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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488
한자 龍駒縣
영어음역 Yonggu-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고려초 또는 940년(태조 23)
시행연도/일시 고려초 또는 940년(태조 23)
폐지연도/일시 1413년(태종 13)연표보기

[정의]

고려 초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고려 건국 초기에는 지방에 수령이 파견되지 못하고 호족들에게 일임되고 있었는데, 성종 때 지방관의 설치를 보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지방에 외관을 파견한 것은 983년 12목의 설치를 시초로 하였다. 그 뒤 몇 차례의 개폐를 거듭하다가 1018년 지방 제도가 일단락되었다. 용구현(龍駒縣)은 고려 건국 초기에 지방 제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용인 지역에 설치되었다.

[관련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18세기 중엽)·『여지도서(輿地圖書)』·『대동지지(大東地志)』·『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1871)·『용인군지(龍仁郡誌)』(1899) 등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

고구려 때는 구성현(駒城縣) 또는 멸오(滅烏)라고 부르고, 신라 경덕왕 때는 거서현(巨黍縣)으로 개칭되어 한주(漢州)의 영현에 속해 있다가 고려 초 용구현으로 바꿨다. 1018년(현종 9) 지방 제도가 다시 개편되어 4도호·8목·56지주군사(知州郡事)·28진장(鎭將)·20현령이 설치되는데, 이때 용구현은 광주목의 임내로 편입되었다.

처음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못한 속현(屬縣)으로 남아 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監務)가 파견되었으며, 후에 승격되어 현령관(縣令官)이 파견되었다. ‘용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구(駒)’에 대해서는 말[馬]을 뜻하는 의미라는 견해와 ‘거서’의 ‘거’와 함께 ‘크다’라는 의미를 가졌다는 견해가 있다. 1413년(태종 13) 처인현과 합해 용인현으로 고쳐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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