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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974
한자 丁玉亨
영어음역 Jeong Okhyeong
이칭/별칭 가중,월봉,공안,금천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486년연표보기
몰년 1549년연표보기
본관 나주
대표관직 좌참찬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가중(嘉仲), 호는 월봉(月峰). 할아버지는 소격서령(昭格署令) 정자급(丁子伋)이고, 아버지는 병조참판 정수강(丁壽岡)이다. 어머니는 지평(持平) 김언신(金彦辛)의 딸이고, 부인은 김수연(金壽延)의 딸이다. 아들은 정응두(丁應斗)이다.

[활동사항]

정옥형(丁玉亨)[1486~1549]은 1513년(중종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된 뒤 예문관검열·부제학·대사성·호조참판 등을 지냈다. 1518년(중종 13)에 사간원헌납·사헌부지평·홍문관교리 등을 거쳐 병조와 이조의 정랑을 역임하였다.

1525년(중종 20)에는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나서 백성들이 특히 더 곤궁해졌다. 그러자 정옥형은 천재지변에 대처하는 내용을 상소하였으며, 덕의 수양·국가의 기강확립·비용절약 등에 대한 상소를 올려서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데 힘썼다.

1530년(중종 25)에는 중종의 특명으로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임명되었다. 병조참판으로 재임하던 1536년(중종 31)에는 진하사(進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그 후 대사간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권신이었던 김안로(金安老)의 미움을 사서 충청도관찰사 등의 외직으로 밀려났다. 1539년(중종 34)에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예조판서·경연동지사(經筵同知事) 등을 거쳐 좌참찬(左參贊)이 되었다.

1545년에 명종이 즉위하자 윤원형을 영수로 하는 소윤에 가담하여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임 등을 제거하였다. 이 공으로 1547년(명종 2)에 추성정난위사공신숭록대부금천군(推誠定難衛社功臣崇祿大夫錦川君)에 봉해졌으나 뒤에 모두 삭탈되었다.

[저술 및 작품]

1543년(중종 38)에 중종의 명에 따라 영의정 윤은보(尹殷輔) 등과 함께 『대전속록(大典續錄)』 이후 52년 간의 법령 조항의 모순을 정리하여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을 편찬하였다.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은 활자본으로 총 6권 1책으로 되어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공안(恭安)이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01.12 본문 수정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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