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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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源逸 |
영어음역 | Lee Wonil |
이칭/별칭 | 경원(景元)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광준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용인. 자는 경원(景元). 6판서 집안으로 아버지는 예조판서 이삼현(李參鉉)이다.
[활동사항]
1867년(고종 4)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가 되었다. 1880년(고종 17) 성균관대사성에 등용된 뒤 이듬해 이조참의·사간원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883년(고종 20)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정사(正使) 민종묵(閔種黙)과 함께 청나라에 가서 흥선대원군을 만나고 돌아온 뒤 이조참판이 되었다.
그 후 이범진과 함께 협판내무부사(協瓣內務府事)에 등용되었고,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890년 방곡령 사건이 일어나자 조병식 대신 함경도관찰사로 임명되었다. 당시 함흥부민이 봉기하자 해직되어 무주(撫州)로 유배되었다가 사헌부대사헌에 임용되었다.
1897년에는 궁내부특진관이 되어 칙임관 4등이 주어졌다가 중추원 2등 의관에 임명되었다. 1899년 규장각직학사에서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되었다가 1903년 왕실의 의례를 맡았던 장례원경(掌禮院卿)을 거쳐 1907년 다시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