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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859
한자 李鳳九
영어음역 Lee Bonggu
이칭/별칭 충절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재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841년(헌종 7)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전주
대표관직 공조판서

[정의]

조선 말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이익기(李翊奇)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교리로 출사하였다. 이듬해에는 병조참의에 올랐고, 1884년 사간원 대사간으로 있던 중 김옥균(金玉均)·서광범(徐光範)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원조를 요청, 청군의 지원으로 개화당 정부를 타도하였다.

그 공로로 이듬해에는 사대당 내각의 후영사(後營使) 겸 포도대장·이조참판을 역임하였고, 1885년에는 해방총관(海防總官)이 되었으나, 그해 8월 직권남용과 근무태만의 혐의로 전 정언 조진설(趙鎭卨)의 탄핵을 받아 삭직당하고 함경도 홍원으로 유배되었다. 그 뒤 풀려나와 1893년 충청도수군절도사를 지냈고, 이어 공조판서에 올랐다.

[묘소]

진위(振威)에 임시로 장례하였다가 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로 묘를 옮겼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절(忠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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