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계림군 김균(金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찰방 김성진(金聲振)이다. 처는 정응규(鄭應奎)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 성균관에 있을 때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모하자 몇몇 유생들과 함께 이를 비판하는 복합상소를 올려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하옥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1627년 전주정시(...
-
경기도 용인시 남동에서 출생한 효자. 본관은 전주이며 자(字)는 자직(子直)이고 부친은 류무(柳懋)이다. 1716년 용인 지역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병환으로 누어있을 때 소변, 대변을 보아드리며 지극 정성으로 병 구환을 하면서 천지신명에게 고통을 대신하여 달라고 빌었다. 부친이 돌아가자 예를 다하여 상을 치르고 효를 다하지 못함을 죄스럽게 생각하고 1736년 스스로 목숨...
-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한 조선 후기 무신. 본관은 전주이며,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류익(柳翊),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서 4남 중 막내로 1651년 용인에서 출생하였다. 류문수는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여 1682년 영등만호(永登萬戶), 1685년(숙종 11) 토산현감(兎山縣監)을 역임하였다. 1698년(숙종 24)에는 보성군수, 17...
-
조선 후기 용인에서 활동한 천주교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이다. 양반 출신으로 1790년대 초 천주교에 입교하였는데, 1801년 신유박해가 끝난 뒤 경기도 용인시에서 약 16㎞쯤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경기도 용인시에 거주하던 40여 명의 신자들을 이끌고 강원도로 옮겨 갔다. 신태보는 이곳에서 기록상 최초로 천주교 신자들만의 마을인 교우촌(敎友村)을 형성하였다. 강원도에...
-
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오명항의 초상화와 양무공신 교서. ‘오명항영정병함부양무공신교서(吳命恒影幀幷函附揚武功臣敎書)’는 오명항 초상화 한 점과 일등공신으로 책록하는 교서 한 부 그리고 그것들을 담았던 나무로 만든 함 등 총 세 점의 유물을 말한다. 오명항 초상화는 1979년 9월에 해주오씨 문중에서 「오명항 양무공신...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석농(石儂), 자는 경집(敬集)이다. 유근은 1898년 5월 남궁억·나수연 등과 함께 『황성신문』을 창간하였으며, 1905년 11월에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침탈하자 매국 관료를 통렬히 비판하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황제와 각부 대신들을 협박한 사실...
-
조선 후기 용인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전주. 선조로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 시 의병장으로 외삼촌인 경상우도관찰사 김성일(金誠一) 휘하에서 활약하다가 성이 함락당하자 김천일(金千鎰)[1537~1593] 등과 함께 자결한 유복립(柳復立)[1558~1593]이 있다. 아버지는 유은(柳訔)이다.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뒤 경기도 용인시에 낙향하여 은거하였으며...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의병장. 본관 전주(全州). 자는 군서(君瑞), 호는 묵계(墨溪)이다. 할아버지는 부제학 유윤덕(柳潤德)이고, 생부(生父)는 유성(柳城), 양부는 참봉인 유지(柳墀)이다. 유복기(柳復起)와 유복립(柳復立) 형제는 외가에 맡겨져 외조부의 손에서 컸으며 외숙인 학봉 김성일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음보로 종부시주부(宗溥寺主簿)가 되었고, 1592년(선조 25) 임진...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에 있는 조선시대 충신 유복립의 정려각. 유복립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군서(君瑞), 호는 묵계(墨溪)이다. 1558년(명종 13)에 출생하여, 종부시주부(宗簿侍主簿)로 관도에 올랐다. 유복립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의병장 김천일 등과 함께 순절하였다. 1719년(숙종 45) 대종백(大宗伯) 민진후(閔鎭厚)의 주청으...
-
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유무근(柳茂根)이다. 1874년(고종 11)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여 유학(幼學)으로서 1893년(고종 30)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였다....
