人) 전주유씨(全州柳氏)이다. 이현보는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으로, 1723년(경종 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였다.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730년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승지(承旨)·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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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이호(而灝). 증조부는 임천부사 이종무(李宗茂)이며, 할아버지는 증 좌의정(贈左議政) 이회림(李懷林)이다. 아버지는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문강공(文康公) 이석형(李石亨)이다.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로, 감찰(監察) 정보(鄭保)의 딸이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증손녀이다. 부인은 죽산안씨(竹山安氏)로, 사정(司正) 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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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대립(大立), 호는 쌍괴(雙槐). 증조할아버지는 이승충(李升忠)이고, 할아버지는 이봉손(李奉孫)이며, 아버지는 사간 이효독(李孝篤), 어머니는 최명근(崔命根)의 딸이다. 부인은 이규(李逵)의 딸이다. 이홍간(李弘幹)은 1507년(중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513년(중종 8) 식년문과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권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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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유야(悠也), 호는 백치(白痴). 아버지는 대사간 이사경(李士慶)이다. 1618년(광해군 10)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사헌부지평·사헌부장령이 되어 시관(試官) 김륜(金崙)과 임건(林健) 등의 잘못을 탄핵하였다. 이어서 호조정랑·직강·사서를 거쳐 평양서윤이 되었다. 1624년(인조 2) 첨정(僉正)으로 있을 때 명나라 장수 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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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여욱(汝旭). 아버지는 이정준(李廷俊)이며, 어머니는 부평이씨(富平李氏)로 참봉 이희재(李熙載)의 딸이다. 이휘(李暉)[1655~1723]는 숙종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비변사낭관·사재감첨정(司宰監僉正)·평안도절제사·금군장(禁軍將)·방어사를 지냈고, 해남현감 및 덕원·곡산·회령 등의 부사와 옥천군수·정주목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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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수(子壽). 이조판서 이경증(李景曾)의 손자이며, 대사간 이혜(李嵇)의 아들이다. 부인은 둘이 있었는데,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이 모두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첫째는 현감 홍수업(洪受業)의 딸이며, 둘째 부인은 홍현(洪鉉)의 딸이다. 1701년(숙종 27) 벼슬에 나아가 상의별제(尙衣別提)·금부도사(禁府都事), 한성판관(漢城判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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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동보(同甫), 호는 지촌(芝村)이다. 증조부는 우의정 이정구(李廷龜),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이명한(李明漢)이며, 아버지는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이다. 1680년(숙종 6) 유일(遺逸)로 전설별검(典設別檢)·의금부도사 등을 거쳐 진천현감(鎭川縣監) 때는 치적을 쌓았다. 1694년 인천현감(仁川縣監)·지평(持平)·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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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운봉(雲峰), 호는 보덕(輔德).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출생하였고, 증조할아버지는 부사(副使) 임세춘(林世春)이고, 할아버지는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임재(林榟)이며, 아버지는 사복시윤(司僕寺尹) 임태순(林台順)이다. 아들은 임인산(林仁山)·임명산(林命山)·임갑산(林甲山)이다. 임정(林整)[1356~1413]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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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무신. 무과에 급제, 1482년(성종 13) 전주판관에 임용된 후 훈련원 판관·첨지중추부사·전라우수사 등을 거쳐 1492년 회령부사, 1500년(연산군 6) 해랑도초무사(海浪島招撫使), 1504년 좌상대장(左廂大將),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이듬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7년(중종 2) 다시 한성부판윤·판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한성부판윤 재직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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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문신. 정낙용은 조선 철종 대부터 일제시대까지 활동한 문신 관료로, 철종 대에 관료생활을 시작하여 일제시대에는 남작의 작위까지 받은 친일파이다. 경기도 용인시 모현읍 갈담리 갈월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경구(景龜). 방어사(防禦使) 정인기(鄭寅基)의 아들이다. 1855년(철종 6)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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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성유(聖由). 정몽주(鄭夢周)의 10세손으로, 영장(營將) 정주한(鄭周翰)의 아들이다. 