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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서 터키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 1951년 1월 25일을 기점으로 미 제8군사령관 릿지웨이 장군은 UN군이 중공군에 대하여 본격적인 반격 작전을 펴기 위하여 한강을 향해 북진하도록 명령했다. 이른바 선더볼트(Thunderbolt) 작전이었다. 이 작전에 참여했던 터키군이 151고지에서 백병전으로 중공군 474명을 사살하며 고지를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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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 동안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과 식민지 정책에 대한 저항으로 항일 사상이 용인 지역에서 높아져 자주 독립을 바라는 민중들의 바람이 높아졌다. 또한 1919년 1월에 고종 황제가 갑자기 승하하자 일본인들이 독살하였다는 소문이 퍼져 민중들이 분노하였다. 또한 일본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하였고 이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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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있었던 가등농장에서 발생한 소작 쟁의. 1920년대 들어 동양척식주식회사, 가등농장 등 일본 지주 회사들이 용인 지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많은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들은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면서 고율의 소작료 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었다. 1926년 2월 농장측은 일방적으로 수백 명의 소작권 이동을 단행하고, 7월 소작권을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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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 21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에서 일어난 여자기숙사 방화 사건. 성매매 여성들에게 과거 생활을 청산하고 기술을 배우게 해 사회에서 떳떳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목적으로 1960년대부터 도립부녀보호소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들 보호소들은 직업교육을 강조하면서 공공기술학원이라고 명칭을 바꾼 뒤 단속에 걸린 10대 성매매 여성이나 가출 등의 문제를 일으킨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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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경기도 용인 광교산에서 벌어진 청나라 군대와의 전투. 1637년 1월 4일부터 6일까지 전라병사 김준룡이 광교산에서 청나라 장수 양굴리[楊古利]가 이끄는 청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 1636년 12월 1일, 청나라 태종이 조선을 침략하자 인조는 세자와 백관을 대동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이후 인조는 1만 3,000여 명의 군사로 남한산성을 지키도록 하고 도원수·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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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부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실시되었던 양전 사업. 1897년 2월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환궁한 후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추진하여 그 해 8월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쳤으며, 10월 12일 황제 즉위식을 올림으로써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성립되었다. 대한제국 정부는 부국 강병책의 일환으로 이른바 ‘광무 개혁(光武改革)’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토지와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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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과 2002년 경기도 용인 지역에 가축전염병이 발생해 커다란 피해를 입힌 사건. 구제역은 소, 돼지, 양, 염소, 사슴 등 발굽이 둘로 갈라져 있는 동물(우제류)에 감염되는 질병으로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입술, 혀, 잇몸, 코, 발굽 사이에 물집(수포)이 생기며 체온이 급격히 상승하고 식욕이 저하되며 심하게 앓거나 죽을 수 있는 질병이다.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는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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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서 일어난 3·1운동.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용인 지역 3·1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하여 1919년 3월 말부터 4월 초에 걸쳐 발생하였다. 기흥면 시위운동은 3월 30일 김구식(金九植)과 김혁(金爀)이 주도한 시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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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인민군의 남진을 지연하기 위해 벌어진 전투. 한강 방어선을 돌파한 인민군의 일부 부대가 김량장 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하자, 본대와 합류하지 못하고 있던 국군 제8연대 2대대가 급히 투입되었다. 이들은 인민군을 기습하여 김량장에서 축출하는 등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으나, 곧바로 인민군의 반격에 김량장 서쪽으로 이동했다.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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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터키군이 중공군을 축출한 전투. 1951년 1월 25일을 기하여 미 제8군사령관 릿지웨이 장군은 UN군이 중공군에 대하여 본격적인 반격 작전을 펼치도록 하고, 한강을 향해 북진하라고 명령했다. 이 작전이 이른바 선더볼트 작전이다. 1951년 1월의 김량장 전투는 이 작전의 일환으로 터키여단이 중공군 제50군 예하 제49사단 제447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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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 김범문이 용인 지역을 공격하였던 사건. 김범문이 한산주를 공격할 때 한산주의 직할 영현인 거서현이 그 직접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다. 