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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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汴 |
영어음역 | Jo Byeon |
이칭/별칭 | 호연,금재,정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영문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광준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개설]
조변(趙汴)[1500~1582]은 조선 중기 연산군 대부터 선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이다. 본래 학식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으나 천성이 매우 명석하였다. 소년시절부터 안처겸(安處謙)과 서로 사이좋게 지내다가 뒤에 그와 동서 사이가 되었다.
[가계]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호연(浩然), 호는 금재(琴齋). 학자이며 대사헌을 지낸 조광조(趙光祖)가 족숙(族叔)이다. 아버지는 현령(縣令) 조광언(趙光彦)이고, 어머니는 문화류씨(文化柳氏)로 절도사 류제(柳悌)의 딸이다.
[활동사항]
1521년(중종 16)에 안처겸은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킨 심정(沈貞)·남곤(南袞) 등의 숙청과 경명군(景明君)[성종의 열 번째 아들]의 추대를 모의하였다는 송사련(宋祀連)의 무고로 국문을 받았는데, 이를 신사무옥(辛巳誣獄)이라고 한다. 조변은 이때 들것을 메는 하인으로 변장하고 옥문을 출입하면서 안처겸의 안부를 살폈다. 조변 역시 송사련의 무고로 혹독한 형장을 받아 강진으로 귀양을 갔다가 19년 만에 풀려났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영문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익(貞翼)이고, 좌찬성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