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879
한자 李䎘
영어음역 Lee Suk
이칭/별칭 중우,일휴정,충헌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안장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626년연표보기
몰년 1688년연표보기
본관 우봉
대표관직 우의정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중우(仲羽), 호는 일휴정(逸休亭). 관찰사 이지신(李之信)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승지(承旨)에 추증된 이할(李劼)이다. 아버지는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이며, 어머니는 윤홍유(尹弘裕)의 딸이다. 부인은 박호(朴濠)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숙(李䎘)[1626~1688]은 인조 대부터 효종, 현종, 숙종의 4대 35년간 활동하였으며 송시열(宋時烈)에게 글을 배웠다. 11세의 어린 나이에 병자호란을 맞아 심양에 잡혀가기도 했으나 회은군(懷恩君) 이덕인(李德仁)의 주선으로 풀려났다.

1648년(인조 26)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1655년(효종 6)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병과로 급제한 뒤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 등을 거쳐 1667년(현종 8)에는 집의(執義)가 되었다.

이때 청나라에서 도피해 온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는 것에 대해 조선에 책임을 물어 영의정 정태화(鄭太和), 좌의정 홍명하(洪命夏), 진주사(陳奏使) 허적(許積) 등을 처벌하려 하자 이들은 그 허물을 임금에게 돌리려 하였다. 이에 이숙은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가 죽음으로 맞서야 한다고 이들을 꾸짖었다. 그리하여 김징(金澄) 등 7인과 함께 8간신(諫臣)으로 일컬어졌다.

1669년(현종 10) 광주부윤(廣州府尹)을 거쳐 1672년(현종 13)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를 지내고, 1675년(숙종 1) 서인(西人)의 실각으로 한때 물러났으나 곧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되었다. 1687년(숙종 13) 우의정에 올랐으며, 이듬해에 죽음을 앞두고 임금에게 차자(箚子)를 올려 간언하여 시간(屍諫)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헌(忠獻)이며,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상덕사(尙德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5.15 행정지명 현행화 이동면에서 이동읍으로 변경 사실 반영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