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669 |
---|---|
한자 | 金永喜 |
영어음역 | Kim Yeonghui |
이칭/별칭 | 석여(錫汝),연농(硏農)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광준 |
조선 후기 용인 거주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석여(錫汝), 호는 연농(硏農)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하여 용인현 수여 남동에서 거주하였다. 집안은 가난하였지만 어버이를 봉양하는데 소홀함이 없이 항상 곁에서 모시고 입에 맞는 음식과 계절에 어울리는 옷을 준비하는 데 온갖 정성을 다하여 용인현에서 이름난 효자였다.
1859년(철종 10)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성균관에 입학하여 수학하던 중 모친상을 당하자 고향집으로 내려와 상을 치렀는데, 슬퍼하고 읍혈하는 것이 예법을 지나칠 정도였다. 장사를 지낸 뒤 모친의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시묘를 하였다. 생강과 계피가 든 음식은 일체 들지 않고 소식(素食)을 하면서 연명하였으며 비바람과 더위, 추위를 가리지 않고 10리가 넘는 곳을 왕복하며 곡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성묘를 마치고 산길을 내려오다가 다리를 헛디뎌 고초를 당하고 탈진해 있을 때 홀연히 한 사람이 나타나 부축하여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고 사라졌는데, 주변 사람들 눈에는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효행에 감복하여 도와준 까닭이라 하였다.
1891년(고종 28)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추증하고 정문을 하사하였다. 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