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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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風水地理 |
영어음역 | Pungsu Jiri |
영어의미역 | Feng Shu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연학 |
[정의]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경기도 용인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개설]
풍수는 풍수사상·풍수지리·풍수설·풍수도참설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풍수사상은 이를 논리 정연한 학문적 체계로 이해하는 태도이고, 풍수지리는 땅에 대한 이치를 분석·평가하는 과학으로 보는 견해이다.
풍수설은 문화적 현상 내지 민간의 풍속으로 보는 견해이고, 풍수도참설은 앞으로 다가올 길흉을 점치는 비과학적 술법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풍수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삼아 땅의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바람과 물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다.
즉, 바람을 가두고[藏風], 물을 얻을 수 있는 곳[得水]이 가장 기(氣)가 왕성한 곳으로 본다. 풍수라는 단어는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비롯된 것이며, 장풍득수라는 말은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말과 통한다.
풍수에서 기가 모여 있는 터를 찾는 방법으로는 간용법(看龍法)·장풍법(藏風法)·득수법(得水法)·정혈법(定穴法)·좌향론(坐向論)·형국론(形局論) 등이 있다.
풍수는 땅의 질서와 이치를 유기체적인 원리로 사유하고 이해하는 전통적 지혜로서, 한국의 취락 입지 및 조경, 공간 배치와 구성, 건축 등에 널리 활용되었다. 풍수의 이상적 공간인 명당이란 자연적인 거주의 최적지이자, 생기가 집중된 곳으로 예부터 용인은 산수가 좋아 곳곳이 명당이라고 알려져왔다. 풍수는 고을과 마을의 입지, 마을의 공간 구성 등에 적용되었다.
[양택과 형국]
풍수는 집 터에 관한 양택(陽宅)풍수와 마을과 도읍지에 관한 양기(陽氣)풍수, 그리고 무덤 자리에 관한 음택(陰宅)풍수로 나눌 수 있다. 양택풍수는 형국론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형국은 동물형·식물형·물질형·문자형·인물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중 동물형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 다음은 물질형, 인물형, 식물형, 문자형 순서이다. 동물형 가운데 가장 많이 나타나는 동물은 용·소·말·닭·봉황·범 등이며, 물질형은 반달·배·등잔·금소반, 인물형은 옥녀·장군·신선, 식물형은 매화·연꽃, 문자형은 야(也)·내(乃)자이다.
이들 형국은 우리 주위에서 많이 듣거나 실질적으로 보는 것으로,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집 터나 마을 터에 형국이 있다고 해서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이들 형국은 우리네 일상생활과 마찬가지로 좋고, 나쁨이 엇갈리는 하나의 포물선을 그린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형국 중에는 순환적인 특징을 가진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서 반달형·배형·키형·삼태기형·조리형 등을 들 수 있다. 반달형은 달이 커가는 상태에서는 가문이나 마을이 융성해가지만, 만월이 되어 달이 작아지는 상태에서는 가문이 쇠퇴해지고, 반월이 되어서야 다시 본래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배형의 경우는 배에 재물을 가득 채우는 단계까지는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배에 재물이 가득 차면 배가 가라앉기 때문에 이 터에 살고 있는 부자들은 이곳을 떠나야 재앙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행위는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조리형은 쌀을 이는 도구로, 쌀을 일 때 쌓이는 쌀은 재물의 증가를 상징하지만, 조리에 가득 찬 쌀을 털어내는 일은 재산과 가문의 쇠퇴를 의미한다.
그래서 한 세대는 잘 살고, 한 세대는 못 살게 된다. 키형과 삼태기형도 곡물을 채울 때는 잘 살게 되지만, 그 안에 채워진 것을 덜어낼 때는 가난하게 된다. 위와 같이 한 세대가 번갈아 가면서 흥망성쇠가 찾아온다.
둘째, 하나의 형국이라고 하더라도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소·말·개와 같은 동물형의 경우 배에 해당하는 터는 좋은 반면,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 집을 짓는 것은 좋지 않게 여긴다.
