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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경기도 용인 광교산에서 벌어진 청나라 군대와의 전투. 1637년 1월 4일부터 6일까지 전라병사 김준룡이 광교산에서 청나라 장수 양굴리[楊古利]가 이끄는 청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 1636년 12월 1일, 청나라 태종이 조선을 침략하자 인조는 세자와 백관을 대동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이후 인조는 1만 3,000여 명의 군사로 남한산성을 지키도록 하고 도원수·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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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지비옹(知非翁)이다. 할아버지는 한성소윤(漢城少尹) 김근(金近), 아버지는 첨정 김훈(金薰)이며, 어머니는 진천(鎭川) 송씨 송학(宋翯)의 딸이며, 부인은 부사 이탁(李鐸)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다음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여러 관직을 거쳐 수찬, 사헌부지평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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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구경(久卿), 호는 척약재(惕若齋). 아버지는 대광(大匡) 김정(金鼎)이다. 아들은 김처(金處)와 김허(金虛)이다. 아들 김처는 아버지가 명나라에서 죽자 미쳤으며, 김허는 벼슬이 부정(副正)에 이르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1371년(공민왕 20)에 실시된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로로 나섰다. 이후 전교주부(典敎注簿)가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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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회정당(晦靜堂)이다. 증조부는 김덕수(金德秀), 할아버지는 김비(金棐), 아버지는 김흥우(金興宇)이고, 외조부는 조희맹(趙希孟)이다. 아들은 김좌명(金佐明), 손자는 김석주(金錫胄)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급제하고 이후 성균관에서 수학했다.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16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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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숙진(叔珍), 호는 눌암(訥庵). 조부는 김려(金濾), 아버지는 형조참의 김언침(金彦沈)이다. 1567년(명종 22)에 진사가 되고, 1568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1570년에 검열(檢閱)이 되고, 이후 대교·봉교·전적·형조정랑·검상·사인·이조정랑 등의 관직과 지평·집의·정언·헌납·사간·수찬·교리·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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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의 금령 전투에서 승리한 의병장. 본관은 언양.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이다. 증조부는 김응복(金應福), 할아버지는 김식(金湜), 아버지는 김중기(金重器)이며, 외할아버지는 이용(李蓉), 부인은 박덕창(朴德昌)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가 되고, 1578년 임실현감(任實縣監)을 지냈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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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윤섬과 윤계의 사당. 남원윤씨 사당은 1587년(선조 20) 종계 변무 사건 때 서장관으로서 명나라에 가 『개정보전(改正寶典)』을 받아온 공으로 수기광국공신(修記光國功臣)으로 책록된 윤섬과 병자호란 때 순절한 그의 손자 윤계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사당은 정면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 칸에는 윤섬의 신위가 봉안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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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개국공신.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 남천로(南天老),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남을번(南乙蕃)이며, 형은 영의정 남재(南在), 아우는 우정승 남지(南贄)이다. 1374년(공민왕 23) 성균시에 급제, 1380년(우왕 6) 사직단직(社稷壇直)이 되고 이어서 삼척지군사(三陟知郡事)가 되어 왜구를 격퇴,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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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학원(學源). 찬성사(贊成事) 류만수(柳曼殊)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지낸 류은지(柳殷之)이다. 1445년(세종 27) 류사(柳泗)[1423~1471]는 내금위에 소속되었다가 1447년(세종 29) 오위(五衛) 부사정(副司正)으로 있었다. 이때 죄를 지어 죽은 할아버지 유만수의 녹권이 삭제당하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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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초명은 박승업(朴承業), 자는 응휴(應休), 호는 암수(巖叟)·추탄(秋灘). 박은(朴誾)의 증손이다.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장령·사간원정언을 지냈다. 1599년 대사헌 홍여순(洪汝諄)을 탄핵·파면시켰으나, 뒤에 그가 다시 기용되자 사헌부집의 김신국(金藎國), 사간원사간 송일(宋馹) 등과 함께 파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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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지구(之衢), 호는 만절당(晩節堂). 증조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고, 할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며, 아버지는 병조참의를 지낸 연흥군(延興君) 박고(朴翶)이다.