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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682
한자 金瓚
영어음역 Kim Chan
이칭/별칭 숙진(叔珍),눌암(訥庵),효헌(孝獻)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광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기도 용인시
성별
생년 1543년(중종 38)연표보기
몰년 1599년(선조 32)연표보기
본관 안동
대표관직 우참찬

[정의]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 자는 숙진(叔珍), 호는 눌암(訥庵). 조부는 김려(金濾), 아버지는 형조참의 김언침(金彦沈)이다.

[활동사항]

1567년(명종 22)에 진사가 되고, 1568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1570년에 검열(檢閱)이 되고, 이후 대교·봉교·전적·형조정랑·검상·사인·이조정랑 등의 관직과 지평·집의·정언·헌납·사간·수찬·교리·응교 등 삼사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573년 평안삼도사로 나가 군적(軍籍)을 정리하였으며, 이듬해에는 평안도순무어사로 활약하였다. 1584년 이후로는 전한·직제학·승지·좌참찬·동지중추부사·대사헌·대사간·대사성·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의 파천을 반대하였으며, 선조의 일행이 송도에 이르자 동료들과 함께 동인(東人) 이산해(李山海)의 실책을 탄핵하여 영의정에서 파직시키고, 백성들의 원성을 사던 김공량(金公諒)을 비판하였다. 다음해 체찰부사(體察副使)·양호조도사(兩湖調度使) 등을 지냈다.

1594년 접반사(接伴使)가 되어 명나라 지원군을 인도하였으며 일본과 강화 회담을 벌일 때 이덕형(李德馨)과 함께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부터 예조판서·지의금부사·대사헌·이조판서를 연이어 지냈고, 지돈녕부사를 거쳐 우참찬까지 승진하였다. 대사헌 때 가족을 멀리 피난시켰다고 탄핵을 받고 체직되는 등 소소한 정치적 부침을 겪기도 하였지만, 문장가로도 이름이 높았으며, 경제 문제에 밝고 외교적 수완이 능숙한 명신이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효헌(孝獻)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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