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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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생원. 강숙지는 조선 중기 중종 때의 생원으로서, 용인현에서 살았는데, 도둑 누명을 쓰고 발가락이 뽑히는 형장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더불어 그 아내도 결박당하여 감금되었다가 풀려났다. 이에 명확히 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신(武臣)인 포도장(捕盜將) 이종례(李宗禮)가 함부로 형장을 써서 무고한 사람을 죽게 하였다며 조정에서 이종례를 추고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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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교육 기관, 시설 및 관련 시책. 용인 지역에서 교육은 오래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실시가 되었지만 기록에 전하는 것은 조선시대 이후이다. 조선시대에는 공적 교육기관인 향교나 재지 사족들이 선현의 제향을 위해 세운 서원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용인 지역에는 포은 정몽주 등 많은 선현의 유택이 있다. 따라서 그 학덕을 따르기 위해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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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일설에 의하면 경주김씨 문중에 김원립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호가 갈천이었는데, 이 사람이 사는 곳을 일러 갈곡, 또는 갈천이라 하던 것이 지명으로 바뀌었다. 그 이웃 인접한 곳에 마을이 생겼으므로 이를 신갈이라 하였고, 이에 반해 예로부터 있던 마을이므로 구갈이라고 했다고 한다. 본래 용인현의 구흥면 지역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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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용인문화원에서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지역의 실상을 기록으로 남긴 면지. 구성면(駒城面)은 본래 용인현 치소가 있던 구 용인 지역을 말한다. 2000년 9월 1일 구성읍으로 승격되었다가, 2005년 용인 지역 행정구역 개편 때 기흥읍과 합쳐져 기흥구가 되었다. 용인의 서부 지역이 주거 지역으로 바뀌어 가는 추세에 따라 구성면의 변화 추세를 예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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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종직이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집인 『점필재집(佔畢齋集)』권10에 전한다. 본래의 제목은 「문극기행차용인 마사 입경우선원사 차기(聞克己行次龍仁 馬死 入京寓善源舍 借騎: 극기가 용인 행차 때 말이 죽어서 선원의 집에 머물다 말을 빌려 타고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이다. 친구인 김극기(金克己)를 조롱해서 지은 작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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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부아산 북쪽 산록에서 발원하여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금학천은 용인시 내 한복판을 흐르는 경안천의 지천으로 하천 연장은 5.1㎞, 유로 연장은 5.5㎞, 유역 면적은 14.3㎢, 몽리 면적은 5㏊이며, 호안은 6.2㎞의 하천이다. 발원지는 크게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북쪽의 멱조고개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세천이고 다른 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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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기곡면에서의 ‘기’자와 구흥면에서 ‘흥’자를 따서 기흥이라는 지명이 되었다. 고려시대의 용구현과 조선시대의 용인현에 속해 있었던 역참 지역의 하나로 중요한 교통 거점 지역이었다. 1911년 군청이 용인면으로 이전되면서 읍내면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이 되면서 읍내와 수진·동변·서변의 3면을 통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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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김사철의 효자비. 옛 용인현 관아가 있었던 치소의 관문이자 수도 한양으로 통하던 삼남대로변인 지방도 393호선 변의 선정비군 내에 남향(南向)으로 서 있다. 비좌와 월두형의 비신을 갖추었다. 비의 크기는 총 높이 159㎝로, 비좌 높이 40㎝, 너비 71.5㎝, 두께 45㎝이고, 비신 높이는 119㎝, 너비 상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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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거주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석여(錫汝), 호는 연농(硏農)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하여 용인현 수여 남동에서 거주하였다. 집안은 가난하였지만 어버이를 봉양하는데 소홀함이 없이 항상 곁에서 모시고 입에 맞는 음식과 계절에 어울리는 옷을 준비하는 데 온갖 정성을 다하여 용인현에서 이름난 효자였다. 1859년(철종 10) 사마시에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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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이중의 선정비. 1782년(정조 6) 용인에 부임하여 1783년(정조 7)까지 재임한 김이중의 선정을 기념하여 건립되었다. 옛 용인현 관아가 소재하였던 치소의 관문이자 수도 한양으로 통하던 삼남대로변인 현재의 지방도 393호선 도로변에 인접하여 다른 비석들과 함께 남향으로 서 있다. 비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 옥개석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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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말기 개화파 김홍집의 불망비. 