-
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이경석(李景奭)[1595~1671]은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 산림의 학자들을 대거 천거하여 요직에 오르도록 도와주었으나 훗날 그가 천거한 송시열과 정적이 되어 노소분당(老少分黨)이 이루어지면서 소론의 비조가 되었으며, 조선 중기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하였던 명상(名相)으로 꼽힌다....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사무(士武), 호는 우계산인(雨溪散人). 증조부는 사간원사간 이의무(李宜茂), 할아버지는 좌의정 이행(李荇), 아버지는 도사 이원상(李元祥), 어머니는 동부승지(同副承旨) 신옥형(申玉衡)의 딸이다. 1567년(명종 22) 생원이 되고, 1574년(선조 7)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권지성균관학...
-
조선 후기 용인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 정종(定宗)의 열 번째 아들 덕천군(德泉君)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좌승지 이진하(李鎭夏)이다. 이규헌(李奎獻)[1669~1731]은 1705년(숙종 31)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아버지가 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낙향하여 병간호에 전념하였다. 한겨울 아버지가 잉어찜이 먹고 싶다고 하자 20리나 떨어진 곳을 찾아가 잉어...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 상산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규헌의 정려각. 이규헌[1669~1731]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1669년에 좌승지 이진하(李鎭夏)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균진사를 거쳐 37세에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이 해에 부친이 병환으로 눕게 되자, 장남의 도리를 저버릴 수 없다 하여 형제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관직을 사퇴한 뒤 낙향...
-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이익기(李翊奇)의 아들이다.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교리로 출사하였다. 이듬해에는 병조참의에 올랐고, 1884년 사간원 대사간으로 있던 중 김옥균(金玉均)·서광범(徐光範)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원조를 요청, 청군의 지원으로 개화당 정부를 타도하였다. 그 공...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사언(士彦). 증조부는 신종군(新宗君) 이효백(李孝伯), 조부는 장연령(長淵令) 이은동(李銀同), 아버지는 순안령(順安令) 이여귀(李如貴)이다. 외조부는 윤맹경(尹孟卿)이고, 부인은 남정진(南廷縉)의 딸이다. 1576년(선조 9)에 식년시(式年試) 문과의 병과(丙科) 7위로 급제하였다. 묘비에 의하면 고양군수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
조선 후기 용인의 문인.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조 태종의 서자인 경녕군(敬寧君)의 11대 손으로, 남편은 목천현감인 유한규(柳漢奎)이고, 아들 유희(柳僖)는 『언문지(諺文志)』를 저술한 한글학자이다. 충청도 청주(淸州) 서면(西面) 지동(池洞)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녀자의 솜씨를 익히고 옛 열녀를 마음으로 사모하여 이에 『소학(小學)』, 『가례(家禮)』, 『여사서...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석(頤奭). 정종(定宗)의 왕자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의 7세손이고, 아버지는 사직서참봉(社稷署參奉) 이전(李瑑)이다. 이상경(李尙敬)[1609~1674]은 인조 대부터 현종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1636년(인조 14)에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宣傳官)으로 등용되어 도사(都事)가 되었다.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昭...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회(汝恢). 정종의 일곱째 아들 이덕생(李德生)의 후손으로 승지에 추증된 이징후(李徵厚)의 손자이다. 양주(楊洲) 조희석(趙禧錫)의 외손자이며, 아버지는 대사헌(大司憲)에 추증된 이제상(李齊尙)이다. 아들은 이정인(李廷仁)이다. 이상성(李相晟)[1690~1741]은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
-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치수(稚秀). 아버지는 이학연(李學淵)이고, 할아버지는 이익원(李益原), 증조부는 이회만(李會晩)이다. 외조부는 의령 출신의 남경하(南敬夏)이며, 처부는 전주 출신의 이사의(李師義)이다. 이상준은 용인에서 태어나 거주하다가 1786년(정조 10) 식년문과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벼슬로는 정6품인 사간원정언을 역임하였다....
-
조선 중기 전주이씨의 용인 입향조이자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효령대군의 5대손이고, 평창군수 이유언(李幼彦)의 아들이다. 이순수는 무과에 급제하여 종부시정의 벼슬을 지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에 주로 세거하는 전주이씨들의 입향조이다. 묘소는 원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 하마산마을 뒤에 있다가 갈담리 독점 뒷산으로 이장하였다. 도승지 겸 예문관직제학...
