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공주문화대전 > 공주의 마을 이야기 > 중장리 > 갑사와 절 아랫동네 > 갑사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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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는 역사 깊은 사찰과 절터가 수없이 많이 남아있다. 이는 백제의 고도에서 조선시대 충청도관찰사가 머무는 충청감영이 있던 ‘공주’의 지역적 위상 덕분이며 그것은 즉 많은 사람들이 공주에 살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계룡산에 사찰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통일신라시대부터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갑사가 백제 때에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입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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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의 수많은 전통 사찰 중에 으뜸으로 손꼽히는 갑사는 그 역사만큼이나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신라시대의 당간지주, 고려시대의 부도, 조선시대에 지어진 절집들, 돌부처, 종, 월인석보의 판목 등 그 종류도 많고, 하나같이 지정 문화재가 될 만큼 역사성과 예술성에 손색이 없다. 갑사에 남아있는 지정문화재는 다음과 같다. 국보 제298호 갑사삼신불괘불탱(甲寺三身佛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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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시작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처음으로 승려를 규합해 전장으로 나선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영규대사’이다. 영규대사는 공주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속성은 밀양박씨, 이름은 영규(靈圭), 호는 기허당(騎虛堂), 공주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계룡산 갑사에 들어가 출가한 뒤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법을 깨우쳐 그의 제자가 되었다. 공주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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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신문을 뒤져보면 갑사와 관련한 기사들이 주목된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는 80세 이상의 노인들이 어린 시절인 해방 이전의 마을 모습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사적인 일에 제한되어 있어 당시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한 신문기사를 통해 80여년전 갑사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해 보자. 동아일보 1924년 9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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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일년 행사중 가장 중요한 날이 바로 초파일 석가탄신일이다. 갑사에는 수많은 신도가 찾아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 몇주전부터 계룡산 입구에는 연등이 걸리고, 초파일이 되면 아침 일찍 갑사 경내에 연등을 내건다. 방문객들에게는 갑사 앞에서 한끼 꺼리쯤 되는 절편을 나눠주고, 신도들은 절 마당에 들어서자 마자 앞마당의 어린 석가모니 상에 물을 부어 목욕을 시키는 관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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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지난 1700여년간 불교는 한국인의 정신적 귀의처였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동양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각각의 나라에서는 그 민족의 특성에 맞게 서로 다르게 성장해 왔다. 한국의 불교는 동양의 어느나라 보다도 불교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전통있는 사찰마다 절의 상징과 같은 귀중한 문화재가 현존하고 있다. 한국인의 마음 속 깊이 자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