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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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藎國神道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Gim Singu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금곡리 아래쇠실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병구 |
성격 |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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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비좌개석 |
건립시기/일시 | 1994년 11월 |
관련인물 | 김신국 |
재질 | 오석/화강암 |
높이 | 295㎝ |
너비 | 60.5㎝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금곡리 아래쇠실마을 |
소유자 | 김무영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금곡리 아래쇠실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후추공(後瘳公) 김신국의 신도비.
[개설]
조선 선조대와 인조대에 활동한 영중추부사 김신국의 신도비이다. 이 비는 1994년 11월에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국한문 혼용으로 음기되어 있다.
[건립경위]
김신국의 유언에 의해 신도비를 세우지 못하다가 1994년 방손 김상수(金象壽)가 찬(撰)하고 방손 김주흥(金周興)이 서(書)하였으며, 10대손 김진동(金鎭洞)이 전각(篆刻)하여 건립되었다.
[위치]
국도 3호선을 따라가다 대소원면 대소원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2㎞ 정도 가면 철도 위의 고가를 넘어 아래쇠실마을이 나오고, 마을을 지나쳐 상금곡 마을비 50m 전방의 산자락에 김신국 신도비가 위용 있게 서 있다.
[형태]
비좌대석의 형태로 규모가 크며 비신은 오석, 머릿돌과 대좌는 화강암으로 제작하였다. 머릿돌은 이수로 앞뒤로 네 마리의 용이 희롱하는 장면을 양각하였는데, 정교하지 못하다. 크기는 90×52.5×66㎝이다. 비신은 60.5×30×173㎝이고, 대좌는 2단으로 상단 81×51.5×7㎝, 하단 101×71×48㎝이며 무궁화가 양각되어 있다.
[금석문]
비의 앞면의 상단에는 전서체 5×9㎝의 크기로 ‘영중추부사후추공(領中樞府事後瘳公)’이라 쓰여 있고, 17×19㎝ 크기의 해서체로 ‘신도비(神道碑)’라 썼다. 오른쪽 면부터 음기를 하였는데, 비명은 4×4㎝의 크기의 해서체로 ‘청백리후추공휘신국비명(淸白吏後瘳公諱藎國碑銘)’이라 쓰고 본문은 1.5×2㎝ 크기로 음기하였다.
내용은 고조부부터 부모까지의 내력을 적고 평안도관찰사, 호조판서로 재직하며 활동한 것과 정묘호란 때 소현세자를 따라 심양에 갔던 일, 영중추부사로 승차한 이후 82세로 사망할 때까지의 일을 열거하였다. 이후 김신국의 정치관, 호연한 도량과 지혜로움에 대한 일화를 정리하여 기록하였다.
[현황]
신도비를 건립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으나 주변에 잡초가 우거져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후손 김무영의 증언에 의하면 신도비명은 원문이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