김홍집이 관찰사로 재임하는 동안 선정을 베풀어 이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옛 용인현 관아가 소재하였던 치소의 관문이자 수도 한양으로 통하던 삼남대로변인 현재의 지방도 393호선 변에 인접하여 다른 비석들과 함께 남향으로 서 있다. 비신은 월두형이다. 비의 크기는 총 높이 176㎝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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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에 있는 남사면 관할 행정 기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4개 행정동, 6개 면 중 남사면 주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행정 업무를 최 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다. 남사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원래 면의 일부가 수원부(水原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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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은 전국 각지에서 닷새마다 한 번씩 열리는 재래시장을 말한다. 용인 지역 역시 산업화로 인해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기 이전, 즉 전통적 농업이 중심을 이루고 있던 1960년대 말 정도를 기준으로 보면 여러 곳에서 장이 서고 있었다.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였던 용인장(김량장)을 비롯하여 백암장, 원삼장, 송전장, 모현장 등은 용인 지역의 대표급 재래시장이었다. 2009년 말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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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문화. 자는 계창(季昌), 호는 만암(晩菴). 영의정을 지낸 류상운(柳尙運)의 아들이다. 1697년(숙종 23) 과거에 합격하였다가 그 부친이 고시를 주관하면서 아들을 급제시킨 것이 문제가 되어 삭과되었다가 1699년 다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첫 부임지인 용인현에서 재임기간 동안 선치하여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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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선정비군. 송덕비군이 있는 마북동 일대는 용인현의 치소가 있었던 곳이다. 과거 읍치였던 곳에는 행정의 중심인 관아가 있고, 관아를 중심으로 수령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 군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북동 송덕비군 역시 이런 일반적인 경우이다. 총 14기로 현령 등의 선정 송덕비 10기, 군수 선정비 1기, 효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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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맹정승 이야기. 1981년에 채록되어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실려 있다. 세종 때의 명재상 맹사성은 지극히 청렴하고 고결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맹정승은 고향인 온양에서 한양까지 종자도 거느리지 않고 늘 검은소를 타고 다녔다. 맹정승은 한양으로 갈 때면 성환 근처에서 하루를 묵고, 진위현을 거쳐 용인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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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속하는 법정리. 묵리의 중심을 이루는 마을인 묵동(墨洞)에서 유래되었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에 묵동이라는 지명이 나타난다. 본래 용인현의 상동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촌, 거문정, 굴암, 한덕, 묵방, 염치와 묵동의 일부를 합쳐서 묵리라고 하였다. 용인에서 가장 깊은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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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말기 문신 민영준의 불망비. 민영준이 선혜청 당상관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어 용인현의 백성들에 의해 비가 건립되었다. 옛 용인현 관아가 소재하였던 치소의 관문이자 수도 한양으로 통하던 삼남대로변인 현재의 지방도 393호선변에 인접하여 다른 비석들과 함께 남향으로 서 있다. 비좌와 비신의 상부에 있었을 개석은 망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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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회부(晦父). 1455년(세조 1) 현감으로 있으면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60년(세조 6)에 용인현(龍仁縣)에 현령(縣令)으로 부임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합하여 용인현이라 하였으며, 이때부터 현령이 임명되었겠지만 기록에 전하는 것이 없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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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박용민의 선정비. 1867년(고종 4) 용인현령으로 부임하여 1869년(고종 6) 9월 친상(親喪)으로 사임한 박용민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옛 용인현 관아가 있었던 치소의 관문이자 수도 한양으로 통하던 삼남대로변인 현재의 지방도 393호선변에 인접하여, 다른 비석들과 함께 남향(南向)으로 서 있다. 비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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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말기 문신 박응종의 선정비. 1883년(고종 20) 용인현령으로 부임하여 1885년(고종 22)까지 재임한 박응종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옛 용인현 관아가 소재하였던 치소의 관문이자 수도 한양으로 통하던 삼남대로변인 현재의 지방도 393호선변에 인접하여 다른 비석들과 함께 남향으로 서 있다. 