-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정종(定宗)의 열째 아들인 덕천군(德泉君)의 11세손이며, 원종공신(原從功臣) 이기헌(李基獻)과 효자 이규헌(李奎獻)의 조카이다. 이원복은 연로한 아버지를 정성으로 보필하였다.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위해 늘 곁에서 시중들었을 뿐 아니라, 길을 갈 때는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고 업고 다녔다. 아버지의 상을 당한 뒤 3...
-
경기도 용인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유학자. 조선 후기 유학자로 『문산집』을 남기었고 특히 노론의 유학자로 남인인 다산 정약용과 시문으로 토론을 벌인 용인의 유학자. 이재의(李載毅)[1773~1839]의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여홍(汝弘), 호는 문산(文山)이다. 덕천군의 14대 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정조 때 병조판서를 역임한 이주국(李柱國)이며, 아버지는...
-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종(伯宗). 아버지는 이익령(李翼齡)이며, 조부는 이진규(李震奎), 증조부는 이명웅(李命雄), 어머니는 박희인(朴希仁)의 딸이다. 1740년(영조 16) 증광시(增廣試)에 병과(丙科) 21인으로 급제하였고, 벼슬로 지평·정언·장령·헌납을 거쳐 형조참판에 이르렀으나 1761년(영조 37)에 파직당하였다....
-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정종의 서자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이주국(李柱國) 장군의 고손이다. 아버지는 참판에 추증된 이재의(李載毅)이다. 1809년(순조 9)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승지 및 포도대장을 역임하였다. 묘소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 있다....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서 한의원을 운영한 한의사, 청년 운동가 본관은 전주이며 경령군파 17대손이다. 아버지 이희덕, 어머니 신창 맹씨(新昌 孟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종영(李鍾英)[1900~1955]은 1900년 경기도 용인군 신갈동의 전주이씨 종가에서 태어나 조선의학교를 졸업했다. 일제 강점기 용인 지역 출신중 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는 학생들을 규합...
-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이주국은 건장하고 뛰어난 용모와 강직한 성품으로 부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아 명망이 있었다. 문무의 차이가 심한 사회에서 문신의 횡포를 감내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아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언(君言), 호는 오백(梧栢). 정종의 서자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적(李滴)이며, 어머니는 찬성(贊...
-
조선 전기의 종친. 이증은 세종의 둘째 서자로, 계양군에 봉해졌다. 세종이 끔찍이 사랑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여 공부하기에 게을리 하지 않았고, 특히 글씨에 능하였다. 그러나 세조의 즉위와 관련해서는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안평대군을 제거하였으며, 좌익공신에 책록되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현지(顯之). 아버지는 세종이고 어머니는 신빈김씨(愼嬪金氏)이다. 부인...
-
조선 전기의 종친. 이징은 태조의 조카이며, 고려 때부터 벼슬에 나아갔지만 주로 활동한 시기는 태종과 세종대이다. 본래 풍질이 있어 이로 인해 죽었다. 아버지가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태종을 도와 난을 진압한 공이 있었고, 이징도 태종대부터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특히 일생에 세 번이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외교적인 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하였다. 본관은...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독정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이찬조의 정려각. 이찬조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1584년에 용인에서 태어났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별천선전관(別薦宣傳官)이 되어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송하였다. 1636년에는 의병을 이끌고 지금의 성남시 세곡동 일원에서 청군과 맞서 싸우다 생포되었다. 청태종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항복하지 않고 당...
