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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세거지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1237
한자 姓氏世居地
영어음역 Sungssisegeoji
영어의미역 Single-Clan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용인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장환

[정의]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성씨의 세거지와 집성촌.

[개설]

성(姓)은 혈연적인 것을 말하고 씨(氏)는 지역을 뜻한다. 그러므로 김해김씨하면 김은 성이고 씨는 김해가 된다. 삼국시대의 시조들이 모두 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성을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통일신라까지도 성이 일반화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통일신라 이전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성으로는 김(金)·이(李)·박(朴)·최(崔)·정(鄭)·장(張)·설(薛)·손(孫)·왕(王)·배(裵)·한(韓)씨 정도였다. 그러다가 후삼국시대, 특히 고려가 통일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성이 보편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의 개국공신 중에도 대부분이 자신의 성이 없어서 태조 왕건이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례도 많았다. 고려 초기부터 각 본관마다 읍사(邑司)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던 토성(土姓)은 지역적 이동을 계속하여 본관지와는 다른 지역으로 옮겼으며, 그곳에서 터전을 잡고 대대로 생활하였다. 또한 이들은 각자 동족 마을을 구성하여 자기들끼리 생활하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용인시의 경우도 그 지역의 토성만이 아닌 다른 성씨들이 유입되었다.

용인시에 세거하는 성씨는 매우 많으나 주종을 이루는 것은 대략 해주오씨(海州吳氏), 죽산박씨(竹山朴氏), 영일정씨(迎日鄭氏), 양천허씨(陽川許氏), 연안이씨(延安李氏), 한산이씨(韓山李氏), 한양조씨(漢陽趙氏), 의령남씨(宜寧南氏), 경주김씨(慶州金氏), 문화류씨(文化柳氏) 등이다.

[변천]

대체로 조선시대에 들어와 용인 지역의 사족 세력은 토성 사족인 용인이씨와 인근의 죽산박씨·죽산안씨가 그 모체가 되고 처가와 외가로 영일정씨·연안이씨가 15세기에 들어와 살다 기반을 잡았다. 16세기 이후 한양조씨·한산이씨가 사림으로 성장하지만 거듭된 사화에 의한 타격으로 정작 그 가문에 속한 조광조라든지 이자(李耔)의 명성에 비해 용인 내에서 사족으로서의 세력은 그리 크지 못했으며, 이것은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17세기 이후 한동안 침체하였던 연안이씨 집안에서 이귀(李貴)이정구(李廷龜)가 현달하고 그 후손이 벼슬과 학문으로 이름을 드러내며, 또 서인 내지 노론으로 집권 세력의 핵심이 됨으로써 가문의 성세가 대단하게 되나, 동시에 용인의 본거를 떠나는 집안이 늘게 된다.

그에 비해 17세기에 옮겨온 해주오씨 오윤겸(吳允謙) 집안은 처인구 모현읍 일대에 선영을 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문중의 결속을 튼튼히 다짐으로써 용인 내의 명망 있는 가문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옮겨온 우봉이씨도 관력에 있어서는 해주오씨에 못지않은 노론의 핵심 가문으로서 중앙의 집권 벌열 세력과 중첩된 혼맥을 맺으면서 경기 사림을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이재(李縡)에 이르러 용인 내 당대 제일의 명벌이 되었다.

요컨대, 여전히 과거와 관직이 문벌 유지의 필수 조건이며 정치적 색채로는 15세기는 훈구계, 16세기는 사림계, 그러고 동서분당 후로는 서인, 그리고 노론계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후기로 가면서 이곳에서 세거하다가 벼슬길에 오르면 대개 생활 기반을 서울로 옮겨 사는 경향이 심화되어 결국 용인은 그들의 선영으로서 잠시 우거(寓居)하는 곳이 됨으로써 ‘죽어서는 용인에 간다(死去龍仁)’라는 속언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현황]

1930년대 용인군 내에 거주하고 있던 성씨는 총 110성이며 전국적인 현상과 비슷하다. 다만 용인 지방은 토성 용인이씨를 비롯하여 연안이씨·전주이씨·우봉이씨 등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김씨보다 이씨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한편 8·15광복 이후 최근까지 여러 차례 인구 조사가 있었으나 성과 본관이 구체적으로 조사된 것은 1985년 11월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의 자료가 유일하다. 그 자료에 의하면 김(金)·이(李)·박(朴)·최(崔)·정(鄭)·강(姜)·윤(尹)·장(張)·임(林)의 순서이고, 이들이 전체의 64.5%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가운데에서도 김·이·박이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각 성씨의 본관 수는 무려 3,435개이나 김(285)·이(241)·박(128)·최(127)·정(122)·강(33)·조(56)·윤(44)·장(63)·임(60) 등 10대 성씨의 본관이 전체의 33.5%였다. 1985년 11월 기준으로 경기도의 가구는 1,163,753호이고, 인구는 4,792,617명인데 그 중 용인군은 각각 34,541호의 153,767명으로, 이는 경기도 가구 수의 3.05%, 인구수의 3.2%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의거, 용인군의 성씨별 인구 현황에 따라 지역 내에 동성동본의 동성촌을 형성하고 있는 본관과 그 동성촌 수를 열거해 보면, 전주이씨 8개 촌, 경주김씨 7개 촌, 김해김씨 6개 촌, 청주한씨 5개 촌, 연안이씨안동권씨밀양박씨 각 4개 촌, 한양조씨·전주유씨·용인이씨·경주이씨·죽산박씨 각 3개 촌, 파평윤씨·남양홍씨·해주오씨·제주고씨·사천목씨 각 2개 촌 등이다.