배는 음식물이 가득한 곳으로 풍요를 나타내고, 배의 부분 중에도 젖가슴 부분을 으뜸으로 친다. 동물의 꼬리는 항상 흔들듯이 재물이 떨어져 나간다고 여겨 좋지 않게 여긴다.
닭형의 경우는 볏에 해당하는 부분에 집을 지으면 후손이 관직에 오른다고 여기며, 게형의 양쪽 발에 집을 지으면 재물을 잡는 형국이라 좋다고 여긴다. 키나 삼태기형의 경우에는 안쪽에 터를 잡는 것이 부자가 된다고 한다. 그들 물건들이 안쪽이 깊고, 바깥쪽은 얕기 때문이다.
셋째, 좋은 터는 영원하지 않다. 땅의 생기가 끝나면 그 터는 쇠퇴하여,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 도성의 천도설이 나오는 것이나 새로운 집터를 미리 장만해두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네째, 한 마을에는 서로 상극되는 형국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하나의 형국이 지나치게 강하면 오히려 마을이나 집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지역 중 어느 마을에 지네형[蜈蚣形]이 있으면 이와 천적 관계라고 할 수 있는 닭형이 있기 마련이다.
다섯째, 많은 형국들은 자체 내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네의 많은 발과 금가락지는 부자, 매화의 열매는 다산과 풍요, 붓형·필통형과 야(也)자 터는 학자나 문장가, 띠형과 품(品)자형에서는 관직, 신선형에서는 태평성대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용인 지역도 마을마다 각기 다른 형국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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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의 지명과 형국
[형국과 비보]
좋은 형국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특별한 장치를 해둔다. 예를 들어 목마른 소[喝牛]나 말[喝馬]형, 용형, 지네형 등에서는 일부로 연못을 판다. 목마른 소나 말이기에 연못이 없으면 달아날 것이고, 용 또한 물에 사는 동물이고 지네는 습지에 사는 동물인지라 못이 필요하다.
이와는 반대로 배형[行舟形]에서는 못을 파는 것은 배에 구멍을 내는 것으로 인식되기에 함부로 우물을 팔 수 없다. 배 형국의 마을이나 집에 우물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복이 도망갈 것에 대비해 소나 말과 같은 동물에게는 구유나 고삐목이라 하여 동물 머리 쪽에 땅을 파거나 나무를 심어두기도 한다.
이와 같은 원리로 삼태기나 키 형국의 마을에서는 바람에 이것들이 날아가지 말라고 나무를 일렬로 심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 형국은 멀리서 바라보면 숲에 마을이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장군형에는 사람의 왕래가 많은 시장이나 학교 등을 세운다. 장군이기에 호령할 많은 부하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용인의 비보(裨補) 기능은 여러 군데에서 보인다. 비보란 철학적으로 인간이 자연환경과 상생·조화 관계를 맺으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풍수이자, 자연과 인간이 이루는 유기적 통합생명의 상호조절 원리이다.
즉, 풍수적으로 결한 곳을 보(補)하여 길국을 형성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비보 형태는 사탑·숲·조산·장승·못 비보 등으로 구분되는데, 비보사탑으로는 용덕사(龍德寺) 불상, 구성면 마북리 석상, 원삼면 미평리 약사여래입상, 원삼면 문촌리 문시랑 미륵석불 등을 들 수 있다.
비보숲은 풍수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하여 인공적으로 조성한 숲으로, 구성면 마북리 치소 서편의 느티나무숲, 구성면 마북리 하늘말마을 좌우 숲, 구성면 보정리 이현의 오리나무와 독정의 참나무, 모현읍 초부리 상부곡의 느티나무, 양지면 식금리 심근솔의 소나무, 양지리 등촌의 등나무, 양지면 주북리의 버드나무, 원삼면 맹리의 느티나무, 이동읍 서리의 느티나무와 참나무, 이동읍 천리 노루실의 느티나무 등은 대표적인 비보숲이다.
용인시의 비보는 명칭에서도 나타난다. 용인시 운학동의 ‘운(雲)’자는 마을 주산의 맥이 발원하는 형제봉(兄弟峯)이 용의 형세를 하고 있어, 용은 구름을 얻어야 승천하기에 상응되게 한 것이다.
