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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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泗川睦氏 |
영어음역 | Sacheon Mokssi |
영어의미역 | Sacheon Mok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이동읍 덕성리 |
집필자 | 정양화 |
세거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덕성리|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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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덕성리 삼배울 |
입향시기/연도 | 1600년대 |
성씨시조 | 목효기(睦孝基) |
입향시조 | 목종화(睦宗和) |
목효기를 시조로 하고 목종화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는 고려 때 낭장(郞將)을 지낸 목효기(睦孝基)이다. 고려시대에는 목충(睦忠)·목인길(睦仁吉)·목자안(睦子安) 등이 왜구를 격퇴하는데 공을 세웠다. 조선 중종 때의 학자 목세칭(睦世秤)과 그 자손들이 목씨를 중흥시켰다. 아들 목첨(睦詹)은 선조 때 도승지를 역임하였고, 목첨의 아들 3형제가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첫째인 목서흠(睦敍欽)은 예조참판과 중추부동지사를 지냈고, 둘째인 목장흠(睦長欽)은 인조반정 후 호조참판과 도승지를 지냈으며, 셋째인 목대흠(睦大欽)은 예조참의를 거쳐 강릉부사를 지냈다. 다른 후손으로 숙종 때 남인의 중진으로서 파란을 겪은 목내선(睦來善)과 부제학 및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갑술옥사에 연루된 목창명(睦昌明)이 있다. 목씨는 갑술옥사를 고비로 남인의 몰락과 함께 세력이 약화되고 희성이 되었다.
시조 목효기의 대종손인 16세손 목종화(睦宗和)가 조선 숙종 때 중추부첨지사(中樞府僉知事)를 역임하고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덕성리 삼배울로 낙향하여 세거하게 되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덕성리 삼배울에는 한때 30여 호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여덟 집만 남아 있다. 1957년 발행된 『경기도지』에 원삼면 두창리에 22호가 살고 있다고 되어 있으나 지금은 5~6호가 남아 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덕성리에 입향조 목종화의 묘소를 비롯하여 역대 선영이 있고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 996번지에 목원규효자정문(睦源逵孝子旌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