정덕징(鄭德徵)[1657~1739]은 조선 후기 효종 대에서 영조 대에 활동한 인물로 궁술(弓術)과 마술(馬術)에 뛰어났다. 1680년(숙종 6)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고, 훈련원주부·판관·서생첨사(西生僉使)·진안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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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성여(聖餘). 승지에 추증된 정간(鄭侃)의 손자이며, 신창현감(新昌縣監) 정주한(鄭周翰)의 아들이다. 정도징(鄭道徵)[1654~1730]은 1676년(숙종 2)에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1689년(숙종 15)에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가 되었다. 그 후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중추부사·도총부사 등을 역임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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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몽란(夢蘭)·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으로 정운관(鄭云瓘)의 아들이다. 1357년(공민왕 6) 감시(監試)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하여 1362년 예문관의 검열·수찬이 되었다. 이때 김득배(金得培)가 홍건적을 격파하여 서울을 수복하고서도 김용(金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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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명숙(明叔), 호는 야수(野叟)이다.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의 증손 정속(鄭束)의 아들이다. 1447년(세종 29) 생원으로 별시 문과에 정과로 합격,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고, 감찰을 거쳐 1453년(단종 1) 예조좌랑으로 있었으나 궐내에 기생을 불러들여 가무음주한 죄로 장형(杖刑)을 받았다. 1455년(세조 1) 교리로서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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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설곡(雪谷). 할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포은(圃隱) 정몽주이며, 아버지는 이조참의 정종성(鄭宗誠)이다. 어머니는 죽산박씨로 제학(提學) 박중용(朴仲容)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박씨로 병마사(兵馬使) 박등(朴登)의 딸이다. 아들은 정윤정(鄭允貞)·정윤화(鄭允和)·정윤관(鄭允寬)이고, 사위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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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군칙(君則), 호는 동리(東里)이다. 좌의정 정언신(鄭彦信)의 손자이며, 정률(鄭慄)의 아들이다. 1613년(광해군 5)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음(門蔭)으로 의금부도사를 거쳐 화순현령·안산군수를 역임하였는데, 모두 혜정(惠政)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1636년(인조 14)에 조신(朝臣)들의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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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가중(嘉仲), 호는 월봉(月峰). 할아버지는 소격서령(昭格署令) 정자급(丁子伋)이고, 아버지는 병조참판 정수강(丁壽岡)이다. 어머니는 지평(持平) 김언신(金彦辛)의 딸이고, 부인은 김수연(金壽延)의 딸이다. 아들은 정응두(丁應斗)이다. 정옥형(丁玉亨)[1486~1549]은 1513년(중종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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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세조를 보좌하며 영의정을 지낸 정인지(鄭麟趾)의 증손이다. 정우(鄭瑀)[1536~1599]는 조선 중기 중종 대부터 선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으로 관위(官位)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좌승지겸경연관참찬관(左承旨兼經筵官參贊官)에 이르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 상미마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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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 병조판서 정옥형(丁玉亨)의 손자이고, 좌찬성 정응두(丁應斗)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군수 송충세(宋忠世)의 딸이다. 1567년(명종 22)에 사마시에 급제하고, 그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에 등용되고, 이어 예조좌랑·수찬·집의·우승지·대사성·부제학·도승지·병조판서·동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난이 일어나자 정여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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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압해(押海)[현재의 전라남도 나주]. 자는 추경(樞卿). 아버지는 병조판서 정옥형(丁玉亨)이고, 어머니는 김언신(金彦辛)의 딸이다. 1521년(중종 16) 진사시에 합격하고, 1534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전적·시강원설서를 거쳐 홍문관에 들어가 정자·저작·부수찬·교리·응교를 차례로 역임하고 이조좌랑·정랑·사헌부지평·장령·시강원보덕·사간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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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사수(士守). 정몽주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정응선(鄭膺善)이다. 정준은 희릉참봉·건원릉참봉을 거쳐 제용감봉사·사재감직장·장흥고주부와 돈령부주부를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조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와서별제(瓦署別提)가 되었다. 