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따님이다. 아들은 찬성사(贊成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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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곤산(昆山)[昆陽]. 자는 달지(達之), 시호는 양호(襄胡)이다. 곤산배씨(昆山裵氏)의 시조이다. 어려서부터 담력이 뛰어났으며 궁마(弓馬)와 병법에 능통했다. 1447년(세종 29) 내금위 사용(司勇)에 임명되었고 1454년(단종 2) 무과에 급제했다. 1464년(세조 10)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있을 때 진응사(進鷹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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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청나라 군대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 1627년(인조 5) 후금(後金)[뒤의 청나라]의 1차 침입 때 조선과 후금은 형제의 맹약을 하고 두 나라 관계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나라 이름을 청(淸)으로 고친 후금은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의 맹약’을 ‘군신(君臣)의 의(義)’로 개조하자고 요청을 해올 뿐 아니라 무리한 세폐와 정병 3만까지 요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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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 서거정의 서첩. 『서거정 필적』은 1476년(성종 7) 1월 말 우리나라에 온 명나라 사신 호부 낭중(戶部郞中) 기순(祁順)과 사신 일행을 맞이한 원접사(遠接使) 서거정의 글씨가 함께 실려 있는 서첩이다. 표지에는 ‘천사 사한 진적(天使詞翰眞蹟)’이라 쓰여 있다. 표지를 제외한 첩의 안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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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 영조가 선죽교를 지나다가 느낀 감회를 지은 어제시(御製詩). 「선죽교시(善竹橋詩)」는 영조가 선죽교를 지나가다 포은 정몽주의 도덕과 충정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한시 작품이다. 본래는 석비에 새기어 개성의 선죽교 옆에 세운 것으로, 훗날 시판(詩板)으로 만들어져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포은선생영당의 벽에 걸렸다. 칠언으로 2구만 전한다. 소지(小識)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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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안동권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권근의 시문집. 『양촌선생집(陽村先生集)』은 조선 전기 태종 대의 문신인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의 시문집으로, 1674년(현종 15)에 중간한 후쇄본이다. 19권 4책이며 목판본이다. 표제는 양촌선생집(陽村先生集)이다. 크기는 가로 20㎝, 세로 27.5㎝이다. 『양촌선생집』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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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섬한을 시조로 하고 김광유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 김섬한(金暹漢)은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으로, 고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감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지냈다. 한 형제가 같은 조정에 벼슬하면서 왕에게 직간하다가 도리어 왕의 노여움을 사서 형은 강릉에, 아우는 연안으로 유배되었다. 김섬한의 후손들이 연안김씨로 전해진다. 김섬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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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익(汝益), 호는 추탄(楸灘) 또는 토당(土塘). 사헌부 감찰을 지낸 오경민(吳景閔)의 손자이고, 선공감역 오희문(吳希文)의 아들이며, 부인은 이응화(李應華)의 딸이다.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한 뒤 문음으로 영릉참봉(英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다시 봉선전참봉(奉先殿參奉)에 임명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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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오윤겸의 묘. 오윤겸(吳允謙)[1559~1636]의 자는 여익(汝益), 호는 추탄(秋灘), 또는 토당(土塘)이다. 오윤겸의 본관은 해주이며, 보물 제1096호인 『쇄미록(瑣尾錄)』을 남긴 선공감역 오희문(吳希文)의 아들이다. 오윤겸은 어머니가 용이 하늘로 오르는 태몽을 꾼 뒤 잉태하여 초명을 성룡(星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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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오희문의 일기집. 『쇄미록(瑣尾録)』은 조선 중기에 선공감 감역을 지낸 비연(斐然) 오희문(吳希文)[1539~1613]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여러 곳으로 피난하며 10여 년간 쓴 일기이다. 1991년 9월 30일에 보물 제1096호로 지정되었다. 오희문이 난리 중에도 이와 같은 글을 남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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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선조가 원균에게 내린 선무공신 교서. 1592년(임진년)과 1597년(정유년)에 발발한 두 차례의 전란이 수습된 뒤 선조(宣祖)[1552~1608]는 국란의 위기 속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을 공신으로 책봉하였다. 선무공신은 임진왜란 당시 직접적으로 무공을 세웠거나 명에 병량 주청사(兵糧奏請使)로 다녀온 이들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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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문인으로서 무인을 능가하는 무예를 가지고 있었다. 