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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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丹月部曲 |
영어의미역 | Communities of Low Caste Laborers, Danwol |
이칭/별칭 | 단월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이창훈 |
[정의]
고려와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었던 특별행정구역.
[개설]
부곡·향(鄕)·소(所)·처(處)·장(莊) 등의 지방 특별행정구역은 기원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단월부곡 역시 고려시대에 이미 단월역으로 개편되고 있으므로, 기원은 그 이전시기로 소급된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삼국시대에 부곡의 선행형태를 찾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부곡은 대체로 신라 말 고려 초에 후삼국 통합전쟁 중에 저항한 호족세력 지역의 주민들을 강제적으로 편성하면서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후삼국 통합 후 고려는 이 지역들을 법제적으로 부곡제라는 행정구역으로 편성, 군현제의 하부기구로 예속시키고 군현제를 통해 간접 지배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충주목에 편제되었던 단월부곡 또한 이러한 부곡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다.
12세기 이후 고려 사회의 변동과정에서 민(民)의 의식이 성장하여 신분해방을 천명하는 노비들의 저항이 일어나게 되었다. 부곡민이 이에 합세하는 일들이 벌어지자, 무신정권은 부곡민을 일반 군현으로 승격하였다. 또한 외침에 저항한 군공 포상 등의 형태로 신분 상승이 이루어지기도 함으로써 사실상 고려의 신분질서와 체제는 해체의 길을 걸었고, 부곡제도 그러한 과정에서 점차 소멸되어갔다.
[관련기록]
단월부곡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충주목(忠州牧) 고적(古跡)조에 “단월부곡(丹月部曲) 바로 단월역(丹月驛)의 옛터이다.”라고 기재되어 있고, 역원(驛院)조에는 “단월역(丹月驛)은 옛날 단월부곡의 땅으로, 주(州) 남쪽 10리에 있다. 역 남쪽에 계월루(溪月樓)가 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따라서 단월부곡은 어느 시기엔가 교통로의 수송 거점 역할을 했던 역으로 개편된 것을 알 수 있다.
단월역에 관한 기록은 역사서뿐만 아니라 문학작품 등 여러 곳에서 보인다. 주요한 역사 기록을 보자면, 먼저 1451년 완성된 『고려사(高麗史)』의 병지(兵志)의 참역(站驛)조에 경주도(慶州道) 관할 15개소의 역 중 하나로 단월이 보인다. 1432년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괴산군(槐山郡)조에 2개소의 역 중 하나로 단월이 등장하는데, 충주의 경계에 넘어가 있다고 표현되었다.
그 때문에 1433년(세종 15) 7월 10일(辛酉)에, 병조에서 “충청도 단월역은 비록 괴산(槐山) 땅에 있으나 본 고을에서의 거리가 60여 리요, 충주(忠州)와는 10여 리이니, 단월역을 충주에 옮겨 소속시키기를 청합니다.”라고 요청하였고, 병조의 요청대로 결정되었음이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전해진다. 즉, 단월역은 『세종실록지리지』 편찬 당시 괴산군에 속해 있었는데, 그 이듬해에 충주목 소속으로 조정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세종실록지리지』 편찬 이후에 군현의 개편이 많이 이루어졌음은 그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점이다. 그 밖의 대표적인 기록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신립이 충주에 도착하여 처음 진을 친 곳이 단월역 앞이라는 사실이 『선조수정실록』을 비롯한 그 당시의 사실을 전하는 여러 자료에서 보인다.
[의의와 평가]
단월부곡의 최초 설치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이미 단월역으로 개편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역으로의 개편은 이 지역이 갖는 지리적 요인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으로 추정되는 단월부곡 지역은 영남 지역과 한강 유역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인 충주 지역에서도 문경새재로 통하는 요충지이며, 수로(水路)까지 끼고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교통로로 중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