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향조 이덕량의 자는 하경(厦卿)이고 처음이름은 덕명(德明)이라 했으며, 어려서는 현덕(玄德)이라 불렀다가 다시 덕량으로 바꾸었다. 그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장남인 진안대군 이방우(李芳雨)의 9세손이다. 만년에 벼슬하여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에 이르렀으며 통정대부 호조참의에 증직되었다. 묘소는 풍덕의 동북쪽 사락리 산 60의 엄동 황금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그에게는 아들이 셋이...
제내리는 전주이씨 진안대군파의 집성촌으로 번성을 이루어 왔다. 이덕량의 부친인 이식(李軾)을 시조로 방호파를 이룬 것이다. 이처럼 전주이씨가 대종을 이루며 세거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의 공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부분의 마을에 존재했던 대동계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대동계의 역할을 종회가 중심이 되어 풀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성동마을의 경우에는 타성의 유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