야인(野人)을 정벌하여 정세를 편안히 하였으며, 중종의 즉위에 공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었으며, 이과(李顆)의 옥사를 다스려서는 정난공신(定難功臣)에 추대되었다. 또한 삼포왜란(三浦倭亂)을 토벌한 공으로 영의정에 오르기도 하였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지옹(智翁), 호는 청천(菁川). 증조부는 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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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여진(如進), 호는 과재(果齋)이다. 증조부는 윤시영(尹時英), 조부는 윤징(尹澄), 아버지는 윤우신(尹又新)이다. 외조부는 유문윤(柳文潤), 부인은 원경심(元景諶)의 딸이고, 아들은 윤형갑(尹衡甲)이다. 1583년(선조 1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檢閱)·지평(持平) 등을 지냈다. 1587년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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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청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충신 윤섬과 그 손자 윤계의 정려문. 윤섬의 본관은 남원이고, 호는 과재(果齋)이다. 1583년(선조 16)에 문과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을 거쳤으며, 1587년(선조 20)에 조선 왕실의 세계(世系)가 명나라에서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은 종계변무(宗系辨誣) 사건 때 서장관(書狀官)으로 공을 세워 수기광국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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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숙보(叔保). 윤관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문하평리 충간공(忠簡公) 윤승순(尹承順)이고, 할아버지는 좌명공신(佐命功臣) 소정공(昭靖公) 윤곤(尹坤)이며,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영천부원군(鈴川府院君) 윤삼산(尹三山)이다. 아들은 윤은로(尹殷老)와 정국공신(靖國功臣)인 윤탕로(尹湯老)이다. 딸이 성종의 세 번째 왕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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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이경석(李景奭)[1595~1671]은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 산림의 학자들을 대거 천거하여 요직에 오르도록 도와주었으나 훗날 그가 천거한 송시열과 정적이 되어 노소분당(老少分黨)이 이루어지면서 소론의 비조가 되었으며, 조선 중기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하였던 명상(名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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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이경장(李敬長)[1482~1561]은 은의(恩義)로 백성을 다스렸으며 근면함을 생활신조로 삼았다. 두루 관직을 역임하면서 80세가 되도록 큰 허물이 없었으니 모든 사람들이 칭송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흠중(欽仲). 호는 역헌(櫟軒). 증조부는 증 좌의정(贈左議政) 이회림(李懷林)이고, 조부는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석형(李石亨)이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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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수지(修之), 호는 계은(桂隱). 증조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李承顔)이고, 조부는 상호군(上護軍) 이정공(李靖恭)이다. 아버지는 증좌의정(贈左議政) 이원발(李元發)이며, 어머니는 성천김씨(成川金氏)로 중랑장(中郞將) 김남보(金南寶)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홍언수(洪彦修)의 딸인데 후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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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이귀산(李貴山)[?~1424]은 형 이귀령(李貴齡)과 함께 태조가 임금이 되기 전의 친구였으나 태조 대에는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고 주로 태종 대에 활동하였다. 각 도의 관찰사를 역임하면서 지방 행정을 담당하여 국초의 창업 기틀을 잡는 데 공헌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흥서(興瑞), 호는 괴은(槐隱, 塊隱). 증조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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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이선(理善), 호는 쌍곡(雙谷). 조부는 병조정랑 이신충(李藎忠), 아버지는 진사 출신 이계인(李啓仁)이다. 어머니는 세종의 6세손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외가에서 자랐다. 1590년(선조 23) 생원 급제 후 1601년(선조 34) 식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 시작하여 병조좌랑·형조좌랑·예조좌랑과 삼화현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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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용인에 은둔한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남곡(南谷).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낸 이송현(李松賢)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경덕재생(慶德齋生) 이흡(李洽)이며, 어머니는 영천윤씨(永川尹氏) 윤취(尹就)의 딸이다. 이석지(李釋之)는 이곡(李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341년(충혜왕 2)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함께 성균시(成均試)에 급제하여 진사(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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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이석형(李石亨)[1415~1477]은 세종 대부터 성종 대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김반(金泮)의 문인이다. 