비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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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상하동은 기흥구의 동쪽에 위치하며, 구갈동 및 동백동·상갈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본래 고인돌이 아래위로 2개가 있어서 상지석과 하지석으로 불렸는데, 한 글자씩 따서 상하리가 되었다가 상하동으로 승격되었다. 본래 용인현의 동변면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상지석·하지석과 수원동을 합쳐서 상하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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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로 구축된 방어 시설. 용인은 조선시대의 용인현을 계승한 지명으로 고려시대에는 용구현과 처인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중 용구현은 본래 고구려의 땅으로 구성현 혹은 멸오(滅烏)라 불렸는데, 신라 경덕왕 때 거서(巨黍)로 고쳐졌다가 고려 초에 용인으로 바뀌었다.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고구려가 구성현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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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심존지는 1819년(순조 19) 9월 21일 용인현령으로 부임하여 1820년 2월 29일까지 용인현령을 지냈다. 담양부사로 있을 때인 1829년(순조 29) 전라좌도 암행어사 유성환(兪星煥)이 잘 다스렸다고 조정에 보고하여 포상을 받았다. 용인현 백성들은 현령으로 재직할 때의 공덕을 기려 선정비를 세웠는데 이 비가 지금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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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주변에 처인성이 있으며 고려시대 처인현의 소재지가 있던 곳이다. 아꼴마을[衙谷]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관청이 있었다고 하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본래 고려시대 처인현의 치소가 있던 곳이다. 이후 용인현에 속하게 되었고 현내면 지역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산(南山)과 아곡(衙谷)을 합쳐 아곡리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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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7년(연산 3) 홍귀달이 지은 용인현에 있었던 양벽정의 기문. 『신증동국여지승람』「용인현」 ‘누정(樓亭)’에 전하는 작품으로, 용인현감 김우(金祐)의 부탁으로 홍귀달(洪貴達)[1438~1504]이 지어준 기문(記文)이다. 조선 성종 때 김우(金祐)가 용인현감으로 부임하여 잘 다스렸음을 칭송하고, 객헌(客軒) 동쪽에 있던 정자 터에 새로 정자를 짓고 ‘양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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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용인문화원이 양지면의 실상과 문물을 기록으로 남긴 책. 읍면지의 간행은 전국에서 최초로 용인문화원이 시도하고 있는 사업으로, 사료와 지역 사회의 발전과 변화를 기록으로 정리코자 하여 추진하고 있는 향토지의 하나로써 『구성면지』·『수지읍지』에 이어 세 번째로 간행되었다. 양지면은 본래 조선시대에는 양지현의 관아가 있던 지역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용인군과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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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단묘(壇廟). 여단(厲壇)은 떠돌이 귀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거나, 지방의 부락(富樂)을 지켜주는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이는 집 안에 터줏대감을 모셔두는 터주가리가 있듯이 군현 단위의 터줏대감 구실을 하는 지역 신을 모셔두고 제를 올리던 사당이다. 용인현의 경우 조선 서변면의 보수원에 있었고, 양지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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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이동읍 천리에서 어윤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77년 4월 10일 이동면[현 이동읍] 천리에서 이영구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85년에 출간한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수록하였다. 이동면에 있는 어비천은 진위천이라고 하는데, 본래는 장호천이라고 불렀다. 이 장호천의 한 줄기에 어비울(魚悲鬱)이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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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속하는 법정동. 언남동은 행정동으로는 기흥구 구성동에 속한다. 과거 용인현의 치소(治所)가 있던 곳으로 구성 지역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언동(彦洞)과 남동(南洞)을 합쳐 한 글자씩 취해서 생긴 이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언동과 남동을 합쳐 언남리라고 하고 읍삼면(邑三面)에 편입했다. 인근의 마북리와 함께 읍삼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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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도 용인시의 역사. 용인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이래의 변화를 거쳐 1413년(태종 13)에 등장했다. 오늘날 용인시의 영역이 형성된 것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기존의 용인군과 양지군, 죽산군의 일부가 통합됨으로써 그 모태가 마련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은 지역 내외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변화를 거듭해 오는 가운데 형성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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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중기 연안부부인 전씨의 묘. 