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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3362
한자 慶迎樓
영어의미역 Gyeongyeongnu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154-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일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누각|영정
양식 전통양식
건립시기/일시 1442년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154-1 지도보기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중앙공원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각.

[개설]

1442년(세종 24) 경주에 있던 「태조 영정」이 충주의 동루에 잠시 봉안되었는데, 누각이 좁고 기울어져 충주목사 김중성(金仲誠)이 “오늘날 어용(御容)이 잠깐 멈추신 것은 참으로 이 고을이 만나기 어려운 영광이니 신자(臣子)로서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 정성껏 받들어야 할 것이다”라며 경영루를 지었다.

김중성과 보좌관 황영(黃永)이 충청도감사 이익(李益)에게 보고하고 공장들을 불러 모아 재목을 베고 기와를 굽는 작업은 승려 신정(信靖)이, 공사 감독은 민수(閔修)가 하여 한 달 만에 완성하였다. 이렇게 옛 동루를 복원하여 경영루(慶迎樓)라 이름 붙였는데, 태조의 진영을 받들어 맞이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현황]

「태조 영정」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경영루이승소(李承召), 성현(成俔), 양희지, 홍귀달(洪貴達), 서거정(徐巨正) 등의 시를 달아놓아 세종 당시의 충주 사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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