거서현은 지금의 용인 지방으로 비정되고 있으므로 김범문의 난을 당하여 직접적인 전투를 치룬 정병들이 바로 용인 출신의 장정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범문의 할아버지 김주원은 원성왕과의 왕위 계승 경쟁에서 패하여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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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월곡마을에서 일어난 3·1운동.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빠져 있었다. 남사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특히 굴암사 승려들이 배포한 「독립선언문」이 남사면 월곡마을에 전해지면서 시위 운동이 촉발되었다. 1919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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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구 내사면)에서 일어난 3·1운동. 용인 지역 3·1운동은 1919년 3월 말부터 4월 초에 걸쳐 각 지역에서 발생하였다. 내사면에서는 3월 28일 대대리, 3월 29일 남곡리, 4월 2일 송문리에서 각각 시위가 일어났는데, 가장 대표적인 시위는 3월 29일 천주교인들이 주도한 남곡리 시위였다. 1919년 3월 28일 포곡면에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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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택지개발지구 안에 있는 대지산을 사기 위해 주민들과 환경 단체가 벌인 자연 신탁 국민 운동. 정부는 도시 지역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1980년에 주택 건설에 필요한 주택 건설 용지(택지)의 취득과 개발, 공급 등에 관한 특례를 규정하는 「택지개발촉진법」을 제정·시행했다. 1990년대 들어 민간 건설업체들은 서울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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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부터 1258년까지 몽고가 고려를 침략한 전쟁. 13세기 초에 만주와 중국 북부 지방에서 일어난 몽고는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 과정에서 몽고는 고려에도 침략하여 80여 년 동안 고려의 정치를 간섭하였다. 몽고는 1231년부터 1258년까지 계속 고려를 침략하였다. 몽고는 여러 차례에 걸쳐 고려를 공격하였다. 이때 광주를 비롯한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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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민족 자본을 육성하기 위해 벌인 국권 회복 운동. 물산장려운동은 1920년대 민족 자본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려는 취지 하에 조만식, 김동원 등이 평양에서 물산장려회를 조직하면서 촉발되었다. 일제의 수탈 정책 하에 경제적 자립을 꾀하고자 한 이 운동은 국산품 장려 등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1923년에는 전국적 조직체인 물산장려회가 조직되고 각 지방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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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1월 경기도 이천의 백현에서 이천 의병과 일본군 수비대간에 벌어진 전투. 1895년 음력 8월 20일 일본 공사관의 주도로 자행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을 기화로 조선의 각계각층에서 반일 기운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년 11월 15일 단발령이 공포되자 반일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고,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서울에서 가까운 이천에서도 의병이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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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청나라 군대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 1627년(인조 5) 후금(後金)[뒤의 청나라]의 1차 침입 때 조선과 후금은 형제의 맹약을 하고 두 나라 관계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나라 이름을 청(淸)으로 고친 후금은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의 맹약’을 ‘군신(君臣)의 의(義)’로 개조하자고 요청을 해올 뿐 아니라 무리한 세폐와 정병 3만까지 요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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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호동·해곡동의 주민들이 수도권 유류비축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벌인 시민운동. 1970년대에 오일쇼크를 경험했던 정부는 고유가와 유류 소비량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유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한국석유공사는 1990년부터 택지가 아닌 공공 시설 설립이 가능한 경기도 용인시 호동과 해곡동 일원에 250만 배럴 규모의 석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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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경기도 용인의 수룡수리조합 수리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 쟁의. 용인 지역 노동자들은 대부분 실업자이거나 반농 반노동에 종사하는 열악한 처지에 있었으며, 이들은 가혹한 노동, 낮은 임금, 임금 삭감 등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 경제적 처지와 부당한 대우가 수룡수리조합 노동쟁의의 배경이 되었다. 수룡수리조합 수리 공사에 동원된 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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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에서 일어난 3·1운동 시위.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수여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3월 24일 김량장공립보통학교 학생 30여 명이 졸업식 이후 김량장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수여면 주민들의 시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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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에서 일어난 3·1운동 시위.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수지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3월 29일 고기리 구장 이덕균은 동리 주민 100여 명을 규합하여 시위에 나섰다. 