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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업의 산 역사 변태동 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C04000103
영어음역 Yangjoeobui San Yeoksa Byeon Taedong ssi
영어의미역 Byeon Taedong, the Living History of the Brewery Business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순석

현재 백암양조장의 생산기술자인 변태동(71세) 씨는 50년 가까이 양조기술자로 일해 왔다. 군대 제대 후 원래 운전기사로 사회 첫발을 내딛었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신당동에 있던 명성소주에서 양조기술을 배웠다. 이것이 평생 그로 하여금 술과 함께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소주는 원래 증류식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1960년대 중반에 증류식 소주 제조를 금지하여 고구마로 만든 주정에 물을 타는 희석식으로 만들다 보니 초기에는 인기가 시들었다.

그 후 대구소주공장으로 옮겨 경상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밀가루 술을 개척했다. 당시 정부에서 쌀 막걸리를 금지하자 밀가루로 막걸리를 제조하여야 했다. 이 당시 밀가루 막걸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북부 수도권 지역에서는 임명준, 호남에서는 양옥규, 그리고 변태동 세 사람밖에 되질 않았다. 그러다보니 도처에서 제조 비법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였다. 각 지역의 양조장에 가서 술밥만 쪄줘도 당시로는 꽤 많은 2만원 정도의 사례금을 받았다. 그 후 양조약품을 만드는 동서화학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전국을 순회하며 기술자문을 해주는 일을 계속했다. 그때 백암양조장에 와서 김명환 사장을 만났다.

어느 정도 자금을 모은 변씨는 15년 전 쯤 포천의 관인양조장을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초기에는 부진하였지만 점차 판매가 늘어 한때는 500말(1말은 20ℓ) 정도를 팔 정도로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이동막걸리와 상표권 분쟁이 일자 매각하였다. 다시 영종도에서 4년간 양조장을 운영하며 인천 지역에 판매하였다.

그 후 약주공장에서 잠시 기술자로 일하다가 쉬던 중 성남합동양조장에서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다시 양조 기사를 하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의 백암양조장에서 일하게 계기이다. 변씨는 현재 70이 넘은 나이로 종국 기술자로 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하면서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계속 일하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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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양조장 변태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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