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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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山金氏八門遺墟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Gwangsan Gim Clan |
이칭/별칭 | 팔문유허비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 573-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구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광산김씨 종중에서 세운 유허비.
[개설]
조선 전기의 문신 광산김씨 김성원(金性源)의 여덟 아들이 모두 생원, 진사에 합격하고, 그중 네 명은 대과에 합격하여 청관현직(淸官顯職)으로 출세한 것을 ‘팔문(八文)’이라 하고 이를 기려 세운 비석이다.
[건립경위]
충주시 엄정면 율종리는 ‘팔문(八文)’이 태어난 곳이다. 광산김씨 문경공(文敬公) 김예몽(金禮蒙)의 손자이자 좌익원종(左翼原從) 2등공신에 책록된 증이조참판인 김성원(金性源)의 여덟 아들 중 첫째 김백문(金伯文)은 광릉참봉을 지냈고, 김중문(金仲文)은 조지서사지(造紙署司紙), 김숙문(金叔文)은 정국원종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승정원 좌승지로 추증되었다.
김계문도 정국원종공신에 속하게 되었고, 단서철권(丹書鐵券)의 은전을 받았으며 승정원좌승지에 증직되었다. 김윤문은 예조정랑을 지냈고, 김철문은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김말문(金末文)은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형조참의와 이조참의를 역임하고 이조참판 겸 지의금부 성균관 춘추관사에 추증되었다. 막내인 김내문(金乃文)은 사헌부지평을 거쳐 홍문관교리, 사간원사간으로 승진되었다. 이중 김중문의 후손만 고향을 지키다 1912년 10월에 팔파종족(八派宗族)들이 선조의 유허가 이곳이었음을 알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위치]
본래의 유허지는 엄정의 밤마루였는데, 타인의 사유지가 되는 바람에 현재의 금가면 잠병리 잠병고개에 건립하였다. 이곳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충주석총(忠州碩塚)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는 중신을 예장한 곳이라 함부로 고개를 넘지 못하게 하여 새현(塞峴)이라 하였다가, 묘막이 있다는 관계로 막현(幕峴)이라 이름 붙은 곳이다.
[형태]
귀부이수의 형태로 귀부는 230×130×68㎝, 비신 74.5×202×42.5㎝, 이수 87×58×60㎝의 크기이다. 낮게 돌기둥을 세우고 울타리를 둘렀다.
[금석문]
비제는 10×10㎝ 크기의 해서체로, ‘광산김씨사온직장공 영파팔문 유허비(光山金氏司醞直長公英派八文遺墟碑)’라 음기하였고, 2.5×2.5㎝ 크기의 해서체로 왼쪽 면부터 ‘사온직장공영파팔문(司醞直長公英派八文)’을 소개하고 첫째 김백문부터 김내문까지의 공적과 1912년 10월에 건립하게 된 경위를 자세히 음기하였다.
[현황]
광산김씨 종중에서 관리를 잘하고 있으나, 숲 속에 위치하고 있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약 50여m 아래쪽으로 김예몽(金禮蒙) 묘 및 신도비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사온서직장부군(司醞暑直長府君) 4인의 제단을 마련하였다.
[의의와 평가]
후손들에게 가문의 영광을 알리고 잊지 않게 하려는 기록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여덟 형제가 서로를 북돋워가며 공부를 하여 한 시대에 모두 출세한 특이한 기록이다. 정국원종공신에 2명이 책록되었으며, 승정원좌승지 3명, 예조정랑·사간원사간 등을 역임한 것은 드문 일이어서 후세인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