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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1252
한자 南陽洪氏
영어음역 Namyang Hongssi
영어의미역 Namyang Hong Clan
이칭/별칭 언목홍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고매동
집필자 홍순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동백동
집성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동백동|서천동
입향시기/연도 조선 선조
성씨시조 홍은열(洪殷悅)
입향시조 홍제(洪霽)

[정의]

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제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연원]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는 남양홍씨(南陽洪氏)는 한국의 대표적인 가문으로 ‘당홍(唐洪)’과 ‘토홍(土洪)’ 두 계열로 나눈다. 남양홍씨 당홍의 세계는 시조의 12세손에서 갈라진 13파 등 15개 파로 대별되는데, 그 중 벼슬을 지낸 내력과 후손의 수가 많은 파로는 남양군파·문정공파·판중추파·익산군파·예사공파·중랑공파 등 6파이다.

그 중에서도 남양군파와 문정공파의 후손이 특히 많아서 당홍의 70%를 차지하고, 익산군파가 15%로 다음이다. 당홍은 조선시대에 재상 8명, 문형(文衡; 대제학의 다른 이름) 2명을 비롯하여 왕비 1명, 청백리 3명, 부마 4명, 공신 10여 명을 배출하였다.

[입향경위]

남양홍씨 판중추공파 후손들이 용인 지역에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는 조선 중기이다. 임진왜란·병자호란 등과 같은 변란과 당파 분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17세손 홍수득(洪守得)이 수원으로 입향하게 되었다.

입향조 18세손 홍제(洪霽)는 무공을 세워 1605년(선조 38)에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으며 벼슬이 대호군에 이르렀으나 물러나면서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에 정착하였다. 5대에 걸쳐 무공을 세워 가문의 성세를 누린 대표적인 가문이다. 이들을 ‘언목홍씨’라 부르기도 한다.

[현황]

입향조 홍제의 아들 홍덕연(洪德演)을 비롯하여, 21세손 홍하창(洪夏昌)[1638~1714]·홍하명(洪夏明)[1645~1705], 22세손 홍우평(洪禹平)[1674~1744] 홍우택(洪禹澤)[1681~1743]·홍우구(洪禹龜)[1689~1730] 등이 무공을 세워 가문의 성세를 이었다. 이후 32세손에 이르기까지 용인시 기흥구 중동동백동에 4백여 년간 거주해 왔다.

최근 동백지구 도시화로 집성촌이었던 중동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후손들도 수원·성남·용인 등 여러 지역으로 분산해 살고 있다. 매년 음력 10월 초에 제를 지내고 있다. 이들 후손은 최근 홍제를 시조로 하는 시정공(寺正公) 문중을 결성하였다.

[관련유적]

남양홍씨 판중추공파 시정공 문중의 유적으로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에 용인시 향토유적 제48호인 남양홍씨 시정공파 무관 묘역과 재실 숭천재(崇泉齋)가 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리에는 용인시 향토유적 제27호인 홍계희(洪啓禧)의 묘역 등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5.14 행정지명 현행화 모현면에서 모현읍으로 변경 사실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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