이듬해 중국 청(淸)의 태종이 인조의 항복을 받고 이를 기념하는 삼전도비(三田渡碑)를 세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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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정찬술은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한 무신으로 경기도 용인시 왕산리 왕곡마을에서 생활하였다. 83세까지 장수하여 회혼례를 올렸으며, 증손자가 정몽주(鄭夢周)의 사손으로 정해짐으로써 정몽주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술보(述甫). 정몽주(鄭夢周)의 11대손으로 아버지는 수군방어사(水軍防禦使) 정도징(鄭道徵)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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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1611년(광해군 3)에 알성(謁聖) 무과에 급제하였고 도총부도사를 역임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이르렀으나, 이미 적들이 남한산성을 에워싸고 사태가 위급하게 되자 자원하여 출전하였다. 정탁은 북문 밖으로 나아가 장수기를 흔들고 크게 소리쳐 적의 기세를 크게 꺾고 사력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후원을 받지 못하여 패하였고 그 곳에서 죽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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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사우(士優), 호는 동원(東園). 증조부는 정옥형(丁玉亨)이며, 조부는 정응두(丁應斗), 외조부(外祖父)는 한경상(韓景祥)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정윤복(丁胤福)이다. 1601년(선조 34)에 진사(進士)가 되고, 같은 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지평(持平)·정언(正言)·수찬(修撰)·응교(應敎) 등을 역임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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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증조할아버지는 조육(趙育)이고, 할아버지는 사예(司藝) 조충손(趙衷孫)이며, 아버지는 감찰(監察) 조원강(趙元綱)이다. 부인은 첨사(僉使) 이윤동(李允洞)의 딸이다. 아들은 조용(趙容)이다.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한성부 중부 행교동(현재 종로구 경운동)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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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일명 조광좌(趙廣佐). 자는 계량(季良), 호는 회곡(晦谷). 증조부는 도총제(都摠制) 조모(趙慕)이고, 할아버지는 조종효(趙宗孝)이다. 아버지는 군수(郡守) 조훈(趙勛)이다. 형은 조광보(趙廣輔)이고 아우는 조광임(趙廣臨)이다. 조광좌는 1507년(중종 2)에 성균관 유생으로서 박경(朴耕)·김공저(金公著)의 옥사에 연루되어 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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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조변(趙汴)[1500~1582]은 조선 중기 연산군 대부터 선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이다. 본래 학식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으나 천성이 매우 명석하였다. 소년시절부터 안처겸(安處謙)과 서로 사이좋게 지내다가 뒤에 그와 동서 사이가 되었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호연(浩然), 호는 금재(琴齋). 학자이며 대사헌을 지낸 조광조(趙光祖)가 족숙(族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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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가천재(嘉川齋). 증조할아버지는 부원수(副元帥) 조양기(趙良琪)이며, 할아버지는 용성군(龍城君) 조돈(趙暾)이고, 아버지는 양렬공(襄烈公) 조인벽(趙仁璧)이다. 태조의 조카였던 조사(趙師)는 종친에 대한 예우로 중추부사(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아버지 양렬공을 따라 은거하다가 양양에서 죽었다. 충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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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조연(趙捐)[1374~1429]은 벼슬에 나간 뒤 파천된 일이 없었고 4대조에 걸쳐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재화를 탐하지 않고 국정에 힘썼다. 문신이면서도 야인 정벌에 무공을 떨치기도 하였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여정(汝靜), 초명은 조경(趙卿). 아버지는 용원부원군(龍原府院君) 조인벽(趙仁璧)이고, 어머니는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부친인 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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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경민(景敏). 아버지는 조수린(趙壽麟)이며 조인은 여섯째 아들이다. 부인은 영덕정씨(盈德鄭氏)이다. 조인(趙訒)[1555~1631]은 조선 중기 명종 대부터 인조 대까지 활약하였다. 어려서부터 용모와 태도가 크고 위엄이 있어 여러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벼슬하지 않은 일반인으로 의주까지 임금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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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조중회는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선조인 생육신 조려(趙旅)의 기상을 이어받아 죽음을 불사하고 간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영조의 빈번한 사묘(私廟) 참례, 장헌세자(莊獻世子)를 죽게 한 처분 등에 대해 통렬히 논박하였다. 1781년부터 이듬해 죽을 때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 충렬서원의 제32대 원장을 지냈다. 본관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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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양(驪陽). 