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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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강세황의 서첩.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은 조선 후기 영조·정조 연간의 문인이자 서예가이며 뛰어난 감식안을 가진 서화 평론가로 시·서·화 삼절로 알려져 있다. 당대 최고의 화원인 김홍도(金弘道)·신위(申緯)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강세황 행초 표암 유채』는 끝에 경술년(庚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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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곡부). 자(字)는 사홍(士弘)·성지(星之). 공서린(孔瑞麟)의 9대손이며, 공원인(孔源仁)의 아들이다. 공윤항은 가세가 몹시 빈곤하였으나, 1792년(정조 16) 정조가 초계문신(抄啓文臣)을 직접 시험하는 과강(課講)과 일차유생의 전강을 실시할 때 학문이 뛰어나다고 해서 왕명으로 특별히 전시를 볼 수 있었다. 1794년 알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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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백심(伯深), 호는 운소(雲巢).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의 손자이며, 형조판서 김효대(金孝大)의 아들이다. 김사목은 문음(文蔭)으로 관직에 나간 뒤 김제군수를 거쳐, 1772년(영조 48)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 부교리, 보덕(輔德), 승정원동부승지를 거쳐 1774년에는 승지가 되었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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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서 이주국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주국은 정종(定宗)의 아들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1721년(경종 1) 3월 23일 용인 원삼면 문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이함(李函)이고, 어머니는 능성구씨(陵城具氏)이다. 이주국이 태어나던 날 밤 부친의 꿈에 한 마리 검은 용이 대들보를 타고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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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차달을 시조로 하고 류자화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문화류씨의 본향은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이며, 시조 류차달(柳車達)의 10세손 내지 12세손 대에서 14파로 크게 나뉘는데, 류량을 파조로 하는 충경공파(忠景公派), 류만수(柳曼殊)를 파조로 하는 좌상공파(左相公派), 류관(柳寬)을 파조로 하는 하정공파(夏亭公派), 류원현(柳元顯)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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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남계(南溪)이다. 아버지는 교리(校理) 박의(朴猗)이며, 부인은 원두추(元斗樞)의 딸이다. 성균관 유생 시절에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주장, 효종의 꾸지람을 받자 과거를 포기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 1차 예송논쟁(禮訟論爭)에서 기년복(朞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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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사적(事蹟)을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것. 비는 내용에 따라 불교유적과 관련된 탑비(塔碑)와 유교유적과 관련된 묘비(墓碑)·신도비(神道碑)·사적비(事蹟碑)·송덕비(頌德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탑비는 승려의 생애를 적은 비이고, 묘비와 신도비는 공업(功業)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에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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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두암산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정암 조광조, 방은 조광보, 회곡 조광좌, 음애 이자 등이 모여 학문을 논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정자의 이름을 사은(四隱)이라 한 것은 정암, 방은, 회곡, 음애가 서로 친하게 지내며 도의(道義)로써 사귀어 더불어 즐거워하고, 농사 짓고[耕], 나무하고[薪], 낚시질하며[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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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경기도박물관에 기탁 보관된, 선조의 친필 비밀문서와 정조의 어친필(御親筆)을 별책으로 묶은 첩. 『선조어서 사송언신 밀찰첩(宣祖御書賜宋言愼密札帖)』과 『정조어제 선조어서 밀찰발(正祖御製宣祖御書密札跋)』은 모두 2첩으로 묶여진 고문서로, 1987년 12월 26일 보물 제941호로 문화재청에 지정 등록되었다가, 2004년 영정과 분리되고 명칭도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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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자장(子章), 호는 창주(滄洲). 심탁(沈倬)의 아들이며, 정엽(鄭曄)의 문인이다. 심지한은 1618년(광해군 10) 동학유생(東學儒生)으로 조경기(趙慶起) 등 8인과 함께 폐모론을 주도하는 이위경(李偉卿)·정조(鄭造)·윤인(尹認) 등을 극형에 처하도록 상소하였다. 이 일로 아버지 심탁과 함께 가산이 적몰되고, 문외출송(門外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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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정조 4)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조선 후기인 1780년(정조 4) 수원부 양지현(현재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사는 문덕봉이 김덕희(金德希)와 함께 술에 취해 돌아오는 중에 비틀거리며 쓰러진 김덕희를 무릎으로 쳐서 죽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김덕희의 사인(死因)을 두고 고의인지 과실인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였다. 김덕희 사체에서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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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중기 연안부부인 전씨의 묘. 연안부부인 전씨(田氏)는 성종의 장모이자 중종의 외할머니로,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 윤호(尹壕)의 부인이다. 윤호가 신창현감으로 있을 때인 1462(세조 8)년 6월 26일 낳은 딸이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이다. 본래 성종의 비는 한명회의 딸이었으나 19살로 요절하였고, 뒤를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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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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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온 성씨. 