남사면 무봉리와 오목동은 봉(鳳)이 오동나무의 열매를 따먹어 오래 남기를 바라는 의미이고, 남사면 통곡에서는 소 형국에 필요한 구유를 마을지명으로 사용하였다. 양지면의 등촌은 마을 뒷산에 보이는 바위가 여근 모양이라 가리기 위해 등나무를 심은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용인 지역의 많은 삼태기 형국 지역에서는 마을 앞에 소나무 등을 심어 삼태기가 바람에 날아가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였다.
[음택]
용인을 가리켜 ‘사거용인(死去龍仁)’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용인은 산이 많고 산세가 수려하여 명당이 많으며, 그래서 음택지(陰宅地)로 적당한 고장으로 지목되어왔다. 이러한 연유에는 용인 지역의 음택풍수적(陰宅風水的)인 조건이 탁월하다는 지형지세의 요인 외에도 조선시대 한양과의 지리적 근접성 및 양호한 교통 여건이 역사적인 배경을 이루었을 것이다.
실제 용인 지역에는 역사적으로 210여 기가 넘는 유명한 인물들의 분묘가 상당수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또한 실측 조사된 바 있다. 그런데 이들 분묘는 모두 반가(班家)에 해당하고 일반 서민의 민묘(民墓)는 제외된 실정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분묘의 입지 및 분포 특징의 규명은 조선시대 용인에서 세력을 지녔던 권문세가(權門勢家)의 분묘에 나타나는 풍수적 측면이 주요 연구대상이 된다.
용인 지역이 음택지의 호조건(好條件)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풍수적으로 보면, 첫째, 용인 지역이 한반도 산맥의 본 줄기의 하나인 한남정맥(漢南正脈)의 정맥이 통과하는 곳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용인 지역의 산줄기인 근간(根幹)이 한반도 산경(山經)의 정맥에 해당하는 정룡(正龍)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풍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풍수의 용론(龍論), 즉 산론(山論))에서는 용의 방(旁)·정(正) 혹은 지(枝)·간(幹)을 보고 진혈처(眞穴處)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명대(明代)의 풍수서인 『인자수지(人子須知)』에 의하면, “산(용)의 가지와 줄기를 분별하는 것은 지리의 제일관건(第一關鍵)이며, 간룡(幹龍)과 지룡(枝龍)은 용의 대소(大小)를 말하는 것으로, 그 의미는 용이 지닌 역량의 경중(輕重)을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풍수론에서는 정룡에서 충신열사(忠信烈士)·고관대작(高官大爵)·현인군자(賢人君子)·인인효자(仁人孝子)가 나오는 혈이 있다고 본다. 한편 방룡은 정룡에 대하여 종속적인 용으로서 지룡(支龍)이라고도 하며, 간룡에 대한 보조룡(補助龍)의 역할을 맡게 되므로 정혈(精血)은 불가하다고 한다.
둘째, 용인의 지세를 구성하고 있는 산천의 형세가 매우 생기(生氣)가 충만한 형국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풍수에서 산세는 용이라는 표현을 쓰며, 용은 일으키고 뻗고 휘돌고 맺으며 주위와 상응하는 모양새가 생기발랄하여야 하는데, 용인의 지세는 맥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정중동(靜中動)의 역동적(力動的)인 형세를 짓고 있으니 위와 같은 생기 충만한 용의 조건을 충족하는 데 꼭 알맞기 때문이다.
풍수서에 이르기를 “기가 있는 것을 살아있다고 하고, 기가 없는 것은 죽었다고 하며, 맥이 활동하는 것은 살아있다고 하며, 거칠고 굳어 있는 것은 죽었다”고 하는데 용인의 산세(山勢)와 수세(水勢)가 빚어내는 형국은 ‘살아있는 생룡(生龍)’의 조건에 부합되고 있다.
셋째, 용인은 지질구조적으로 여러 갈래의 단층선과 그에 따른 산계가 지형적으로 중첩하여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은 풍수에서 중요시하는 장풍적 조건을 충족시키는 자연적 배경을 이룬다.