-
임진왜란 당시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졌으며, 조선군과 일본군의 주둔지로 사용될 만큼 중요한 전략 거점으로 활용되었던 임진산성은 원래 임진산의 정상, 곧 수지구 풍덕천동 산 37번지와 기흥구 보정동 산 82-2번지 일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임진산성지·풍덕천동성지·예진산성지 등으로도 불리는 임진산성은 조선 중기와 후기에 편찬된 각종 지리지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성이기도 한데...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1번대가 부산진을 침범하였다. 조선 관군은 준비가 잘 된 왜군을 당해내기 어려웠고 왜군은 부산진을 침입한 지 보름 만에 서울까지 점령하였다. 급박한 상황에서 선조는 4월 30일 밤에 서울을 떠났고, 왜군의 1번대와 2번대가 각각 5월 2일...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최유경을 비롯한 조선 전기부터 중기까지의 전주최씨 묘역.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경지(慶之), 호는 죽정(竹亭), 본관은 전주이다. 고려 공민왕 때 태어나 1392년 이성계를 도와 개국원종공신이 되었고, 1393년 축성도감이 되어 한양성을 축성하였다. 최유경은 태조 이성계의...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대(子大), 호는 이재(頤齋). 증조부는 최업(崔嶪), 조부는 최수준(崔秀俊), 외조부는 유영입(柳永立)이고, 아버지는 부사(府使) 최기남(崔起南)이다. 동생은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신인 최명길(崔鳴吉)이고, 부인은 익성군(益城君) 이형령(李亨齡)의 딸이다. 최내길(崔來吉)[1583~1649]은 1606년(선조 39) 사...
-
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강(崔士康)[1388~1443]은 태종의 왕자와 세종의 두 왕자 등 왕실과 연혼하면서 갑자기 현귀하게 되었으나 분수를 지킨 까닭에 세종의 은총이 떠나지 않았다. 이를 배경으로 의정부와 육조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세종 성세(聖世)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부는 선부전서 최득평(崔得枰)이고, 할아버지는 전리판서 문정공(文貞公)...
-
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용(崔士庸)[1392~1453]은 세종대의 문신으로 학문이 뛰어났다.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당시의 석학인 완역재(玩易齋) 강대민(姜戴敏)과 문절(文節) 김담(金淡)과 교유하였다. 관직은 내외직을 고루 역임하면서 백성을 아끼고 바르게 다스려 선정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관중. 증조부는 선부...
-
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위(崔士威)[1361~1450]는 고려 말기의 혼란기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는 아버지 최유경(崔有慶)을 따랐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이성계의 개국을 도와 개국원종공신이 되면서, 최사위도 자연스레 조선에서 벼슬을 하게 되었다. 최사위는 조선 전기 태종과 세종 대에 활약하였는데, 주로 군사와 관련한 일을 잘해서 국방을 방비하는 데 힘썼다. 만년에는 벼슬...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형조판서 최조(崔肇)이다. 1452년(문종 2)에 형조도관좌랑을 거쳐 공조좌랑·이조참의·함경관찰사 겸 순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묘소는 원래 과천시 막계동에 있었으나, 1979년에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로 이장하였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청반(淸班). 증조부는 한성부윤 최사위(崔士威)이고, 할아버지는 최조(崔肇), 아버지는 관찰사 최선민(崔善敏)이다. 아들은 첨정 최결(崔潔)이며, 최옥호(崔玉浩)는 아우이다. 성종대의 문신으로, 1473년(성종 4)에 충청도도사를 지냈다. 1481년(성종 12)에 경차관이 되어 평안도와 황해도를 살폈다. 1483년(성종 14...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부는 한성부윤 최사위(崔士威)이고, 할아버지는 최조(崔肇)이며, 아버지는 관찰사 최선민(崔善敏)이다. 아들은 목사 최항(崔沆)이고, 형은 최옥순(崔玉筍)이다. 성종대에 절충장군으로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을 지냈다. 묘소는 원래 과천시 막계동에 있었으나, 1979년 과천서울대공원 건설 때 용인군 남사면 완장리로 이장하였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지(慶之), 호는 죽정(竹亭). 조부는 선부전서(選部典書) 상호군(上護軍) 최득평(崔得枰)이고, 아버지는 감찰대부(監察大夫) 최재(崔宰)이며, 어머니는 무안군부인(務安郡夫人) 박씨(朴氏)의 딸이다.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1372년(공민왕 21) 판도사좌랑(版圖司佐郎)이 되어 각 도에서 의염(義鹽)의 염분(鹽...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한성판윤 최사위(崔士威)이고, 아들은 이조참의와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한 최선민(崔善敏)이다. 형조판서를 역임하고, 후에 이조판서를 제수받았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묘소는 원래 과천시 막계동에 있었으나, 1979년에 용인시 남사면 완장리로 이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