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용인문화대전 > 용인향토문화백과 > 삶의 자취(문화유산) > 기록유산 > 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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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 이색이 지은 기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이색(李穡)[1328~1396]의 문집인 『목은집(牧隱集)』에 전하는 기문으로, 이석지(李釋之)의 은둔 생활을 칭송한 글이다. 고려 말 학자 이석지(李釋之)가 지금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南谷)에 은거하며 사는 모습과 남곡의 수려한 경관, 이석지와의 교분이 잘 나타나 있다. “용구 동쪽에 남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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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김상헌이 심곡서원 중건에 즈음하여 지은 상량문. 「심곡서원 중건상량문(深谷書院 重建上樑文)」은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심곡서원 중건 상량식(上樑式)에 즈음하여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후손들이 글을 청하자 지어 준 상량문(上樑文)이다. 심곡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심곡서원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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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김황이 이석지의 재사인 남곡재의 중건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남곡재 중건기(南谷齋 重建記)」는 이석지의 후손인 이병운(李柄運)의 부탁으로 영남의 대학자 김황(金榥)[1896~1978]이 남곡재의 중건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記文)이다. 이석지(李釋之)는 고려 후기 이성계 일파가 새로운 왕조를 열고자 했을 때 적극 반대하며, 여러 학사들과 두문동에 들어가 불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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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용구가 사은정의 중수를 기념하여 지은 기문. 「사은정 중수기(四隱亭 重修記)」는 조국형(趙國衡)과 이인규(李麟珪)가 사은정(四隱亭)을 중수한 뒤에, 작자인 이용구(李容九)에게 중수기를 부탁하자 지어 준 기문(記文)이다. 글씨는 정영소(鄭榮韶)가 썼으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 있는 사은정(四隱亭)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사은정은 정암 조광조(趙光祖)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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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범조가 사은정의 중창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사은정기(四隱亭記)」는 조광조의 9세손인 조국인(趙國仁)이 사은정(四隱亭)을 중창하고 나서 정범조(鄭範祖)[1833~1898]에게 부탁하자 지어준 기문(記文)이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 있는 사은정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사은정은 정암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하여 중종 때의 유학자로 식견이 높았던 조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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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준구가 권태필의 조모 순흥안씨의 효열부로서의 덕목을 칭송한 정려기. 「순흥안씨 정려기(順興安氏 旌閭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남사초등학교 앞에 있는 순흥안씨 정려각(順興安氏 旌閭閣) 안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권태필(權泰弼)의 조모인 순흥안씨(順興安氏)의 효성을 널리 표양(表揚)하기 위한 칭송의 글로, 효행과 열부의 행적, 정려의 은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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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년(현종 16) 송시열이 심곡서원 강당 건축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심곡서원 강당기(深谷書院 講堂記)」는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5세손인 조위수(趙渭叟)가 심곡서원의 강당을 건축하고 난 뒤 송시열(宋時烈)[1607~1689]에게 글을 청하자 지어 준 기문(記文)이다. 심곡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심곡서원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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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민병승이 심곡서원 강당 중건의 전말을 지은 기문. 「심곡서원 중건기(深谷書院 重建記)」는 심곡서원 건축물이 오랜 세월의 흐름에 퇴락해지자 새로 중건하고 낙성하면서, 용인의 유림들이 민병승(閔丙承)[1866~?]에게 글을 청하자 지어 준 기문(記文)이다. 심곡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심곡서원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으로, 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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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7년(연산 3) 홍귀달이 지은 용인현에 있었던 양벽정의 기문. 『신증동국여지승람』「용인현」 ‘누정(樓亭)’에 전하는 작품으로, 용인현감 김우(金祐)의 부탁으로 홍귀달(洪貴達)[1438~1504]이 지어준 기문(記文)이다. 조선 성종 때 김우(金祐)가 용인현감으로 부임하여 잘 다스렸음을 칭송하고, 객헌(客軒) 동쪽에 있던 정자 터에 새로 정자를 짓고 ‘양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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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2년(중종 27) 김안국이 지은 양지현 동헌 중수 기문(記文). 『모재집(慕齋集)』에 전하는 작품으로, 권렴(權㻩)이 양지현(陽智縣)의 동헌(東軒)을 중수하고, 김안국(金安國)[1478~1543]에게 부탁하여 받은 기문이다. “양지는 작은 고을이다. 경기 안에 예속되어 공물이 많고 부역의 번거로움이 다른 도의 배나 된다. 땅이 좁고 사람이 적으며, 아전과 노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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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영조 22) 이재가 지은 임진왜란 의병장 유복립의 정려기.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한 유복립(柳復立)[1558~1593]에게 정려의 은전이 내려지자, 후손 유심(柳深)의 간청으로 이재(李縡)[1680~1746]가 지은 정려기(旌閭記)이다. 글씨는 이조참판 신만(申晩)이 썼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에 있는 유복립 정려각 안에 현판으로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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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정원화가 아버지 정한영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기문. 「정한영 효자비각기(鄭漢永 孝子碑閣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서원말의 정한영 효자비각 안에 걸린 현판으로, 정원화(鄭元和)가 부친인 정한영(鄭漢永)[1862~1947]의 효행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칭송한 기문(記文)이다. 비각 안에는 효자비와 행장기(行狀記)가 있는데, 효자비의 비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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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숙종 22) 권철이 남한산성 전투에서 순절한 이찬조에게 정려가 내려지자 지은 정려기. 「증참판이공 정려기(證參判李公 旌閭記)」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 전투에서 순절한 이찬조(李纘祖)에게 정려의 은전이 내려지자, 손자인 이한섬(李漢暹)이 권철(權徹)에게 간청하여 지은 정려기(旌閭記)이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정문동)에 있는 이찬조 정려각 안에 현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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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년(선조 41) 이정구가 충렬서원에 내린 사액을 기록한 기문. 「충렬서원 강당기(忠烈書院 講堂記)」는 충렬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걸린 기문(記文)으로, 충렬서원에 사액(賜額)이 내리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이정구(李廷亀)[1564~1635]가 지은 기문이다. 이정구의 문집인 『월사집(月沙集)』에도 전한다. 충렬서원은 고려 말기의 문신 정몽주(鄭夢周)[1337~1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