호는 매호(梅湖). 1126년(인종 4)에 일어난 이자겸의 난을 토평한 공으로 여양군(驪陽君)의 봉작을 받은 대장군 진총후(陳寵厚)의 증손이며, 1170년 정중부의 난 때 문신을 보호해 주었던 참지정사(參知政事) 진준(陳俊)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병부상서(兵部尙書) 진광수(陳光脩)이며, 형은 어사대부(御史大夫) 진식(陳湜)과 예빈경(禮賓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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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1720~1799]은 영조, 정조 대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국정을 주도하였던 문신으로 오광운(吳光運), 강박(姜樸)에게서 수학하였다.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채응일(蔡膺一)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 이만성(李萬成)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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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최규서(崔奎瑞)[1650~1735]는 경기도 광주시 출신으로 숙종대에 관직에 나아간 이후 경종대에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당쟁이 격화된 당시 소론의 영수로 활동하였다. 영조 즉위 후 낙향한 80세의 몸으로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대한 대책을 올려 공신에 녹훈되고, 영조의 묘정에 배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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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대(子大), 호는 이재(頤齋). 증조부는 최업(崔嶪), 조부는 최수준(崔秀俊), 외조부는 유영입(柳永立)이고, 아버지는 부사(府使) 최기남(崔起南)이다. 동생은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신인 최명길(崔鳴吉)이고, 부인은 익성군(益城君) 이형령(李亨齡)의 딸이다. 최내길(崔來吉)[1583~1649]은 1606년(선조 39)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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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강(崔士康)[1388~1443]은 태종의 왕자와 세종의 두 왕자 등 왕실과 연혼하면서 갑자기 현귀하게 되었으나 분수를 지킨 까닭에 세종의 은총이 떠나지 않았다. 이를 배경으로 의정부와 육조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세종 성세(聖世)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부는 선부전서 최득평(崔得枰)이고, 할아버지는 전리판서 문정공(文貞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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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용(崔士庸)[1392~1453]은 세종대의 문신으로 학문이 뛰어났다.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당시의 석학인 완역재(玩易齋) 강대민(姜戴敏)과 문절(文節) 김담(金淡)과 교유하였다. 관직은 내외직을 고루 역임하면서 백성을 아끼고 바르게 다스려 선정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관중. 증조부는 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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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위(崔士威)[1361~1450]는 고려 말기의 혼란기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는 아버지 최유경(崔有慶)을 따랐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이성계의 개국을 도와 개국원종공신이 되면서, 최사위도 자연스레 조선에서 벼슬을 하게 되었다. 최사위는 조선 전기 태종과 세종 대에 활약하였는데, 주로 군사와 관련한 일을 잘해서 국방을 방비하는 데 힘썼다. 만년에는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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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형조판서 최조(崔肇)이다. 1452년(문종 2)에 형조도관좌랑을 거쳐 공조좌랑·이조참의·함경관찰사 겸 순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묘소는 원래 과천시 막계동에 있었으나, 1979년에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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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청반(淸班). 증조부는 한성부윤 최사위(崔士威)이고, 할아버지는 최조(崔肇), 아버지는 관찰사 최선민(崔善敏)이다. 아들은 첨정 최결(崔潔)이며, 최옥호(崔玉浩)는 아우이다. 성종대의 문신으로, 1473년(성종 4)에 충청도도사를 지냈다. 1481년(성종 12)에 경차관이 되어 평안도와 황해도를 살폈다. 1483년(성종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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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부는 한성부윤 최사위(崔士威)이고, 할아버지는 최조(崔肇)이며, 아버지는 관찰사 최선민(崔善敏)이다. 아들은 목사 최항(崔沆)이고, 형은 최옥순(崔玉筍)이다. 성종대에 절충장군으로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을 지냈다. 묘소는 원래 과천시 막계동에 있었으나, 1979년 과천서울대공원 건설 때 용인군 남사면 완장리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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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지(慶之), 호는 죽정(竹亭). 조부는 선부전서(選部典書) 상호군(上護軍) 최득평(崔得枰)이고, 아버지는 감찰대부(監察大夫) 최재(崔宰)이며, 어머니는 무안군부인(務安郡夫人) 박씨(朴氏)의 딸이다.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1372년(공민왕 21) 판도사좌랑(版圖司佐郎)이 되어 각 도에서 의염(義鹽)의 염분(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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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한성판윤 최사위(崔士威)이고, 아들은 이조참의와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한 최선민(崔善敏)이다. 