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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388
한자 豪族
영어음역 Hojok
영어의미역 Local Gentr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용인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집필자 김대중

[정의]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존재한 지방 세력.

[개설]

신라 하대에 진골 귀족 내부의 정쟁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지방에서는 호족이라는 새로운 사회세력이 독자적 세력으로 대두하였다. 호족은 성주(城主) 또는 장군(將軍)으로 자칭하면서 지방 사회를 통치하였으며, 중앙의 정치 기구를 모방한 독자적인 지배 기구인 관반제(官班制)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신라 사회의 변동과 붕괴에 결정적 역할을 한 새로운 사회세력으로서 고려 건국의 기반이 되었다. 호족은 발생 조건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중앙에서 몰락한 귀족들이 낙향한 경우, 군진세력(軍陣勢力)이 성장한 경우, 상업세력에서 성장한 경우, 촌주 출신의 경우, 군도세력(群盜勢力)의 경우가 있다.

중앙에서 몰락한 귀족들이 낙향한 경우는 김순식(金順式)[뒤에 왕순식으로 바꿈]으로 대표되는 강릉김씨가 대표적이다. 강릉김씨의 선대는 김주원(金周元)으로 그는 김양상(金良相)[선덕왕]과 왕위쟁탈전에서 밀려나 명주로 낙향하여 일정한 세력 기반을 다졌다. 군진세력이 성장한 경우는 견훤(甄萱)이 대표적이다. 그는 신라의 군관으로 서남부 지방의 장수였으나 군사력을 배경으로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상업세력에서 성장한 경우는 왕건(王建)이 대표적이다. 그의 가문은 상당히 오랜 기간 해상 무역에 종사하면서 부를 축적하여 이를 근거로 송악 일대에서 호족으로 성장하였다.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각 지방의 호족들의 지원과 지지를 받아내고 세력을 형성하여 고려를 건국하였다. 촌주 출신의 경우는 대체로 소호족이 해당된다. 촌주들은 자연촌을 장악하는 혈연적인 수장과 유사한 성격이었으나 중앙 정부로부터 가렴주구(苛斂誅求)가 심해지자 스스로 무장하여 촌을 단위로 독립해 나갔다. 군도세력의 경우는 궁예(弓裔)가 대표적이다. 그는 왕실에서 태어났으나 출생과 동시에 버림을 받아 떠돌이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유랑의 무리들을 규합하여 점차 일정한 세력을 키워 태봉(泰封)을 건국하였다.

[고려 건국과 용인의 호족]

고려의 건국 과정에서 왕건이 용인 지역과 연계된 것은 898년의 정벌 때로 추정된다. 왕건은 정기대감(精騎大監)으로 임명되어 양주와 견주를 정벌하였고, 900년에 광주·충주·당성·청주 등을 평정하였다. 용인은 이 네 지역 가운데 광주에 속하여 경략 대상에 포함되면서 태봉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보인다.

나말여초에 호족간 세력의 대소에 따라 주속관계가 이루어지면서 지방 지배가 실현되는 과정에서 용인의 호족들은 반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은 주변 지역에 대호족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세력을 크게 확장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용인의 동남 지역은 옛 죽산현 지역으로 신라 말 기훤(箕萱)이 초적들의 봉기를 주도하고, 그 뒤 박기오(朴奇悟) 등의 호족이 활발히 활동했던 곳이다. 왕건의 고려 건국 후 용인 지역의 호족은 태조에게 충성할 것을 전제로 군신 관계를 맺고 관계(官階)를 받아 고려의 지배 질서에 포함되었다.

[후삼국 통일과 용인의 호족]

용인의 호족은 후백제와의 전투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태조 19년(936) 고려의 후백제 정벌군이 출동할 때 용인은 남정로(南征路)의 주변에 위치해 있었다. 이때 전선(戰線)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용인의 호족은 군량(軍糧)이나 군기(軍器)의 제공 등 군수적 측면에서 지원하여 후삼국 통일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공으로 후삼국을 통일한 후 실시된 논공행상에서 용인의 호족도 여러 가지 혜택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태조 23년(940)에 지방 지배 확립을 목적으로 각 지역의 호족들을 대상으로 토성(土姓)을 분정(分定)하였다. 이때 토성 분정 대상과 삼한공신이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면, 용구현의 토성 진(秦)·이(李)·송(宋)·용(龍)·엄(嚴)씨와 죽주(竹州)의 토성 박·최·안·양(梁)·이·유(庾)·민·김·음(陰)씨 등이 해당될 것이다. 이름이 알려진 인물은 용구현용인이씨 시조인 이길권(李吉卷)과 죽산의 박기오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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