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297 |
---|---|
한자 | 任直淳 |
영어의미역 | Im Jiksun |
이칭/별칭 | 운창(雲昌)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문식 |
성격 | 서양화가 |
---|---|
출신지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 |
성별 | 남 |
생년 | 1921년 |
몰년 | 1996년 |
대표경력 | 조선대학교 교수 |
[정의]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서양화가.
[활동사항]
임직순은 1936년 도일하여 1940년 일본미술학교 유화과에 입학하여 임무(林武)[전 일본대학교 교수] 고야진실(高野眞實)에게 지도받았다. 1940년 일본미술학교 재학 중에 제19회 선전(鮮展)에 「정물(靜物)」을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1941년 제20회 선전에 다시 입선하였다. 1943년 귀국했고 8·15 해방 후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인천여자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1956년에는 숙명여자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미술 교육자 겸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1957년 제6회 국전 때 문교부장관상을 거쳐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961년 광주 조선대학교 교수로 내려가 광주의 무등산 풍경, 시골 풍경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제작했고 후학을 양성했다. 1967년 한국문예상 미술본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968년에는 신세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지면서 당시 (주)미쯔비시 서울지사장이었던 중천인일(中川忍一)과 인연을 맺게 되어 이후 꾸준하게 교류를 하였다. 1972년 12월에 동경 교바시[京橋市]에 있는 시모무라 화랑[下村畵廊]에 「설경」 등 24점의 작품을 전시한 개인전을 계기로 일본에서 개인전 및 교우전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73년 5월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며 활동했으며 Monnet & Peterie 화랑에서의 개인전을 열었다.
1974년에는 14년간의 광주 시대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와 작업을 계속했다. 1976년에는 급성간염으로 4주간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병실에서도 의욕적으로 작업에 몰두하였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작품은 시각적인 진실에서 심각적(心覺的)인 진실로 탈바꿈하게 하였다. 1996년에 지병인 심장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저술 및 작품]
임직순의 인물화에서는 주로 빨강의 색과 검은색과의 명암을 잘 드러내며 굵고 분명한 소녀의 모습을 잘 짜여진 구도 속에서 표현하고 있다. 특히 굵지만 거칠지 않게 토속적인 한국 소녀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으로 보는 이들에게 시각적 편안함을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인물」(116.7×90㎝, 1957), 「화실」(144×96㎝, 1962), 「책을 든 여인」(53×45.5㎝, 1979), 「정물」(61×73㎝, 1977), 「5월의 꽃」(41×32㎝, 1980), 「꽃과 여인」(109×82㎝, 1985), 「복숭아꽃 필 때」(90.9×60.6㎝, 1984), 「해경」(53×45.5㎝, 1987), 「설악동이 보이는 풍경」(90.9×65.1㎝, 1990), 「산의 전경」 (53×45.5㎝, 1991), 「소년와 꽃」(32×41㎝, 1993), 「소나무 한쌍」(65.1×53㎝, 1995)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57년 국전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며, 1967년 대한민국문예상 본상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며, 1993년 서울시문화상 미술부분 본상과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