형조판서를 역임하고, 후에 이조판서를 제수받았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묘소는 원래 과천시 막계동에 있었으나, 1979년에 용인시 남사면 완장리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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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건(士建), 호는 잠와(潛窩).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증직된 최신보(崔臣輔)의 셋째 아들이다. 최진립(崔震立)[1568~1636]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동생 최계종(崔繼宗)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우고,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여 부장(部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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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회숙(晦叔).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한이(韓頤)이며, 부인은 밀양박씨(密陽朴氏) 박행장(朴行狀)이다. 한명윤(韓明胤)[1542~1593]은 1568년(선조 1)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천거를 받아 연은전참봉(延恩殿參奉)이 되었다. 1592년(선조 25) 9월 27일 영동현감(永同縣監)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고,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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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계형(季亨), 호는 만오(晩悟), 초명은 용구(用九).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한후유(韓後裕)이다. 한용구(韓用龜)[1747~1828]는 영조 대부터 정조, 순조의 3대에 걸쳐 활동하였으며 1772년(영조 48) 황감제(黃柑製)에 장원 급제하였다. 1773년(영조 49)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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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지역에 은거한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의성(義成). 한의증(韓義增)[1694~1764]은 1718년(숙종 44)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부호군(副護軍)에 이르렀으나 당쟁과 정변이 많은 조정에 회의를 느껴 사직하고 작은할아버지 묘가 있는 용인현(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기흥동)에 은거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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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회이(晦而). 아버지는 성균관진사로서 생애를 마치고 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된 한사범(韓師范)이다. 조부는 한배의(韓配義), 증조부는 한성우(韓聖佑), 외조부는 유명흥(兪命興), 처부는 심봉휘(沈鳳輝), 아우는 한익모(韓翼謨)이다. 1723년(경종 3)에 증광시(增廣試) 문과 병과(丙科)에 급제한 뒤 1725년 예문관 검열이 되었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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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백창(伯昌). 아버지는 대사헌(大司憲) 한현모(韓顯謨)이다. 백창(伯昌) 한후유(韓後裕)[1713~1791]는 숙종 대부터 정조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1748년(영조 24) 35세 때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1751년(영조 27)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을 제수 받은 후, 세손좌종사(世孫佐從史)·사복시주부(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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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이숙(而肅). 조부는 통제사(統制使) 허임(許任)이며, 아버지는 군수(郡守) 허즙(許濈)이다. 아들은 허선(許選)이다. 허계(許棨)[1798~1866]는 1814년(순조 14) 천거로 선전관(宣傳官)이 되고, 1815년(순조 15) 무과에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 함남병마절도사(咸南兵馬節度使), 1841년(헌종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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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미숙(美叔), 호는 하곡(荷谷). 아버지는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서 학자·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허엽(許曄)이며, 어머니는 둘째 부인인 강릉김씨(江陵金氏)로서 예조판서(禮曹判書)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이복형인 허성(許筬)이 있으며, 동생으로 허균(許筠)과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있다. 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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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공신. 본관은 양천(陽川). 아버지는 갈충효성병기익명영사공신(竭忠效誠炳幾翊命寧社功臣)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제수 받았던 허계(許契)이다. 1628년(인조 6) 유효립(柳孝立)은 전(前) 세마(洗馬) 허유(許유)·전(前) 좌랑(佐郞) 정심(鄭沁)·도감초관(都監哨官) 윤계륜(尹繼倫) 등과 내통하여 자기 아들과 추종자를 도성(都城)으로 잠입시켜 광해군을 상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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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공언(功彦), 호는 악록(岳麓)·산전(山前). 