연안부부인 전씨(田氏)는 성종의 장모이자 중종의 외할머니로,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 윤호(尹壕)의 부인이다. 윤호가 신창현감으로 있을 때인 1462(세조 8)년 6월 26일 낳은 딸이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이다. 본래 성종의 비는 한명회의 딸이었으나 19살로 요절하였고, 뒤를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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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효자. 용인현(龍仁縣)에 거주하던 부모가 잇달아 세상을 떠나자 6년 동안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였다. 형과 형수 또한 일찍 죽자 6명의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대하였으며, 격식을 갖추어 2명의 조카를 성혼(成婚)시켰다. 1432년(세종 14) 9월 13일 예조에서 김효량(金孝良)·전좌명(田佐命) 등 전국 각처의 효자·열부 등의 정표를 청할 때 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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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 향린동산 남쪽 350m 고지에서 발원하여 평택시 서탄면 금암리 남쪽에서 진위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진위천의 주요 지천의 하나인 오산천은 기흥구 동백동 향린동산에서 발원하여 일단 신갈천이 된 뒤 소류지인 동백저수지에 유입되었다가 중동과 상하동을 거쳐서 옛 기흥읍 중앙을 가로질러 동류하다가 갈천마을에서 유로를 남쪽으로 변경하여 신갈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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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고려 건국 초기에는 지방에 수령이 파견되지 못하고 호족들에게 일임되고 있었는데, 성종 때 지방관의 설치를 보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지방에 외관을 파견한 것은 983년 12목의 설치를 시초로 하였다. 그 뒤 몇 차례의 개폐를 거듭하다가 1018년 지방 제도가 일단락되었다. 용구현(龍駒縣)은 고려 건국 초기에 지방 제도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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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리들의 숙박 시설. 객관의 건축적 형태는 궐패(闕牌)와 전패(殿牌)를 모시는 상징적 기능을 가진 주사(主舍)와 숙박 장소인 양 익사(翼舍)로 이루어지는데 주사의 지붕이 양 익사의 지붕보다 높게 되어 있어 공간의 위계를 나타내고 있다. 건축의 구조적 면에서도 주사의 양식이 익사의 양식보다 고급스러운 기법을 사용하여 우월한 공간 성격을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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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정희량이 용인현에 있는 객관에 머물면서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정희량(鄭希良)[1469~1504]의 문집인 『허암유고(虛庵遺稿)』권2에 전하는데, 원제목은 「용인객관견매계수제유감이작(龍仁客館見梅溪手題有感而作)」이다. 지방에 다녀오면서 상경하는 도중 용인객관 시판(詩板)에 전하는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시를 보고, 감회를 억제할 수 없어 토로한 작품이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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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용인군에서 전국적인 읍지 편찬과 상송령에 따라 작성한 읍지. 1895년 지방관제 개편으로 용인현이 용인군으로 변경되어 충주부에 편제되었다가 1896년 4등군으로 지정되어 경기도 관할이 되었다. 그 사정을 담아 1899년 읍지 편찬과 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여 간행한 자료이다. 1권 1책이며, 필사본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표제는 용인군지도읍지(龍仁郡地圖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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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중앙에 위치한 시.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의 두 고을을 합쳐 용구에서의 ‘용’자와 처인에서의 ‘인’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옛 용인현(龍仁縣)·양지현(陽智縣)과 죽산도호부(竹山都護府)의 일부가 합해 이루어진 시이다. 용인현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멸오현(滅烏縣)이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거서현(巨黍縣)으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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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0년(세조 6) 김수녕이 용인현의 한 정자의 유래를 적은 기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용인현」 ‘누정(樓亭)’에 기록되어 전한다. 용인현감 박거명(朴居明)이 치소(治所)에 정자를 지은 뒤 김수녕(金壽寧)[1436~1473]에게 부탁하여 받은 기문(記文)이다. 박거명이 용인현감으로 부임하여 행한 선정을 칭송하면서, 새로 지은 정자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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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에서 어정과 아차지내·메주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5년에 출간한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채록 상황과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1990년에 출간한 『용인군지』에는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수록된 내용과 조금 다른 이야기 두 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1999년에 출간한 『용인 서부지역의 구비전승』에도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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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종직이 용인현의 원정(園亭)에서 잠시 쉬면서 지은 오언고시의 한시.