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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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士威 |
영어음역 | Choe Saw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변은숙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개설]
최사위(崔士威)[1361~1450]는 고려 말기의 혼란기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는 아버지 최유경(崔有慶)을 따랐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이성계의 개국을 도와 개국원종공신이 되면서, 최사위도 자연스레 조선에서 벼슬을 하게 되었다. 최사위는 조선 전기 태종과 세종 대에 활약하였는데, 주로 군사와 관련한 일을 잘해서 국방을 방비하는 데 힘썼다. 만년에는 벼슬에서 물러나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에서 여생을 보내며, 국왕의 외척으로서 분수를 지키고 처신을 잘했다.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부는 선부전서 최득평(崔得枰)이고, 할아버지는 전리판서 문정공(文貞公) 최재(崔宰)이다. 아버지는 참찬의정부사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이며, 어머니는 시중 이숭(李崇)의 딸이다. 최사의(崔士儀)·최사규(崔士規)·최사강(崔士康)·최사용(崔士庸)·최사흥(崔士興)이 모두 동생들이다.
[활동사항]
최사위는 고려 말기에 관직이 중랑장에 이르렀지만, 조선이 개국되는 와중에 잠시 낙향하였다. 그러다가 1393년(태조 2)에 다시 벼슬길에 나아가 도관좌랑·사헌부지평·사간원좌윤·병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404년(태종 4)에 안변부사 조사의(趙思義)가 난을 일으키자 이순(李淳)·김우(金宇) 등과 함께 평정하였다.
곧이어 황해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이때에 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군사훈련을 잘하여 관대(冠帶) 일령(一領)을 하사받았다. 다음해에는 우군동지총제사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24년(세종 6)에 북쪽 변방을 오랑캐가 침략하자 김계지(金繼之)와 함께 물리쳤으며, 이 공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에 봉해졌다. 이후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