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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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可興里院洞寺址 |
영어의미역 | Won-dong Temple Site |
이칭/별칭 | 원동사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 409[원동길 133-20]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유봉희 |
성격 | 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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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고려시대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 409[원동길 133-20]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개설]
가흥리 원동 사지에서 확인되는 기와 등 유물로 보아 사찰은 고려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나 그 외 연혁이나 폐사 시기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위치]
충주 시내 중심지에서 충주 탄금대 방면으로 나아가 국도 38호선을 타고 중앙탑면, 앙성 방면으로 가다 보면 가흥초등학교 앞을 지나게 되는데, 가흥초등학교 앞길에서 마을 가운데를 남서쪽으로 가로질러 원골고개를 지나면 원골마을에 이르게 된다. 가흥리 원동 사지는 원골 한가운데에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정식 조사된 적은 없으나 1974년 가흥리 원동 사지 일원에서 서북 방향으로 약 100m 지점에서 철불과 ‘숭경2년(崇慶二年)’이라는 명문의 철인(鐵印)이 출토되어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숭경2년(崇慶二年)’은 1213년(경종 2)에 해당되며 당시 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1980년에 충주감리교회에서 기도원을 세우기 위해 공사하던 중 많은 와편들이 드러났는데, 특히 고려시대 기와편과 함께 삼국시대 것으로 보이는 육엽연화문(六葉蓮花紋) 수막새 기와가 출토되어 삼국시대에 창건된 절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육엽연화문 수막새의 특징은 자방 부위(子房部位)와 연근 부위(蓮根部位)가 눌린 듯이 내곡(內曲)되었으며, 연판이 전체적으로 앞을 향한 듯이 살짝 들려지게 조형(造形)되어 있어 곧 개화(開花)할 듯한 생동감을 주고 있다.
그 외 팔엽연화문 수막새, 범자문(梵字文) 수막새, 화훼문(花卉紋) 암막새 등이 수습되었고 ‘봉황(鳳凰)’이라고 양각된 명문와가 출토된 적이 있다. 또한 소형 금동불과 청석제(靑石製) 불상도 출토되었다고 하나 이는 전하지 않고 있으며, 이곳에 탑이 있었다고 하나 일본인들에 의해 반출되었다고 한다.
[현황]
가흥리 원동 사지가 있는 곳은 예부터 원동, 또는 탑동이라 불렸으며, 사찰 건물에 쓰였던 석재가 원골 곳곳에 흩어져 있다. 가흥리 원동 사지 주변 민가에서는 사찰 건물에 쓰였던 장대석 등이 다량 확인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가흥리 원동 사지에서 수습된 육엽연화문 수막새는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기와 형태와 유사하며, 가흥리 원동 사지의 위치가 고대 문화 유적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과 충주 고구려비, 그리고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 충주 장미산성과 인접해 있어 주목이 되는 절터이며, 당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절의 터로 보이므로 역사적 성격이 밝혀져야 할 불교 유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