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집인 『점필재집(佔畢齋集)』 권5에 전한다. 오언고시(五言古詩)의 한시 작품으로, 총 18행으로 구성되었다. 용인현에 있는 원정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마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작품이다. 구체적인 예로, 나무 틈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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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암 이재가 지은 향교·서원 등에서 지켜야 할 학칙서. 『용인향숙절목(龍仁鄕塾節目)』은 향교나 서원 등의 교육·의례를 행하는 학칙서로, 이재(李縡)[1680~1746]의 『도암집(陶庵集)』제25권 잡저편에 기록되어 있다. 경기도 용인시의 우봉이씨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다. 절목에는 용인현의 양 서원, 즉 충렬서원과 심곡서원, 그리고 관내의 서당에서 강회(講會)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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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1403년(태종 3)과 1406년(태종 6)에 고려 말 이래의 문란된 지방 제도를 개편하려 했으나 시행되지 못하다가 1413년(태종 13)에 이르러서야 개편하였다. 이때의 군현제 정비 과정에서 용구현과 처인현을 합치고 내부의 면리를 형성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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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조선 말기에 걸쳐 네 차례 간행된 용인현의 읍지. 조선 후기 이전에 용인 지역에서 편찬된 읍지를 참고하여 용인현의 역사와 일반 현황을 담은 자료로, 모두 네 번에 걸쳐 편찬·간행하였다. 조선 후기와 조선 말기 용인현의 현황과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조선 후기와 조선 말기에 전국적으로 진행된 읍지 편찬 작업의 일환으로 간행되었다. 『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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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의 유교의 연원과 전개 현황.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는 종교의 범주에 넣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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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쌍계(雙溪). 증조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흡(李洽)이며, 할아버지는 고려 말기 판도판서(版圖判書)로 있다가 물러나 용인현에 은거하며 조선 건국의 혼란기를 벗어났던 이석지(李釋之)이다. 아버지는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낸 이안직(李安直)이고, 어머니는 문화류씨(文化柳氏)로 판의금(判義禁) 유호(柳滸)의 딸이다. 동생은 제주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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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으로 낙향한 문신. 이종겸은 세종 대 문신으로 활동하다가 세조의 즉위에 따른 혼란과 화를 면하기 위해 형과 함께 문종 때 낙향하였다. 조부인 이석지(李釋之)가 은거했던 용인현 남곡(南谷)으로 내려가 효우당(孝友堂)을 짓고 산수를 읊는 등 한가로운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암곡(岩谷). 증조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흡(李洽)이며,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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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거주하는 주민수 또는 집단. 용인시는 수도권 남부 지역에 위치한 도시로, 1960년대까지는 인구 10만 이하의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다. 1960년 중반부터 시작한 이촌향도로 인구가 일정 기간 감소하였으나, 영동고속국도의 개통으로 에버랜드와 양지파인리조트 등과 같은 위락시설이 입지하면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는 10만 명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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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용인은 경기도의 남부 중심부에 위치한 도시로, 극동은 백암면 고안리, 극서는 수지구 고기동, 극남은 남사면 원암리, 극북은 수지구 고기동이다. 용인은 서울에서 동남 쪽으로 30㎞ 떨어진 도시로 행정구역상 동쪽은 이천시와, 서쪽은 수원·의왕·화성시와 접하고 남쪽은 안성시, 북쪽은 성남 및 광주시와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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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졌으며, 조선군과 일본군의 주둔지로 사용될 만큼 중요한 전략 거점으로 활용되었던 임진산성은 원래 임진산의 정상, 곧 수지구 풍덕천동 산 37번지와 기흥구 보정동 산 82-2번지 일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임진산성지·풍덕천동성지·예진산성지 등으로도 불리는 임진산성은 조선 중기와 후기에 편찬된 각종 지리지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성이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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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해방이전까지 용인 지역의 정치는 주로 국가 기구에 의한 권력 작용, 즉 국가의 지역 주민에 대한 일방적인 통치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일찍이 백제의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을 도읍지로 하여 건국한 이래 용인 지방은 백제의 영토에 귀속되어 오랫동안 백제의 통치를 받았다. 