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896
한자 李禮堅
영어음역 Lee Yegyeon
이칭/별칭 불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436년연표보기
몰년 1510년연표보기
본관 한산
대표관직 대사간|승지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불린(不磷). 고조부는 목은(牧隱) 이색(李穡). 증조부는 제학을 지낸 이종학(李種學)이며, 할아버지는 이숙묘(李叔畝)이다. 아버지는 이형증(李亨增)이고, 어머니는 조아(趙雅)의 딸이다. 부인은 선산김씨로, 김관안(金寬安)의 딸이다. 아들은 좌참찬(左參贊) 이자(李耔)이다.

[활동사항]

이예견성종 대에 활약하였다. 승사랑(承仕郞)으로 있을 때인 1471년(성종 2)에 문과 별시에서 4등으로 급제하였다. 1473년(성종 4) 임금이 풍양에서 강무(講武)하였는데, 주을동(注乙洞)에서 사냥을 구경하였다. 이때 잡은 날짐승을 종묘(宗廟)에 바쳤다. 1474년에 예문관검열로 있으면서 경성(京城)의 진제장(賑濟場)을 규찰하였다.

1475년(성종 6)에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마신 죄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1483년(성종 14)에 사간원헌납·소격서령을 역임하였다. 다음해에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다. 평안도에서 담당하고 있는 짐바리를 다른 도에 분담할 것을 건의하였으며, 무예도시(武藝都試)에서 강서(講書)하는 일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1490년(성종 21)에 사헌부장령에 임명되었다. 1492년에는 집의(執義)로 있으면서, 승려의 수가 너무 많아 군액(軍額)이 부족하므로 도(道)의 감사(監司)가 모든 승려를 다 색출하여 그 이름을 기록해서 예조에 이문(移文)하게 하며, 만약 허위로 이를 조작한 자가 있다면 일체 환속시키자는 건의를 하였다.

1492년(성종 23) 삼척부사를 거쳐 대사간이 되었다. 삼척부사로 있을 때 강원도의 거주민 수와 잡요역의 양이 맞지 않아 폐단이 있음을 상소하여 시정하였다. 이로 인해 강원도관찰사에게 조심(操心)하고 근간(謹簡)하게 하여 백성을 구제하는 데 유의(有意)함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1504년(연산군 10)에 승지로 있으면서 홍귀달(洪貴達) 등과 함께 임금의 폭정을 극간하였다가 파직되어 용궁(龍宮)에 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났으며, 이후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