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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의 주가를 올린 ‘쇠전(우시장)’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C03000105
영어음역 Baegamjangui Jugareul Ollin 'Soejeon (Usijang)'
영어의미역 Best Market Day, Baegamjang Market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순석

백암장의 주가를 올린 것은 쇠전(우시장)이었다. 용인뿐만 아니라 인근의 5일장 중에 가장 거래가 왕성하였던 장이 백암장이다. 1918년 말의 조사에 의하면 당시 전국의 우시장은 모두 655개소였다.

당시 단위시장으로 큰 시장으로 유명했던 곳은 함북 명천군의 명천장과 길주군 길주장으로서 거래량이 2만5천두 이상이었다. 그 다음으로 수원군 수원장, 양주군 삼패장 등이 2만두 이상 거래되었다. 용인군 외사면에 편성되어 있던 백암장도 당시 2만두 이상 거래가 되는 몇 안 되는 쇠전 중의 하나였다. 소 거래가 활발하던 당시 경상도 영주와 상주 등지에서도 소를 사기 위해 소상인들이 올라왔다. 당시 쇠전이 열렸던 곳은 현재 장날 간이시장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다른 시장들이 아침을 먹고 나서 개장한 데 비해, 쇠전은 빠르면 새벽 4시부터 열리기도 했다. 특히 멀리서 소를 사러 온 상인들의 경우는 일찍 소를 사서 도살을 하고 난 다음, 다른 장으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 거래를 하고 일찍 문을 닫았다. 소를 산 장사꾼들은 도살장에서 도살을 한 뒤 정육점에 팔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백암장에서 소를 구입한 뒤 다른 장으로 끌고 가는 상인들은 주로 이천장(2.7장)과 안동장(2.7일)에서 되파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한 편으로 안동에서 구입한 송아지를 백암장에 끌고 와서 팔고, 큰 소를 이천장에서 파는 경우도 있었다.

소를 거래할 때는 거간이 붙기도 하지만 거간꾼에게 주는 수수료(1%)가 아까워 직접 구매자를 골라 소를 팔았다. 구매자를 골랐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구매자가 소를 고르는 것이 가까웠다. 900평이 넘는 ‘쇠전터’ 여기저기에 소를 묶어 놓으면 구매자들이 와서 흥정을 건다. 거간이 간섭하지 않는 경우 시세보다 턱없이 싼 가격에 소를 넘기기도 했다.

소 거래량이 이처럼 많았기 때문에 1960년대만 하더라도 쇠전이 열리면 이동상인 뿐 아니라 소몰이꾼, 중개상인, 도축상인 모두 활동했다. 게다가 시세차익을 남기려고 소를 매매하는 소장수들을 위해 ‘마방’도 있었다. 마방집 옆에는 마방꾼이 있어 소를 맡아 보관하면서 잘 먹여 살을 찌우는 일을 담당하였다. 당시 마방집은 쇠전 옆에 있었는데 쇠전과 함께 없어지고 야채시장으로 바뀌었다.

백암장에서 소 거래가 멈춘 지는 20년 가량 되었다. 1963년 6월 축협의 가축 직거래가 이뤄지고, 유통망의 발달에 따라 1980년대에 들어와 사라지고만 것이다.

경운기와 콤바인 등 농업기계가 보급되면서 소의 역할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하나 둘씩 소를 팔아치우기 시작하자 80년대 접어들어서는 소를 구매하려는 사람들 모두를 충당하기 턱없이 부족해진 것이다. 그 때부터 소상인의 발길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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