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용인문화대전 > 용인의 마을 이야기 > 백암마을 > 백암전통시장 > 백암보다 더 알려진 백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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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 은 백암면 백암리에 개장하는 정기적인 재래시장으로, 날짜의 끝에 1, 6이 붙는 날에 주기적으로 열리는 5일장에 속한다. 용인시와 이천시, 안성군을 잇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과거 경상도에서까지 소를 사러 올라올 정도로 큰 쇠전이 열렸던 규모가 큰 시장이었다. 백암장은 백암장이 서는 곳에는 음식점, 채소가게, 어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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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은 꼭 사거나 팔 물건이 없더라도 구경삼아 시장에 나와 본다. 이것이 농촌시장의 특징이다. 그래서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 씨오쟁이 짊어지고 따라간다.”라는 속담도 있다. 평소에는 조용하던 농촌의 마을도 장날이 되면 활기를 띤다. 장터에 이르는 길은 손이나 어깨, 등, 머리 위에 곡식자루, 닭, 계란, 채소 등을 이거나 지고 나오는 농민들로 북적거린다. 장에는 못 보던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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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백암장에는 여러 유형의 장꾼들이 모여들었다. 물건을 점포가 아닌 빈 장소를 찾아 자리를 깔고 물건을 파는 난전상인, 관의 허가를 받지 않은 금지된 품목을 판매하는 잠상, 철 지나 헐고 값이 싼 물건을 파는 마병장수, 닭이나 오리를 어리에 넣어 파는 어리장수, 곡식을 마소에 싣고 다니며 파는 시겟장수, 버스정류장에서 물건을 파는 거리목장수가 그들이다. 이밖에도 물건을 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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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에는 7월 백중이면 인근의 주민들이 몰려와 더욱 장사진을 이뤘다. 이 날은 씨름대회가 열리고 사당패들이 들어와 한바탕 놀고 물러났다. 대부분의 마을에서 백중날 여는 동네잔치나 연희가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었다. 그러나 백중장날에 열리는 백암장만큼은 예전의 흥겨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백중이 가까워지면서 세벌 논매기가 끝나게 된다. 따라서 농사의 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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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의 주가를 올린 것은 쇠전(우시장)이었다. 용인뿐만 아니라 인근의 5일장 중에 가장 거래가 왕성하였던 장이 백암장이다. 1918년 말의 조사에 의하면 당시 전국의 우시장은 모두 655개소였다. 당시 단위시장으로 큰 시장으로 유명했던 곳은 함북 명천군의 명천장과 길주군 길주장으로서 거래량이 2만5천두 이상이었다. 그 다음으로 수원군 수원장, 양주군 삼패장 등이 2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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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전의 위세에 눌려 잘 기억되고 있지 못하지만 백암장의 싸전도 규모가 컸다. 당시 백암 주민들이 직접 곡식과 채소를 가지고 나가면 장터 입구에 미곡 상인들이 줄을 서 있다가 쌀을 구매했다. 그때는 말이 없어서 됫박으로 팔았는데, 됫박 크기가 대중이 없었기 때문에 미곡 상인들은 되가 다른 두 차이로 이문을 남기기도 했다. 주민들로부터 구매한 상인들은 장터에서 이문을 남기고 판매를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