시위가 전개되는 동안 동천리 주민 200여 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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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에서 정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사회 교육 운동. 야학 활동은 일제강점기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사설 야학과 관립 야학이 있었다. 관립 야학은 행정 당국이 일본어 보급을 목적으로 공립 보통학교의 부수 사업으로 운영하였다. 사설 야학은 노동자, 농민, 부녀자 등 소외 계층을 위한 농촌 계몽 운동 성격의 교육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용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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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정조 4)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조선 후기인 1780년(정조 4) 수원부 양지현(현재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사는 문덕봉이 김덕희(金德希)와 함께 술에 취해 돌아오는 중에 비틀거리며 쓰러진 김덕희를 무릎으로 쳐서 죽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김덕희의 사인(死因)을 두고 고의인지 과실인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였다. 김덕희 사체에서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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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일대의 소작농들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상대로 일으킨 소작쟁의. 1930년대 초 세계 경제공황의 여파로 인해, 조선에서는 쌀값이 폭락하고 농민의 부채가 가중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1930년대 경기도 용인시의 농민운동 역시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본격화되었다. 1930년대 경기도 용인시의 경작면적은 경기도 전체 면적에 비해 매우 영세한 규모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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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있던 오대양(주)에서 일어났던 집단 자살 사건. 오대양 대표이자 교주인 박순자(朴順子)는 1984년에 공예품 제조업체인 오대양을 설립하고, 종말론을 내세우며 사이비 교주로 행세하였다. 박순자는 자신을 따르던 신도와 자녀들을 집단 시설에 수용하고, 신도들로부터 17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사채를 빌린 뒤 원금을 갚지 않았으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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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왜구가 경기도 용인 인근에 침입한 사건. 우리나라에서 왜구의 침략은 고려 말 약 40년간 제일 심했다. 왜구의 발생은 2차에 걸친 여몽 연합군의 일본 정벌과 일본 국내의 내란으로 몰락한 무사와 농민들이 노예와 미곡을 약탈하면서 생겨났다. 그들은 지방 호족들의 보호와 통제 아래 행동했으며, 근거지는 쓰시마[大馬島]·마쓰오라[松浦]·이키[壹岐] 등이었다. 조운선이나 조창을 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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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구 외사면)에서 일어난 3·1운동.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외사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원삼면 시위운동 참가자 색출을 명목으로 일제가 주민들에 대한 탄압을 가하자 3월 31일 원삼면에서 장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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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정조 7)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김원철이 자기 아내의 묘를 박 여인 시아버지 산에 몰래 썼다. 여러 차례의 송사에서 김원철이 매번 패했으나 묘를 파가지 아니하자 박 여인이 사사로이 파내었다. 이에 김원철이 박 여인을 구타하였는데, 사흘만에 죽었다. 1784년(정조 8) 5월에는 고의적인 살인으로 사형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그 해 김원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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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정조 20)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발생한 강간 사건. 조선 후기 유교 윤리가 보편적으로 되면서 여성의 정절이 강조되었다. 따라서 자발적인 간통만이 아니라 강간 및 강간 미수마저도 정절을 해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강간 미수나 간통했다는 소문만으로도 정절을 잃은 것으로 인식해서 자살하는 예가 많았다. 그리고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여인에 대해서는 정표(旌表)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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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9년(정조 3)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1779년(정조 3) 7월에 정익한이 강대득(姜大得)으로부터 솥을 강제로 빼앗으려다가 구타하여 살해하였다. 몽둥이로 때렸는데 죽었다고 진술하였는데도 결안이 되지 않아 강대득의 동생 강대순(姜大順)이 글을 올려 다시 조사하였다. 강대순의 상언으로 다시 조사한 결과 정익한과 그의 숙부가 공범임이 분명해졌다.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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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정조 20)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두 사람이 함께 한 사람을 구타하여 사망하였는데, 정범(正犯)과 종범(從犯)을 분간할 수 없고, 직접적인 사인은 구타가 아니어서 모두 석방하였다. 살인에 대해서는 사형을 집행하였는데, 인명을 중시하여 살인사건을 신중하게 처리하는 정조대왕의 흠휼사상(欽恤思想)이 배경이다. 살인사건을 증거에 입각하여 합리적으로 처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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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서 일어난 3·1운동.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원삼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2·8독립선언식에 참여하였던 오의선(吳義善)과 교원 양성소에 다니던 이봉현(李鳳鉉) 등이 고향으로 내려와 황경준(黃敬俊), 최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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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구성동(구 읍삼면)에서 일어난 3·1운동.