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355 |
---|---|
한자 | 許文淑 |
영어음역 | Heo Munsu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배항섭 |
[정의]
조선 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농민군 지도자.
[활동사항]
허문숙은 1894년 9월 10일 전라도 삼례에서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농민군의 제2차 봉기가 시작되자, 최시형에 의한 교단 측의 기포령이 떨어지기 전부터 서장옥·황하일 등과 함께 충주 용수포(龍水浦)에서 수만 명의 농민군을 불러 모아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허문숙 등은 진천에서 역시 수만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있던 손병희 포의 접주이자 자칭 ‘오읍집강(五邑執綱)’이던 신재련(辛在蓮)과 대립하였다.
이는 아마도 교단 측의 지시에 충실하던 신재련이 교단의 금단 지시를 어기고 기포한 허문숙·서장옥이 이끄는 농민군을 제어하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신재련은 자신을 오읍별집강(五邑別執綱), 자신이 거느린 농민군을 도유(道儒)라 칭한 반면, 허문숙의 무리를 패류(悖類)·보당(堡黨)·민보(民堡) 등으로 칭하였다. 관군 측에서도 신재련을 동학당으로, 허문숙과 서장옥을 유학당(幼學黨)으로 파악하였다.
교단측 기록인 『천도교회사초고(天道敎會史草稿)』에 의하면 허문숙은 맹영제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민보군 우두머리인 것으로 되어 있다. “10월에 경기도 지평군 맹영재 ... 홍천군 부근에서 도인(道人)을 참살하는 고로 ... 진천군 용수동 허문숙과 조백희(趙百熙) 등이 역시 토병(土兵) 5백 명을 모집하여 동학당을 박멸한다고 성명(聲明)하여 원근에 비격(飛檄)하니 경기·충청·강원의 3도에 도인의 참살이 여지가 무(無)한 고로.” 라고 하여 동학교도가 아니라 민보군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허문숙은 보은 집회에도 교단 측의 핵심적 지도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가하였고, 1894년 9월에도 서장옥·황하일 등과 함께 기포하였으나, 10월에 들어 동학 교단을 배반하고 민보군에 합세하였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