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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869
한자 權曗
영어음역 Gwon Yeop
이칭/별칭 제중(霽仲),구사(龜沙)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일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74년(선조 7)연표보기
몰년 1650년(효종 1)연표보기
본관 안동
대표관직 강릉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권근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광흥창수(廣興倉守)를 지낸 권곤(權鵾)이고, 할아버지는 권심(權深)으로 안동대도호부판관(安東大都護府判官)을 지냈다. 아버지는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을 지낸 권오(權悟)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활동사항]

1601년(선조 34) 생원이 되었고, 1606년(선조 40) 음보로 광릉참봉(光陵參奉)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내섬시봉사(內贍寺奉事)를 거쳐 한성부참군이 되었다. 1612년(광해군 4) 추관(秋官)이 되어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 때 역도를 두둔했다는 죄로 파직되었다.

1615년 알성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호군겸오위장이 되고, 다음 해 분병조참의(分兵曹參議)가 되었다. 1617년 평해군수가 되었으나 박정길(朴鼎吉)의 사주를 받은 사형수의 무고로 면직되어 충주에 은거했다. 인조반정 후 기용되어 1624년(인조 2) 동지 겸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무고로 파직되어 충주에 있다가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충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나갔으나 강화가 이루어져 해산했다. 이 해 파주목사를 거쳐, 1635년 첨지중추부사가 되었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들어갔다가 환도 후 강릉부사가 되었다. 1639년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이어, 고성군수를 역임했다.

[저술 및 작품]

『구사집(龜沙集)』과 『구사금강록(龜沙金剛錄)』이 전한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검단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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