각기 1성관 1촌씩을 이루고 있는 성씨는 기계유씨·청송심씨·한산이씨·봉화금씨·상주황씨·덕수이씨·능성구씨·여양진씨·함종어씨·청해이씨·강릉김씨·진주소씨·서흥김씨·무송윤씨·해주최씨·죽산안씨·남원양씨·전의이씨·연일정씨·광산정씨·성주이씨·남평문씨·경주정씨·양천허씨·김해허씨 등이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기흥구 신갈동경주김씨·전주이씨, 구갈동김녕김씨, 하갈동충주박씨, 보라동한양조씨, 지곡동한산이씨, 영덕에 용인이씨·덕수이씨, 공세동밀양박씨, 고매동봉화금씨, 서농동제주고씨, 서천동해주오씨·상주황씨 등이 세거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구성면이었던 지역에는 파평윤씨·경주이씨·밀양박씨·성주이씨·남양홍씨·청주한씨·남평문씨 등이 세거하고 있다.

수지구에는 풍덕천동용인이씨, 상현동한양조씨, 고기동덕수이씨·장수이씨, 성복동성주이씨·연안김씨, 죽전동경주이씨·김령김씨, 신봉동기계유씨 등이다. 포곡면에는 유운리신원리 일대에 용인이씨, 영문리 한양조씨, 전대리 나주정씨·김해김씨·광주정씨, 삼계리 안동권씨·김해김씨, 신원리 전의이씨, 마성리 전주이씨 등이 세거하고 있다.

백암면에는 옥산리·장평리·근삼리·근곡리 일대에 죽산박씨가 세거하고 있으며 근삼리경주이씨, 장평리 능성구씨, 박곡리 순흥안씨, 석천리 해주정씨, 가좌리 양천허씨, 박곡리 현풍곽씨·해주오씨, 고안리 장수황씨, 백봉리 수원백씨·나주정씨, 용천리 초계정씨·죽산안씨, 옥산리 진천송씨 등이 주로 세거해 오고 있다.

모현읍에는 왕산리 모산과 갈담리 파담에 용인이씨, 왕산리 장전평 안동권씨, 일산리·매산리광주정씨, 갈담리 파담에 의령남씨, 일산리 하마산에 전주이씨, 일산리 외개일에 진주유씨, 능원리·동림리·갈담리·초부리연안이씨, 오산리해주오씨, 능원리영일정씨, 초부리경주김씨 등이 주로 세거하고 있다.

원삼면에는 죽능리·목신리·학일리해주오씨, 맹리양천허씨, 독성리청주한씨, 미평리·맹리 일대에 진천송씨, 문천리·사암리·죽능리전주이씨, 두창리사천목씨·경주이씨·신천강씨, 좌항리평산신씨 등이 주로 세거하고 있다. 양지면에는 식금리에 고령박씨, 송문리 전주유씨, 송문리 야성송씨, 추계리 연안이씨, 평창리 풍천임씨, 주북리 김해허씨 등이 세거하고 있다.

이동읍에는 송전리에 파평윤씨·함종어씨, 어비리에는 전주이씨·청해이씨·강릉김씨, 덕성리사천목씨·진주소씨가 주로 세거하고 있다. 남사면에는 북리·통삼리능성구씨, 진목리경주김씨, 원암리여양진씨, 방아리·아곡리안동권씨 등이 주로 세거하고 있다. 처인구 역북동한양조씨, 남동마평동전주유씨·전주이씨, 호동경주김씨, 운학동김해김씨·남원양씨·밀양박씨·전주유씨, 유방동밀양박씨 등이 주로 세거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용인의 성씨의 내력을 말해주는 집성촌이나 세거지는 1980년대 말부터 급속히 추진된 도시화로 그 기능이 해체되었다. 즉, 도시화로 인하여 이주민이 대거 정착함으로써 이전에 형성되었던 집성촌이나 세거지의 상황은 상당히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대부분이 급격한 도시화로 뿔뿔이 흩어지거나 없어졌지만, 아직도 그 자취를 볼 수 있는 곳이나 이전의 집성촌 상황을 찾을 수 있는 곳도 상당수 있다. 앞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집성촌이나 세거지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5.13 행정지명 현행화 모현면에서 모현읍으로 변경 사실 반영
2013.05.13 성씨 수정 '문화유씨'를 '문화류씨'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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