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1277
한자 全州柳氏
영어음역 Jeonju Yussi
영어의미역 Jeonju Yu Clan
이칭/별칭 반쟁이유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남동|마평동|운학동
집필자 홍순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
집성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용인시 처인구 남동|마평동|운학동
입향시기/연도 16세기 후반
성씨시조 유습(柳濕)
입향시조 유복립(柳復立)

[정의]

유습을 시조로 하고 유복립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연원]

전주유씨는 완산백(完山伯)으로 봉해진 유습(柳濕)을 시조로 한다. 전주유씨는 보문각직제학을 지낸 2세손 유극서(柳克恕)부터 가문이 번창하였다. 유빈(柳濱)은 홍문관응교를, 유의손(柳義孫)은 이조참판을 지냈다. 참판공 유숭조(柳崇祖)는 공조참의와 황해도관찰사를 지냈으며, 증조부 유식(柳軾)은 홍문관전한, 조부 유윤덕(柳潤德)은 홍문관부제학을 지냈다. 부친 유성(柳城)은 사복시정에 추증되었다. 모친 김씨는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의 누이이다.

용인 입향조 묵계공 유복립은 경상도 안동부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외삼촌인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에게 의탁하여 살았다. 1588년(선조 21)에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로 벼슬길에 올랐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진주성을 지키고 있던 외삼촌인 경상우도관찰사 김성일 휘하에 들어가 왜군에 맞서 싸웠다. 왜군의 대공세에 맞서 싸우다 김천일 등과 함께 순절하였다.

[입향경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 반쟁이에 전주유씨가 입향하여 집성촌을 형성한 것은 16세기 후반 무렵이다. 임진왜란 때 충신 유복립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17세기 후반과 18세기를 거쳐 반쟁이 일대에서 동족촌을 형성하였다. 이 때문에 전주유씨 묵계공파의 후손들을 ‘반쟁이 유씨’라 칭한다.

[현황]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 반쟁이 마을에는 1970년대까지 약 50여 가구가 거주하였으며, 마을에서는 매년 큰갓골에 있는 제당에 산제사를 지낸다. 용인시에 거주하는 전주유씨는 대개 유복립을 파조로 하는 묵계공파 후손들이다. 양지면 송문리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인 처인구 남동·마평동·운학동에 분산하여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묵계공의 후손은 7백여 가구에 3천여 명에 달한다.

[관련유적]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 반쟁이마을에는 시지정 향토유적 제41호인 유복립의 묘가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