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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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孟政丞-公問公答 |
영어음역 | Maeng Jeongseunggwaui Gongmun Gongdap |
영어의미역 | Qusstions and Answers with Prime Minister Maeng |
이칭/별칭 | 「맹사성과 공당문답」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
집필자 | 정혜경 |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맹정승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81년에 채록되어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실려 있다.
[내용]
세종 때의 명재상 맹사성은 지극히 청렴하고 고결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맹정승은 고향인 온양에서 한양까지 종자도 거느리지 않고 늘 검은소를 타고 다녔다. 맹정승은 한양으로 갈 때면 성환 근처에서 하루를 묵고, 진위현을 거쳐 용인현에서 하루를 더 묵은 후에 한양으로 올라갔다. 어느 날, 맹정승이 온양에 내려가서 성묘를 마치고 한양으로 가는 길이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 용인현에 이르러 객주를 찾았다.
웬만한 벼슬아치 같으면 현감을 찾아가 노독을 풀겠지만 맹정승은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객주를 찾았으나, 한양이 가깝고 과거철이라 빈방이 없었다. 이때 객주집 주인이 상방(특실)에 혼자 자리를 잡고 있는 젊은 선비에게 양해를 구하여 합숙을 하게 되었다. 맹정승이 방안에 들어서자 먼저 자리를 잡은 마흔 살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드러누워 고개를 삐쭉 들고 행색이 꾀죄죄한 맹정승을 보더니만 도로 벌렁 누웠다.
맹정승은 불편을 끼치게 되어 미안하다면서 먼저 인사를 하였다. 젊은 선비는 그제야 일어나 앉으면서 “영감두 한양에 가는 길이오?” 하고 물었다. 젊은 선비는 자기가 묵고 있는 상방에 초라한 늙은이가 동숙을 청하는 꼴이 은근히 비위에 거슬렸던지, “무료하게 서로 얼굴만 마주 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야기나 합시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노인에게 일일이 공대하는 것도 귀찮다는 듯이 말끝에 ‘공’이나 ‘당’자를 붙이자는 것이었다.
“노인장은 어디 사는공?”
“온양 산당.”
“온양 사는 양반이 한양에는 왜 가는공?”
“볼 일 있어 간당. 젊은이는 어디 사는공?”
“영남 산당.”
“한양 가는공?”
“그렇당.” “한양에는 뭐 하러 가는공?”
“녹사하러 간당.”
“녹사? 내가 시켜 줄공?”
“에이, 그러지 못할 거당.”
이렇듯 이야기가 오고갔는데, 녹사란 대개 관청이나 지체 높은 양반 댁 서사나 책사 따위를 이르는 직책이다. 젊은 선비 생각에, 자신의 지위 정도로 벼슬을 하러 간다면 의당 기가 죽어야 하는데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노인이 내심 괘씸했다. 그뿐인가? 한술 더 떠, 녹사 따위는 아예 흥미가 없는지 퍼더퍼덕 이불을 펴더니 “나 먼저 잔당.” 하고 벌렁 드러누워 코를 골고 잤다.
이튿날 맹정승과 젊은 선비는 한 상에서 아침을 먹고 각기 헤어져 한양을 향해 길을 떠났다. 영남의 젊은 선비는 조정 어느 참판의 추천을 받아 영상 댁 녹사자리를 얻게 되어 있었다. 한편, 한양 집으로 돌아온 맹정승은 영남의 아무개가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고 곧 그를 들이도록 하였다. 맹정승이 가만히 보니 용인의 객주에서 만난 그 친구였다. 문안을 드리는 젊은 선비에게 “나를 알아보겠는공?” 하고 묻자, 젊은 선비가 고개를 들고 한동안 쳐다보더니 사색이 되어 “죽여 주당.” 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맹정승은 웃으면서 전날 용인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위 사람들은 웃고 젊은 선비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러나 맹정승은 그를 채용하여 녹사의 직임을 주었고, 젊은 선비는 가장 충직한 일꾼이 되었다. 맹정승이 묵던 객주는 구흥역으로, 지금의 신갈리에 해당한다.
[모티프 분석]
「맹정승과의 공문공답」은 말장난, 즉 언어 유희에 해당한다. 영남의 젊은 선비가 맹정승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장난을 했음에도 그를 채용했다는 일화로 맹정승의 인품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동일한 이야기가 1942년 경성부 통인동에서 채록된 적이 있는데, 두 설화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나, 문답을 주고받는 경위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용인 채록본에서는 선비가 객기를 부리는 차원에서 공당문답을 시작한다면 경성부 채록본에서는 선비가 심심해서 공당문답을 시작한다.
즉 누가 먼저 도착해 자리를 선점했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용인 채록본에서는 영남 선비가 용인에 먼저 도착해 상방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맹사성이 함께 머물게 되자 이를 못마땅히 여긴 결과로 객기를 부렸다면 경성부 채록본에서는 맹사성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선비가 객기를 부릴 이유는 없었다. 다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선비가 맹사성에게 말을 건넸고, 맹사성의 모습이 촌부와 같았으므로 존대와 하대 사이에 해당하는 말로 ‘공’을 선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