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40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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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健泳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종구 |
출생 시기/일시 | 1879년 8월 1일 - 오건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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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서품 시기/일시 | 1917년 - 장로 취임 |
몰년 시기/일시 | 1937년 7월 13일 - 오건영 졸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30년 - 강원도 철원군 김화면 죽대리로 이주. |
출생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 아리실 |
성격 | 종교인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아리실교회 장로 |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있는 아리실교회의 초대 장로.
[개설]
아리실교회는 1895년 오인선(吳鄰善), 서광석(徐光錫)에 의해 설립된 교회로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교회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교회이다. 오건영 장로는 교회 설립에 공헌한 오인선의 맏아들이다. 20세기 초 지역민의 생활이 어렵고, 기독교 전파가 어려운 전통사회에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이끌어 오늘날 아리실교회가 있도록 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오건영은 1917년 아리실교회의 장로로 취임하여 교회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운영했으며, 성전건축에 크게 기여하였다. 오건영은 ‘축귀(逐鬼)[잡귀를 쫓음]의 은사(恩賜)[하나님이 준 재능]’가 있어 신병(神病)을 앓는 이들의 치료를 잘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남사 인근에 널리 알려져서 많은 이들을 치료하였고 기독교 전파에도 기여하였다. 그리고 노회가 열릴 때 아리실교회 현황과 과제를 노회에 알리며 교회 발전 방향을 강구하여, 오늘날 아리실교회가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였다. 특히 교회 내의 성경학교뿐만 아니라 한글과 산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운영하여 남사 지역에서 최초로 근대교육을 실시하였다.
[사상과 저술]
아리실교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아리실교회 당회록』이 남아 있다.
[묘소]
오건영의 묘소는 강원도 김화군 지역으로 휴전선 북방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