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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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Dolmen |
이칭/별칭 | 지석묘(支石墓),석붕(石棚)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권승록 |
[정의]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개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기념물인 고인돌[支石墓]은 대부분 지상에 윗돌[上石]이 노출되고, 주변으로 묘역 시설이 존재하거나 지하에 받침돌[支石]이나 석재(石材)를 이용한 돌널무덤[石棺墓] 같은 매장 시설로 구성되는 대표적인 무덤이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하천 유역의 충적지와 주변을 조망하기에 유리한 산과 가까운 낮은 구릉지에 단독으로 배치하거나 수십 기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특수한 경우 산기슭에 조성된 사례도 발견된다.
고인돌은 현재까지 지표조사나 발굴조사를 통해 많이 파악되었지만, 총 수량은 확실하지 않아 학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한반도에만 대략 1만 5000~2만여 기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어 한반도를 ‘고인돌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인돌의 경우 일반적으로 윗돌과 받침돌 같은 외형적 형태로 북방식(北方式), 남방식(南方式)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다양한 발굴조사와 연구성과로 인해 세부적으로 탁자식(卓子式), 기반식(碁盤式), 개석식(蓋石式), 위석식, 묘역식(墓域式) 등으로 구분한다.
기능적으로는 무덤 시설과 함께 표지적 의미, 제사의식을 위한 제단(祭壇) 등의 특수한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연구되기도 한다. 무덤으로 사용되는 경우 내부에서 직접적인 인골(人骨)의 출토사례를 통해 다양한 매장 방법이 관찰되기도 한다. 출토되는 껴묻거리[副葬品]는 주로 돌칼[石劍], 돌살촉[石鏃] 등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붉은간토기[紅陶], 옥류(玉類), 돌칼, 가락바퀴[紡錘車], 그물추[漁網錘], 청동검, 청동화살촉과 같은 다양한 유물도 출토되기도 한다.
[청송의 고인돌 분포 지역]
청송 지역에서 확인되는 고인돌은 자연지형과 교통로를 따라 크게 3개 지구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먼저 안덕면, 현동면과 현서면 일대의 길안천, 보현천, 눌인천을 따라 곡간 충적지와 구릉 말단부의 지형에 문거리, 성재리, 거성리, 무계리, 수락리, 천천리에서 단독으로 조성되거나 10여 기의 윗돌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부남면 일대의 용전천 상류를 따라 형성된 넓은 충적지와 협소한 곡간 충적지 지형인 대전리, 양숙리, 하속리, 홍원리 일원에 1~3기의 윗돌이 분포하고, 파천면과 청송읍을 중심으로 용전천 중류와 용계천 상류에 돌출된 구릉사면과 충적지인 금곡리, 덕리, 지경리 일대에 2~4기의 윗돌이 군집을 이루며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분포 양상으로 보아 청송군 내 고인돌의 경우 자연 지형과 교통로 상의 거점을 따라 하천변 넓은 충적 지형에 청동기시대 마을이 자생적으로 형성되었고, 사회적 협력체계나 특수한 목적과 기능을 위해 고인돌이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청송 지역 고인돌의 특징]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청송군에서 고인돌의 내부 구조가 밝혀진 것은 없다. 2006~2008년 청송 성덕댐 수문 공사와 수몰 지역, 진입도로공사 관련하여 성림문화재연구원에서 수락리 고인돌 떼 1, 성재리 고인돌 떼 1, 2의 윗돌 10여 기를 2차에 걸쳐 조사하였으나, 하부 구조나 청동기시대 문화층이 발견되지 않아 단애면에서 붕괴된 자연암석이 구 지표상에 노출되었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홍원리, 수락리, 대전리, 하속리, 성재리의 경우 윗돌 아래에 받침돌들이 노출되는 전형적인 고인돌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거석기념물인 고인돌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