뛰어난 학문으로 당대 8대 문장가로 꼽히기도 하였다. 집현전학사였으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死六臣)에는 포함되지 않으며,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를 짓는 것에 그쳤다.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에 “중국은 다만 성곽(城郭)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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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이완(李莞)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때 활약한 무신으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조카이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을 도와 공을 세웠는데, 1598년(선조 31) 노량해전(露粱海戰)에서는 이순신의 전사를 알리지 않고 병사를 독려하여 대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열보(悅甫). 이정(李貞)의 손자이며, 진주(晋州) 강세온(姜世溫)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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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1558년(명종 13) 무과에 급제, 전라도수군절도사로 있다가, 1583년(선조 16) 니탕개(尼湯介)가 경원(慶源)과 종성(鐘城)에 침입하자 경원부사(慶源府使)가 되어 이를 격퇴하였다. 1586년 니탕개가 재차 회령(會寧)에 침공하자 회령부사(會寧府使)로서 그 본거지를 소탕하는 등 공을 세워 함북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순변사(巡邊使)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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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이종무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활동한 무신으로, 이 시기에 빈번하게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성질이 순박하고 진실하였으며, 죽은 뒤에 용인시 고기리에 묻혔다. 태종 대에는 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여 통원군(通原君)에 봉해졌으며,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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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이징은 태조의 조카이며, 고려 때부터 벼슬에 나아갔지만 주로 활동한 시기는 태종과 세종대이다. 본래 풍질이 있어 이로 인해 죽었다. 아버지가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태종을 도와 난을 진압한 공이 있었고, 이징도 태종대부터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특히 일생에 세 번이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외교적인 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하였다. 본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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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대립(大立), 호는 쌍괴(雙槐). 증조할아버지는 이승충(李升忠)이고, 할아버지는 이봉손(李奉孫)이며, 아버지는 사간 이효독(李孝篤), 어머니는 최명근(崔命根)의 딸이다. 부인은 이규(李逵)의 딸이다. 이홍간(李弘幹)은 1507년(중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513년(중종 8) 식년문과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권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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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유야(悠也), 호는 백치(白痴). 아버지는 대사간 이사경(李士慶)이다. 1618년(광해군 10)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사헌부지평·사헌부장령이 되어 시관(試官) 김륜(金崙)과 임건(林健) 등의 잘못을 탄핵하였다. 이어서 호조정랑·직강·사서를 거쳐 평양서윤이 되었다. 1624년(인조 2) 첨정(僉正)으로 있을 때 명나라 장수 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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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운봉(雲峰), 호는 보덕(輔德).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출생하였고, 증조할아버지는 부사(副使) 임세춘(林世春)이고, 할아버지는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임재(林榟)이며, 아버지는 사복시윤(司僕寺尹) 임태순(林台順)이다. 아들은 임인산(林仁山)·임명산(林命山)·임갑산(林甲山)이다. 임정(林整)[1356~1413]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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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1번대가 부산진을 침범하였다. 조선 관군은 준비가 잘 된 왜군을 당해내기 어려웠고 왜군은 부산진을 침입한 지 보름 만에 서울까지 점령하였다. 급박한 상황에서 선조는 4월 30일 밤에 서울을 떠났고, 왜군의 1번대와 2번대가 각각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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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무신. 무과에 급제, 1482년(성종 13) 전주판관에 임용된 후 훈련원 판관·첨지중추부사·전라우수사 등을 거쳐 1492년 회령부사, 1500년(연산군 6) 해랑도초무사(海浪島招撫使), 1504년 좌상대장(左廂大將),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이듬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7년(중종 2) 다시 한성부판윤·판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한성부판윤 재직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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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몽란(夢蘭)·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으로 정운관(鄭云瓘)의 아들이다. 1357년(공민왕 6) 감시(監試)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하여 1362년 예문관의 검열·수찬이 되었다. 