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읍삼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용인 각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되는 가운데 1919년 3월 25일과 30일에 읍삽면에서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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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당시 이동면]에서 일어난 3·1운동.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동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묵리의 굴암사 주지 원공은 서울에서 만세 시위를 직접 목격하고 3월 20일 굴암사로 돌아와 승려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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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에 경기도 용인 지역 의병들이 참가하여 벌어졌던 전투. 1895년(고종 32) 8월 20일 일본 공사관의 주도로 자행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을 기화로 조선의 각계 각층에서 반일 기운이 고조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동년 11월 15일 단발령이 공포되자 반일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하락(金河洛)은 1895년 11월 17일, 이천에서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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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경기도 용인 지역에 일어났던 의병 항쟁. 일본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자 이를 계기로 청일전쟁을 도발하면서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갑오개혁을 추진하면서 내정간섭을 감행하는 양면 전략으로 한국 침략을 강화하였다. 즉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서 침략을 강화하자 극동에 진출해 있던 러시아를 비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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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조약을 계기로 경기도 용인 지역에 일어났던 의병 항쟁. 1904년 2월, 일본은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한일의정서를 강제 체결시켰으며, 5월 말에는 제1차 한일협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1905년 들어 일본은 청과의 봉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한국의 식민지화를 노골화시켜 11월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한국에 파견하여 을사조약을 체결하였다. 을사조약은 한국의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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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년 12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 처인성에서 처인부곡민과 몽고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1231년 몽고의 1차 침입 이후 고려 정부는 1232년 6~7월에 강화로 천도하였다. 몽고는 기존의 화약을 파기한 책임을 물어 1232년 10월 2차 침입을 감행하였다. 몽고의 2차 침입은 고려 정부의 천도가 몽고와의 대결을 전제로 했다는 점이 명백해진 상태에서의 군사적인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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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경기도 용인시와 성남시 간에 도로로 인해 발생한 분쟁. 2003년 3월에 용인시 수지구와 경기도 성남시 금곡 나들목 1.6㎞ 구간에 버스 전용 차로가 설치되었다. 버스전용차로제가 시행된 지 이틀이 지나면서 교통정체가 심화되었다. 그러자 경기도 성남시가 분당~수서 간 고속화도로에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일양약품 앞 국지도 23호선으로 통하는 일방통행로(일명 토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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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실시된 일제의 토지 소유권 조사사업. 일제는 러일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조선의 식민지화를 추진하면서 1906년 「토지가옥증명규칙」, 1908년 「토지가옥소유권 증명규칙」 제정 등 토지 침탈을 위한 각종 제도적 정비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만으로는 완전한 의미의 토지 소유권을 보장하고 토지를 상품화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소유권을 보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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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구 포곡면)에서 일어난 3·1운동.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포곡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3월 28일 모현면[현 모현읍] 초부리의 시위가 포곡면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이에 삼계리의 권종묵은 주민 200여 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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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용구현(현 용인시) 금령역에 원나라의 합단이 그 무리를 이끌고 침입한 사건. 합단은 1287년(충렬왕 13) 원나라 세조(世祖) 때 반란을 일으켰던 내안(內顔)의 무리에 속한 부장이었다. 1290년(충렬왕 16)에 만주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켜 원나라 장수 내만대(乃萬帶)에게 패배한 합단은 무리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고려 동북면에 침입하였다. 하지만 고려는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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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1월 2일 경기도 용인에서 충청도 근왕군이 남한산성을 에워싼 청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벌인 전투. 1636년 12월 13일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조선 조정은 강화도-한성-남한산성을 중심으로 거점 방어를 하여 청군을 격퇴할 것을 구상하고, 이 거점들의 방어 태세를 정비하는 한편, 각도 첨사·병사에게 근왕(勤王)을 명령하였다. 그런 다음 비빈(妃嬪)·왕자·종실 및 백관(百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