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827 |
---|---|
한자 | 書院 |
영어음역 | Seowon |
영어의미역 | Confucian Academy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윤식 |
[정의]
조선 중기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과 교육을 위하여 설립된 경기도 용인 지역의 사설 교육 기관.
[개설]
우리나라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후기의 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것이 그 효시이다. 조선의 서원은 성립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기능과 성격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즉 중국의 서원이 관인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의 성격을 고수하였다면, 조선의 서원은 사림의 장수처(藏修處)이면서 동시에 향촌 사림의 취회소(聚會所)로서 정치적·사회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조선 후기의 서원은 지방 유림의 협조와 국가의 혜택을 받으며 발전을 거듭하였으나 선현 존중과 교육보다는 당쟁의 근원지로 변모하였다. 이에 1868년과 1871년 두 차례에 걸친 서원철폐령으로 8백여 곳의 서원 중 47곳만 남게 되고, 나머지는 훼철되었다. 당시 용인 지역에는 심곡서원과 충렬서원, 한천서원 등이 있었으나 심곡서원만 남고 나머지는 훼철되었다. 그후 충렬서원은 1911년 유림의 탄원으로 복원이 허락되어 오늘에 이르나 한천서원은 결국 복원되지 못했다.
[현황]
용인시에는 현재 충렬서원(忠烈書院)과 심곡서원(深谷書院), 충현서원(忠賢書院) 등이 있다.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충렬서원은 정몽주(鄭夢周)·이시직(李時稷)·정보(鄭保)를 배향하고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으로서 1576년(선조 9년)에 초창되었고, 1609년에 사액되었다.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심곡서원은 1650년(효종 1년)에 설립하여 같은 해 사액되었는데, 조광조(趙光祖)와 양팽손(梁彭孫)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충렬서원은 1871년 서원 철폐시 1인 1서원 원칙에 따라 정몽주를 모신 서원으로는 개성의 숭양서원(崧陽書院)만 남고 이곳은 훼철되었으나, 그후 유림의 탄원으로 1911년 복원이 허락되어 1920년대에 복원이 완료되었다. 이동읍 천리에 있던 한천서원의 경우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었으나 1868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이래 아직 복원되지 않고 있다. 주민들에 의하면 당시 이재의 묘소 입구에 정자를 짓고 글을 가르쳤다 하여 이곳을 독서대라 부른다고 한다.
기흥구 보라동의 한국민속촌 내에 있는 충현서원은 관광객을 위해 최근에 설립된 서원으로, 정몽주·민영환(閔泳煥)·오달제(吳達濟)·김석진의 위패를 모셔 놓고 춘추향사를 올리어 관광객들에게 우리의 전통 유교문화를 알리고 있다. 1920년대 초 심곡서원에서 공부한 이원창(李原昌)[1914~2006]의 증언에 의하면, 교과목은 일본어와 한문이었으며, 학생수는 15~16명 정도였고, 등록금은 무료였다고 한다. 현재 용인 지역의 서원들은 춘추 향사를 올리며 전통문화 계승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