이때 김득배(金得培)가 홍건적을 격파하여 서울을 수복하고서도 김용(金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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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명숙(明叔), 호는 야수(野叟)이다.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의 증손 정속(鄭束)의 아들이다. 1447년(세종 29) 생원으로 별시 문과에 정과로 합격,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고, 감찰을 거쳐 1453년(단종 1) 예조좌랑으로 있었으나 궐내에 기생을 불러들여 가무음주한 죄로 장형(杖刑)을 받았다. 1455년(세조 1) 교리로서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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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가중(嘉仲), 호는 월봉(月峰). 할아버지는 소격서령(昭格署令) 정자급(丁子伋)이고, 아버지는 병조참판 정수강(丁壽岡)이다. 어머니는 지평(持平) 김언신(金彦辛)의 딸이고, 부인은 김수연(金壽延)의 딸이다. 아들은 정응두(丁應斗)이다. 정옥형(丁玉亨)[1486~1549]은 1513년(중종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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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압해(押海)[현재의 전라남도 나주]. 자는 추경(樞卿). 아버지는 병조판서 정옥형(丁玉亨)이고, 어머니는 김언신(金彦辛)의 딸이다. 1521년(중종 16) 진사시에 합격하고, 1534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전적·시강원설서를 거쳐 홍문관에 들어가 정자·저작·부수찬·교리·응교를 차례로 역임하고 이조좌랑·정랑·사헌부지평·장령·시강원보덕·사간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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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사우(士優), 호는 동원(東園). 증조부는 정옥형(丁玉亨)이며, 조부는 정응두(丁應斗), 외조부(外祖父)는 한경상(韓景祥)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정윤복(丁胤福)이다. 1601년(선조 34)에 진사(進士)가 되고, 같은 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지평(持平)·정언(正言)·수찬(修撰)·응교(應敎) 등을 역임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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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환관. 양지현(陽智縣)에서 태어난 진입(眞立)은 일찍이 명나라에 건너가 선종(宣宗) 황제 때 환관(宦官)이 되었다. 주로 활동한 시기는 15세기 전반으로, 명나라 황제의 신임과 총애를 두텁게 받아 조선에서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성품이 순박하고 정직하여 황제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다고 전하는데, 조선과의 관계도 원만하였다. 아버지는 진익생(眞益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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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강(崔士康)[1388~1443]은 태종의 왕자와 세종의 두 왕자 등 왕실과 연혼하면서 갑자기 현귀하게 되었으나 분수를 지킨 까닭에 세종의 은총이 떠나지 않았다. 이를 배경으로 의정부와 육조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세종 성세(聖世)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부는 선부전서 최득평(崔得枰)이고, 할아버지는 전리판서 문정공(文貞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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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위(崔士威)[1361~1450]는 고려 말기의 혼란기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는 아버지 최유경(崔有慶)을 따랐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이성계의 개국을 도와 개국원종공신이 되면서, 최사위도 자연스레 조선에서 벼슬을 하게 되었다. 최사위는 조선 전기 태종과 세종 대에 활약하였는데, 주로 군사와 관련한 일을 잘해서 국방을 방비하는 데 힘썼다. 만년에는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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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지(慶之), 호는 죽정(竹亭). 조부는 선부전서(選部典書) 상호군(上護軍) 최득평(崔得枰)이고, 아버지는 감찰대부(監察大夫) 최재(崔宰)이며, 어머니는 무안군부인(務安郡夫人) 박씨(朴氏)의 딸이다.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1372년(공민왕 21) 판도사좌랑(版圖司佐郎)이 되어 각 도에서 의염(義鹽)의 염분(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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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엽을 시조로 하고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고려 인종 때 송나라에서 건너온 성씨로 고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한 추엽이 시조가 되었다. 본관은 개성·강화·파평 등이 문헌에 있으나 오늘날에는 추계추씨와 전주추씨 두 본으로 되어 있다. 추엽의 아들인 추황(秋簧)이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대제학을 지냈고 『명심보감』의 편자로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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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의 상징이요, 성리학의 조종으로 추앙되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출생지는 경상북도 영천군 동우항리이다. 포은 선생의 어머니는 영천이씨인데, 임신 중에 난초 화분을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려 깜짝 놀란 꿈을 꾸고 나서 낳은 아이라고 하여 처음에는 이름을 몽란(夢蘭)이라 하였다. 