성(姓)은 혈족(血族)을 나타내기 위하여 붙이는 일종의 칭호로서, 아버지와 자식 간에 대대로 계승되며 절대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고려 중기부터라고 하는데, 시대에 따라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성에는 본관(本貫)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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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정조 7)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김원철이 자기 아내의 묘를 박 여인 시아버지 산에 몰래 썼다. 여러 차례의 송사에서 김원철이 매번 패했으나 묘를 파가지 아니하자 박 여인이 사사로이 파내었다. 이에 김원철이 박 여인을 구타하였는데, 사흘만에 죽었다. 1784년(정조 8) 5월에는 고의적인 살인으로 사형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그 해 김원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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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유생.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 때 통덕랑(通德郞) 한홍제(韓弘濟)와 함께 결사대를 조직하여 반란군이 좌찬고개를 지나지 못하게 막아 공을 세웠다. 유상한(劉相漢)은 이인좌의 난이 평정된 당시에는 포상되지 않았다가 1788년(정조 12) 정조가 당시 반란 진압에 참여하였으나 포상 받지 못한 공신들을 다시 찾을 때 알려져 그 후손이 상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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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단오(端五), 자호는 애오로(愛吾盧). 문성공 유순정(柳順汀)의 9대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유진운(柳振運), 아버지는 유담(柳紞)이다. 부인은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쓴 사주당(師朱堂) 이씨이며, 『언문지(諺文志)』의 저자 유희(柳僖)의 아버지이다.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벼슬은 높지 않았으나, 담운(澹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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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유형의 문화적 소산 중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문화재. 2007년 10월 현재 경기도 용인시에는 국가지정 유형문화재로 국보 9점, 보물 37점과 경기도에서 지정한 경기도유형문화재 12점이 있다. 용인시청에서는 국가지정 문화재 중 보물 9점과 경기도유형문화재 8점을 집중 관리·소개하고 있다. 광교산 동쪽 서봉사(瑞峰寺) 터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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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중옥(仲玉), 호는 퇴암(退巖). 아버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며, 아들은 청주목사(淸州牧使) 윤행엄(尹行儼), 증영의정(贈領議政) 윤행임(尹行恁) 등이 있다. 영조·정조 시대에 활동한 문인으로 청렴한 자세로 이름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하였고 진사시 급제 후 여러 고을의 원을 하였는데 특히 금산군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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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윤행임(尹行恁)[1762~1801]은 시파(時派)의 중추적인 인물이다. 시파와 벽파(辟派)의 당쟁이 극심하였던 정조 대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나 탄핵 또한 빈번하여 자주 유배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성보(聖甫), 호는 방시한재(方是閑齋)·석재(碩齋). 조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며, 아버지는 익찬(翊贊) 윤염(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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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에서 활동한 문신. 1776년(정조 즉위) 영조의 서녀(庶女) 화완옹주(和緩翁主)와 함께 정조의 즉위를 반대하던 홍인한·정후겸이 죽임을 당한 뒤인 7월 훈련원정으로 있었을 때, 헌납 신응삼(辛應三)이 이광운의 형인 무관 이철운(李喆運)이 홍인한의 총애를 받았다는 사실 등을 이유로 탄핵하여 사판(仕版)에서 삭제되었다. 1788년 경기도 용인에서 살다가 “세자를 세워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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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덕재(德哉), 호는 도곡(陶谷). 증조부는 찬성공 이후연(李後淵), 조부는 파주목사 이정악(李挺岳), 아버지는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이다. 어머니는 정경부인으로 군수 정창징(鄭昌徵)의 딸이고, 홍익한(洪翼漢)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서울 북부 진장방(鎭長坊) 소격동의 외가에서 출생하여, 21세 때 도승지로 있었던 아버지 이세백이 기사환국(己巳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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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유학자. 조선 후기 유학자로 『문산집』을 남기었고 특히 노론의 유학자로 남인인 다산 정약용과 시문으로 토론을 벌인 용인의 유학자. 이재의(李載毅)[1773~1839]의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여홍(汝弘), 호는 문산(文山)이다. 덕천군의 14대 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정조 때 병조판서를 역임한 이주국(李柱國)이며,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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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재학은 조선 후기 영조 대에서 순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이다. 대사간으로 재임할 때는 “오늘날 허다한 하자와 폐단을 이루 거론할 수 없습니다만, 그 병든 근원을 찾으면 오로지 군신상하(君臣上下)가 실(實)이란 하나의 글자를 실행해나가지 않는 데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라고 임금께 당대의 폐단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중(聖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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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여고(汝皐). 조부는 인평부원군 이보혁(李普赫), 아버지는 병조판서 이경호(李景祜)이다. 1757년(영조 33) 정시(庭試) 춘당대에서 장원 급제하였고, 사간원지평·홍문관교리 등 청요직을 역임하였다. 1763년(영조 39) 암행어사로 호서 지방을 감찰하였다. 이어 홍문관교리로서 세자시강원필선·문학 등을 겸임하였고, 사헌부헌납·홍문관수찬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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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이주국은 건장하고 뛰어난 용모와 강직한 성품으로 부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아 명망이 있었다. 