이후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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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유사눌이 용인현에 잠시 머물면서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제영」(유사눌 시)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8 용인현의 기록 중 「제영」에 전하는 작품으로, 유사눌(柳思訥)[1375~1440]이 지방에 다녀오다가 용인현에 잠시 머물면서 지은 작품이다. 용인현 주변의 적막한 정황을 나그네의 회포와 함께 회화적으로 그려내어, 마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현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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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에 용구현과 처인현을 병합해 만들어진 용인현은 수원진영(水原鎭營)에 소속되었으며 남양부(南陽府)에서 관할하였다. 수원진에 부속된 시기에는 16개 면을 종5품의 현령이 다스렸으며, 훈도(訓導) 1명을 두었다. 1872년(고종 9)에 작성된 『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걸로 보아 이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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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 있는 처인구 관할 행정 기관. 경기도 용인시 동부에 있는 처인구를 관장하면서 주민의 편의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용구현과 처인현을 합쳐 용인현이라 하였다. 1975년 용인면이 용인읍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대 이후 신도시 개발과 함께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1996년 3월 1일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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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처인부곡은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1018년(현종 9)에 이미 그 이름이 기록에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 이래 특수한 행정 단위의 하나로 기능했을 것이다. 『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1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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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성은 현 행정구역상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2리 산 43번지에 있는 성곽이다. 면적은 약 1,764㎡(5,820평)이며, 둘레는 425m이다. 북측면 좌측에 문대(門臺)가 있고 남쪽 면의 서측에 후문이 있었던 흔적이 보였으나 1979년 복원공사 때 이 부분을 절단하여 연대 등을 조사한 후 복토하여 지금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붕괴가 심하여 정확한 축조공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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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수원부에 속해 있던 부곡이었으나 1232년(고종 19) 처인성(處仁城) 전투에서 승첩하자 지역민에 대한 전공의 포상으로 일반 군현으로 승격되어 처인현이 되었다. 「최서묘지명(崔瑞墓誌銘)」·『삼국사기(三國史記)』·『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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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지역에 은거한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의성(義成). 한의증(韓義增)[1694~1764]은 1718년(숙종 44)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부호군(副護軍)에 이르렀으나 당쟁과 정변이 많은 조정에 회의를 느껴 사직하고 작은할아버지 묘가 있는 용인현(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기흥동)에 은거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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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서원. 이재(李縡)[1680~1746]의 고향인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천리 노곡(노루실)에 있었던 서원이다.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노론의 중신이자 학자로 활동하던 도암(陶菴) 이재(李縡)[1680~1746]는 만년에 고향인 경기도 용인의 선영 아래로 퇴거하여 한천정사(寒泉精舍)를 짓고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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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이루어지는 정치 권력, 즉 공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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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 있는 조선시대 현화사 터. 신갈오거리에서 수지 방면으로 가는 지방도 393호선과 영동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곳에 자리한 ‘용인면허시험장’의 동편 구릉에 위치한다. 유적 주변에는 해발 110~200m 내외의 구릉이 둘러져 있고, 북쪽으로는 영동고속도로와 접한다. 현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현화사지는 대한주택공사가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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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절터. 마북동 구성초등학교 진입로 부근 도로변 빌딩자리에 위치한다. 바로 앞에 역대 용인 지방관들의 송덕비군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 용인현 관아와 인접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용화전(龍華殿)이란 전각에 석불입상이 안치되어 있어, 이를 근거로 이 곳을 용화사지로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문헌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