아버지는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서 학자·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허엽(許曄)이며, 어머니는 둘째 부인인 강릉김씨(江陵金氏)로서 예조판서(禮曹判書)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이복동생인 허봉(許篈)과 허균(許筠)이 있으며, 여동생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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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태휘(太輝), 호는 초당(草堂). 아버지는 군자감부봉사(軍資監副奉事) 허한(許瀚)이며, 부인은 강릉김씨(江陵金氏)로서 예조판서(禮曹判書)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아들은 허성(許筬)·허봉(許篈)·허균(許筠)이고, 딸은 허난설헌(許蘭雪軒)이다. 허엽(許曄)[1517~1580]은 1546년(명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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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순보(純甫), 호는 담와(淡窩). 아버지는 참판 홍우전(洪禹傳)이며, 어머니는 대사헌(大司憲) 이상(李翔)의 딸이다. 담와(淡窩) 홍계희(洪啓禧)[1703~1771]는 영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시무에 밝고 경세치용(經世致用)에 관심이 많았던 개혁 실천주의자이다. 스스로 노론 이재(李縡)의 문인이라 했으나 대다수의 이재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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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중서(仲瑞). 아버지는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 홍하명(洪夏明)이다. 첫째 부인은 죽산안씨(竹山安氏)이며, 둘째 부인은 의령남씨(宜寧南氏)이다. 홍우구(洪禹龜)[1689~1730]는 1715년(숙종 41) 무과에 급제한 뒤 군수를 역임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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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아버지는 홍수득(洪守得)이다. 홍제(洪霽)[1553~1625]는 명종 대부터 인조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무과에 급제한 후 오위낭청(五衛郎廳)을 거쳤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는 군관으로 수원 방어에 공을 세워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책록되었고,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에 있으며, 묘소 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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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군석(君錫). 임진왜란 때 선무원종공신(宣撫原從功臣)인 홍제(洪霽)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홍유량(洪有量)이다. 첫째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전주이씨(全州李氏)이며, 둘째 부인은 정부인 진주유씨(晉州柳氏)이다. 형은 홍하창(洪夏昌)이다. 홍하명(洪夏明)[1645~1705]은 현종 대와 숙종 대에 걸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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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성초(聖初). 임진왜란 때 선무원종공신(宣撫原從功臣)인 홍제(洪霽)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홍유량(洪有量)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진주유씨(晉州柳氏)이다. 아우는 홍하성(洪夏成)과 홍하명(洪夏明)이 있으며, 서제(庶弟)로 홍하업(洪夏業)과 홍하적(洪夏績)이 있다. 홍하창(洪夏昌)[1638~1714]은 현종 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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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여온(汝溫), 호는 겸제(謙濟). 증조부는 황징(黃澄)이며, 조부는 황준원(黃浚源)이고, 외조부는 조계상(曹繼商)이다. 아버지는 황순경(黃舜卿)이고,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준(尹濬)의 딸이다. 황림(黃琳)[1517~1597]은 1552년(명종 7) 식년시(式年試)에서 을과 4인으로 급제하여 1562년(명종 17) 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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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수효(秀孝)·계효(季孝)[세종실록에는 계효로 되어 있다.], 호는 나부(懦夫)·신부(侁夫). 아버지는 세종조의 명상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황희(黃喜)이며, 형은 판서(判書) 황치신(黃致身)이다. 황수신(黃守身)[1407~1467]은 1423년(세종 5) 사마시(司馬試)에 응시하였다가, 학문이 부진하다고 시관(試官)에게 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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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서 활약한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명보(明甫). 황희(黃喜)의 5세손이며, 아버지는 증좌의정(贈左議政) 황윤공(黃允恭)이다. 황진(黃進)[1550~1593]은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1591년(선조 24)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 미구에 일본이 내침(來侵)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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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자영(子永), 호는 소원(少原). 증조부는 황을구(黃乙耈)이고, 할아버지는 황하신(黃河信)이며, 아버지는 증좌찬성(贈左贊成) 황사간(黃士幹)이다. 아들은 황석경(黃碩卿)과 황준경(黃俊卿)이 있다. 황효원(黃孝源)[1414~1481]은 세조 대부터 성종 대에 걸쳐 활동하였으며, 특히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왕위에 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