문무의 차이가 심한 사회에서 문신의 횡포를 감내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아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언(君言), 호는 오백(梧栢). 정종의 서자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적(李滴)이며, 어머니는 찬성(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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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학자. 이행상은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문인으로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학자이다. 후대에 학문 성과를 인정받아 송단(宋湍)·성덕명(成德明) 등과 함께 이재 문하의 삼처사(三處士)로 불리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골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찍부터 사서삼경에 통달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리(公履), 호는 왕림(旺林). 문강공(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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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순수와 이은동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는 신라 때 사공을 지낸 이한(李翰)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이한의 21세손이다. 전주이씨는 조선왕조의 건국으로 확고부동한 대성의 지위를 차지했으며 본관을 기준으로 할 때 3위에 해당된다고 한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로서 거의 왕자대군과 왕자군을 파조로 하고 있으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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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채제공의 공덕을 기리는 뇌문비. 채제공 뇌문비는 처인구 역북동 낙은마을 채제공의 묘역 입구 산기슭에서 북서향 방향에 있는 비각 내에 보존되어 있다. 네모난 모양의 백색 화강암제 비좌와 흑요색의 비신으로 이루어진 비는 팔작지붕에 옥개석 형태이다. 비신 상부의 전액(篆額)은 “어제뢰문(御製誄文)”이며, 본문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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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조중회는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선조인 생육신 조려(趙旅)의 기상을 이어받아 죽음을 불사하고 간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영조의 빈번한 사묘(私廟) 참례, 장헌세자(莊獻世子)를 죽게 한 처분 등에 대해 통렬히 논박하였다. 1781년부터 이듬해 죽을 때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 충렬서원의 제32대 원장을 지냈다. 본관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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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1720~1799]은 영조, 정조 대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국정을 주도하였던 문신으로 오광운(吳光運), 강박(姜樸)에게서 수학하였다.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채응일(蔡膺一)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 이만성(李萬成)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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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채제공의 묘. 채제공(蔡濟恭)[1720~1799]의 본관은 평강(平康), 자(字)는 백규(伯規), 호(濩)는 번암(樊巖)·번옹(樊翁)이며,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1743년(영조 19)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도승지였던 1762년에는 살해 위기에 놓인 사도세자를 옹호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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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원삼면에 위치하고 있는 학일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원삼면의 문촌리 일부와 양지군 목악면 학일마을 지역을 통합하여 만든 마을이다. 마을에는 2007년 현재 50가구에 1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중 38가구에서 38대의 PC를 보유하고 있는 정보화마을이다. 학일마을은 현대의 산업화와 도시화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용인의 기타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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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계형(季亨), 호는 만오(晩悟), 초명은 용구(用九).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한후유(韓後裕)이다. 한용구(韓用龜)[1747~1828]는 영조 대부터 정조, 순조의 3대에 걸쳐 활동하였으며 1772년(영조 48) 황감제(黃柑製)에 장원 급제하였다. 1773년(영조 49)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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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서원. 이재(李縡)[1680~1746]의 고향인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천리 노곡(노루실)에 있었던 서원이다.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노론의 중신이자 학자로 활동하던 도암(陶菴) 이재(李縡)[1680~1746]는 만년에 고향인 경기도 용인의 선영 아래로 퇴거하여 한천정사(寒泉精舍)를 짓고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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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백창(伯昌). 아버지는 대사헌(大司憲) 한현모(韓顯謨)이다. 백창(伯昌) 한후유(韓後裕)[1713~1791]는 숙종 대부터 정조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1748년(영조 24) 35세 때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1751년(영조 27)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을 제수 받은 후, 세손좌종사(世孫佐從史)·사복시주부(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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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순보(純甫), 호는 담와(淡窩). 아버지는 참판 홍우전(洪禹傳)이며, 어머니는 대사헌(大司憲) 이상(李翔)의 딸이다. 담와(淡窩) 홍계희(洪啓禧)[1703~1771]는 영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시무에 밝고 경세치용(經世致用)에 관심이 많았던 개혁 실천주의자이다. 스스로 노론 이재(李縡)의 문인이라 했으나 대다수의 이재 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