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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양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509
한자 光武量田
영어음역 Gwangmu Yangjeon
영어의미역 Gwangmu Land Survey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기도 용인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도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토지개혁
발생(시작)연도/일시 1899년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02년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경기도 용인시
관련인물/단체 이종대|원직상|김기종

[정의]

1899년부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실시되었던 양전 사업.

[역사적 배경]

1897년 2월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환궁한 후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추진하여 그 해 8월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쳤으며, 10월 12일 황제 즉위식을 올림으로써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성립되었다.

대한제국 정부는 부국 강병책의 일환으로 이른바 ‘광무 개혁(光武改革)’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토지와 농업 문제에 개혁의 주안점을 두고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결(田結)을 정확히 파악하여야만 했다.

[경과]

광무양전은 경기 지역에서 용인군이 가장 먼저 시행되었는데, 우선 1899년 11월부터 12월경까지 2개월여 동안 16개 면에 걸쳐 실시되었다. 경기도 양무감리 이종대의 지휘 하에 이상호(李商鎬), 김기종(金基宗) 등 세 명의 양무위원을 중심으로 양전을 실시하였다. 용인군의 양전 사업은 1901년 10월에 사업이 끝났고 지계 발급 사업을 전담하게 될 지계아문이 1902년 3월 설립되었다.

[결과]

용인 지역 양전 사업의 결과 전답의 실적은 8,311만 척에 이르렀다. 또한 면적 대비 전답의 비중은 55대 45로 논의 비중이 높았다. 결부수에 있어서도 논이 61%를 차지해서 논이 밭보다 많을 뿐만 아니라 토지 생산성이 높게 평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각 면내의 토지 상태에 대한 조사를 살펴보면 종래 파악되지 않았던 진전에 대한 추가 조사와 기존의 경지에 대한 진전 부분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결수 감소를 위한 조치로 전품의 등급을 조정하였다. 이러한 방법들을 통하여 전반적으로 결수를 축소시켰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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