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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명현 4인과의 인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B03000202
영어음역 Gimyomyeonghyeon Saingwaui Inyeon
영어의미역 Friendship of Four Officials Involved in Purge of 1519
지역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기와집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선영

조선 중기 기묘사화의 핵심 인물인 음애 이자와 그의 정치적 인생에 영향을 주었던 조광조가 언제 만났는지 분명치가 않다. 다만 기묘사화가 훨씬 지난 뒤 조광조의 일족이며 함께 친하게 지냈던 조광좌(趙光佐)의 아들인 조항(趙沆)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들의 인연을 알 수 있다. 그들이 함께 용인의 음애 선산 부근에 사은정을 세웠던 옛 일과 관련해 보면, 조광조음애의 분산(墳山)이 같은 용인에 있고 조광좌·조광보 형제의 논밭이 또한 용인에 있어서 “서울에 있으면 만나지 않는 날이 없고, 용인으로 내려오면 함께 두암(斗巖)에서 천렵(川獵)하며, 심곡(深谷)에서 나물 뜯고 방동(方洞)에서 꽃구경하면서 절마교익(切磨交益)했다.” 라고 한 것을 보면, 용인의 같은 지역을 연고로 하여 서로 알고 친하게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들의 인연이 중종 10년 조광조의 출사와 개혁정치의 추진에서 두 사람 사이에 공고한 결속을 가져오게 하는 원천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음애는 “지치주의(至治主義)적 도학정치(道學政治)의 구현을 위해 지동도합(志同道合)했다”는 표현대로 음애에게는 굳게 결속한 정치적 동지가 바로 조광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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