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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1286
한자 靑海李氏
영어음역 Cheonghae Leessi
영어의미역 Cheonghae Lee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집필자 홍순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집성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입향시기/연도 조선 중기[17세기 초]
성씨시조 이지란(李之蘭)
입향시조 이문주(李文柱)

[정의]

이지란을 시조로 하고 이문주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연원]

청해이씨의 시조는 조선 개국공신 이지란(李之蘭)이다. 그의 본명은 퉁두란으로서 아버지에 이어 천호가 되었다가 원나라 말기 고려 공민왕 때 많은 부하를 이끌고 귀화하여 북청에 거주하면서 이성계 휘하에 들어가 이씨 성을 하사받았다.

이어 조선 개국공신 1등에 올라 청해군(靑海君)에 봉해졌다. 청해는 북청의 별호이다. 이지란의 아들 이화영(李和英)세종 초 우군부판사에 이르렀고, 9세손 이인기(李麟奇)선조~인조 대에 벼슬하여 중추부동지사에 이르렀다.

이밖에 인기의 아들 이중로(李重老), 중추부첨지사 이핵의 아들 이유민(李裕民),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이수민(李壽民) 등이 유명하다. 청해이씨는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7명을 배출하였다. 2000년 인구 조사에서 3,713가구에 1만 200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향경위]

이인기를 중시조로 한 청해이씨 송계공파 용인문중의 후손들이 처음으로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정착하게 된 것은 17세기 초이다. 9세손 이문주(李文柱)[1599~1662], 10세손 이후(李詡), 11세손 이수민(李壽民)[1651~1724] 등의 묘역이 함께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수민 이후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많다. 용인에 정착하게 된 배경은 자세하지 않으나, 선조들의 묘역을 관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동읍에 정착하게 되고, 점차 각지에 분산해서 살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현황]

청해이씨 송계공파 용인문중의 후손들은 3백 년간 용인 지역에 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성촌을 이루지 못하였다.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 굴암동에 선영이 있고, 어비리에 한때 많이 거주했다는 후손들의 증언만 들을 수 있는 정도이다. 지금은 용인 각지에 분산해 살고 있다.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이동읍 묵리 굴암동 묘역에서 제를 올린다.

[관련유적]

청해이씨 송계공파 용인문중의 유적으로는 이동읍 묵리 굴암동에 소재한 이문주·이수민 등의 묘역과 묘갈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5.15 행정지명 현행화 이동면에서 이동읍으로 변경 사실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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