포은 선생이 아홉 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영천이씨가 낮잠을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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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을 관적으로 하는 성씨. 우리나라 성씨의 가장 기본적인 자료라 할 수 있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15세기에 존재한 전국의 성씨 종류와 본관의 수를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용구현 토성으로 진(秦)·이(李)·송(宋)·용(龍)·엄(嚴) 등 5개와 처인현 토성 이(李)·서(徐)·지(池)·섭(葉)·김(金)·강(康) 등 6개를 나열하고 있다. 또 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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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영일(迎日)이며 자는 달가(達可)이고 호는 포은(圃隱)이다.정몽주 초상 초명은 몽란(夢蘭), 몽룡(夢龍)이다. 시호는 문충(文忠)으로 영천(永川)에서 출생하였다. 1357년(공민왕 6) 감시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예문검열(藝文檢閱)·수찬·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냈다. 1363년 동북면도지휘사 한방신(韓邦信)의 종사관으로 여진족(女眞族) 토벌에 참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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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許筠)[1569~1618]은 5세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9세 때 시를 지을 줄 알았으며, 12세 때 아버지를 잃고 더욱 시 공부에 전념하였다. 학문은 유성룡(柳成龍)에게 나아가 배웠으며, 시는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하나인 이달(李達)에게서 배웠다. 이달은 둘째 형의 친구로서 당시 강원도 원주의 손곡리(蓀谷里)에 살고 있었는데, 허균에게 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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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미숙(美叔), 호는 하곡(荷谷). 아버지는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서 학자·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허엽(許曄)이며, 어머니는 둘째 부인인 강릉김씨(江陵金氏)로서 예조판서(禮曹判書)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이복형인 허성(許筬)이 있으며, 동생으로 허균(許筠)과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있다. 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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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태휘(太輝), 호는 초당(草堂). 아버지는 군자감부봉사(軍資監副奉事) 허한(許瀚)이며, 부인은 강릉김씨(江陵金氏)로서 예조판서(禮曹判書)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아들은 허성(許筬)·허봉(許篈)·허균(許筠)이고, 딸은 허난설헌(許蘭雪軒)이다. 허엽(許曄)[1517~1580]은 1546년(명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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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있는 조선 후기 관우의 사당. 관우를 신으로 숭앙하게 된 것은 임진왜란 때부터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사전전고편에는 “무술년(1598) 1월에 명나라 장수 진인이 숭례문 밖 산기슭에 관공묘를 모셨더니 이를 본 모든 관원이 은을 내어 그 사당을 낙성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부터 관우 숭앙 사상이 무속인,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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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연산군 6) 승려 경민이 개판(改版)한 현수의 불교 경전 법수집. 법수(法數)는 명수(名數)의 차례대로 배열하여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엮어 놓은 일종의 사전을 말한다. 『현수제승법수(賢首諸乘法數)』는 원래 중국 당나라의 현수(賢首)가 엮은 것으로, 구집(舊集)이 전해 오지 않다가 명나라의 행심(行深)이 다시 엮어 1427년 간행한 명판본(明板本)을, 1500년(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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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애 이자 선생의 무덤은 2000년 6월 12일 경기도 기념물 제172호로 지정되었다. 음애 이자 선생(1480~1533, 성종 11~중종 28)의 본관은 한산, 문신, 호는 음애이며 1501년 사마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감찰을 지내고 천추사의 서정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곧 이조좌랑에 올랐으나 연산군의 난정으로 사직했다. 그 후 15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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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여온(汝溫), 호는 겸제(謙濟). 증조부는 황징(黃澄)이며, 조부는 황준원(黃浚源)이고, 외조부는 조계상(曹繼商)이다. 아버지는 황순경(黃舜卿)이고,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준(尹濬)의 딸이다. 황림(黃琳)[1517~1597]은 1552년(명종 7) 식년시(式年試)에서 을과 4인으로 급제하여 1562년(명종 17) 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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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수효(秀孝)·계효(季孝)[세종실록에는 계효로 되어 있다.], 호는 나부(懦夫)·신부(侁夫). 아버지는 세종조의 명상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황희(黃喜)이며, 형은 판서(判書) 황치신(黃致身)이다. 황수신(黃守身)[1407~1467]은 1423년(세종 5) 사마시(司馬試)에 응시하였다가, 학문이 부진하다고 시관(試官)에게 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