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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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劉權說 |
영어음역 | Yu Gwonyeo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최규성 |
[정의]
고려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활동사항]
유권열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제3왕후 신명순성왕태후의 친가인 충주유씨 집안 출신으로 태조 즉위 초 광평시랑(廣評侍郞)이 되었다. 당시 궁예(弓裔)의 시중직을 역임했던 구진(具鎭)이 나주도대행대시중(羅州道大行臺侍中)에 임명하여 나주로 떠나게 되었다. 구진이 사양하려 하자 유권열은 “상으로써 선을 권장하고 벌로써 악을 징계하는 것이오니 마땅히 엄한 형벌을 가하여 여러 신하를 경계하소서.”라고 태조에게 건의하였고, 구진이 두려워하여 임지로 부임하였다.
922년(태조 5)까지 명주장군(溟州將軍) 왕순식(王順式)이 고려에 대항하고 있었는데 당시 유권열이 “아버지가 자식을 타이르고 형이 동생을 훈계함은 천리(天理)입니다. 순식의 아비 허월(許越)은 지금 중이 되어 내원(內院)에 있사오니 그를 보내어 타이르도록 하소서” 라고 태조에게 진언하였다. 태조 왕건이 그 건의를 수용하여 시행하도록 하니 과연 왕순식이 귀순하였다. 왕순식은 이후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를 정벌하고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당대의 명승 법경대사(法鏡大師) 현휘(玄暉)는 유권열을 은(殷)의 명재상인 부열(傅說)에 비견할 수 있는 현신(賢臣)이라 칭송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