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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리 분청사기요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637
한자 蓮河里粉靑沙器窯址
영어의미역 Buncheong Chinaware Kiln Site in Yeonha-ri
이칭/별칭 연하리 분청사기가마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 가마골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길경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도요지|분청사기가마터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 가마골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 가마골에 있는 조선 전기의 분청사기 가마터 유적.

[개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충주에 자기소가 보련동에 1곳 있고, 도기소가 월호현에 1곳 있는데 모두 하품(下品)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보련동은 현재의 지명에는 없으나 노은면보련산과 관련지을 수 있다.

[위치]

노은에서 앙성으로 가는 지방도 599호선을 따라 2㎞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연하리 하단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보련산을 오르는 가마골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금을 채굴하던 태창광업소의 폐건물이 보인다. 연하리 분청사기요지는 태창광업소의 뒤편 산기슭에 위치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연하리 분청사기요지는 보련산 일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형태]

발굴 조사가 되지 않아 유구의 형태를 짐작하기는 어려우나, 조선시대 분청사기 가마터이므로 청자를 굽던 가마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즉, 오름가마 형태로 연소실과 소성실로 구분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천정이 무너져 내린 가마터에서 고려시대 상감청자를 굽던 가마와 같은 구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토유물]

유물은 주로 분청사기 대접편이나 팔각접시 등이 출토되었다. 내화토받침을 사용하여 그릇을 포개어 여러 점을 한꺼번에 구운 모습이 관찰된다. 대접 1점은 상감기법의 연당초문이 새겨져 있으며, 기형은 입술부가 파손되어 정확히 알 수 없다. 내면 기벽의 상단에는 연꽃이 좌우로 표현되고, 좌우에 당초문이 점으로 새겨져 있다. 1줄의 호선으로 구분하여 단독으로 성긴 도장문의 복판 연잎을 시문한 모습이 정교하다. 바닥에는 내저원각이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아무런 문양이 없으나 내화토받침흔이 남아 있다. 외면 상단에는 몇 줄의 백토선만이 상감되어 있으며, 굽은 죽절굽이다. 굽 지름은 5.7㎝, 현 높이는 6.1㎝이다.

[현황]

가마터는 광업소를 운영하며 일부 훼손되었으나, 그 잔여 흔적이 남아 있다. 주변에서 대접·매병·장 등의 분청사기편과 도지미, 불탄 흙, 노벽편 등이 흩어진 채 확인된다. 이 가마터 외에도 연하리 일대에서는 많은 청자·분청사기·백자가마터가 있어 주목된다.

[의의와 평가]

연하리 분청사기요지는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유적으로 중부 지방 분청사기 가마터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1424~1432년에 운영된 가마로 고려시대 상감청자의 연속선상에 있던 곳으로 평가된다. 조속한 발굴 조사를 통해 그 성격이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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