풍수서에서 말하는 복후지지(福厚之地)는 ‘사합주고(四合周顧)’라 하여 주위 사방의 산수가 두루 감싸여 좌우전후에 비거나 빠진 것이 없어야 하는데, 만약 “좌우가 비거나 앞이 휑하고 뒤가 끊어지면 생기가 바람에 흩어진다(佐空右缺 前曠後折 生氣散於瓢風)”고 한다.
용인 지역의 경우, 기지(基地)를 사이에 두고 겹겹이 감싸여 있는 산 형세는 명당지의 바람을 갈무리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다.
넷째, 용인의 산세와 수세가 매우 짜임새 있게 어우러져 합취(合聚)되는 형국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풍수의 명당 택지(擇地)에서는 산수의 취산(聚散)을 가려야 하는데, 산수가 모인 곳을 구하고 흩어진 곳은 피한다.
산세와 수세는 서로 교차되고 모여야 그 가운데에 풍기(風氣)가 갈무리되기 때문이다. 송대(宋代)의 풍수서인 『발미론(發微論)』에 이르기를, “취(娶)란 산이 교차하고 물이 모이며 풍기가 갈무리된 곳이나, 산(散)이란 산이 가고 물이 떠나 풍기가 흩어진 곳”이라고 하였다.
또한 명당지를 이룸에 있어 “산이 융결하려면 반드시 물이 둥글게 안아야 한다(山之融結 必偶水之潫環)”라고 했다. 용인의 수세 조건을 보아서도 그것은 산세를 따라서 골짜기마다 지류들이 발달되어 합류하고 있으며, 이러한 물길은 산세를 감싸 돌아서 혈을 맺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용인의 지세는 지질 및 지형적으로 풍수적 명당을 이루는 제1조건이 되는 수구(水口)를 맺을 수 있는 관쇄(關鎖) 조건을 형성하였다. 당대(當代)의 풍수서로 알려진 『설심부(雪心賦)』에서 지적하기를, “터를 고를 때는 수구(水口)를 살펴라”고 하면서 “수구는 그 긴밀함이 호리병의 목과 같은 것이 좋다”고 하였다.
또 『인자수지(人子須知)』에도 “산을 보고 땅을 찾는 법의 첫째는 수구엽(水口獵)을 먼저 보는 것이라”고 지적하듯이 수구 조건은 명당지의 결정에 있어 필수적인 요건을 이루는 것이다. 수구란 국내(局內)에 수구가 관쇄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여섯째, 용인의 풍수를 논함에 있어 용인 지역의 천혜적 자연환경의 좋음에 그치지 않고, 더욱 중요한 점은 용인을 명당지로 가꾸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도 간과할 수 없는 측면이다.
다시 말해 풍수적 환경의 결점을 보완하여 명당지로 조성하기 위한 풍수비보(風水裨補)가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후술하겠지만 이러한 사실은 용인 소재의 여러 분묘에서 확인되고 있다.
용인의 자연적 지형지세는 풍수적 명당지의 호조건을 이룰 수 있는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그 조건은 거시적으로 보아 한남정맥이라는 정룡이 용인 지역의 산줄기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 용인 지역 산세의 중첩된 구성(構成)으로 이내 국(局)을 중심으로 한 풍수의 장풍적(藏風的) 호조건을 이룰 수 있게 된 점, 용인의 수세가 산과 어울려 짜임새 있게 합취할 수 있는 조건이 됨과 아울러 수구를 맺을 수 있도록 된 점, 끝으로 터전을 명당지로 가꾸기 위한 주민의 비보적 노력 등이 지적될 수 있다.
[설화를 통해서 살펴본 주민의 음택풍수 인식]
풍수설화는 서민의 풍수적 인식 및 태도를 분석하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한 소재가 된다. 이는 서민들의 옛 분묘가 유존(遺存)하지 않아 음택적 연구 대상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민들의 문자로 된 기록 대신에 설화를 통해 영향력 있는 풍수적 인식 및 태도를 전승시키기 때문이다.
용인 지역의 각지에서 채집된 음택풍수에 관련된 설화는 포곡면과 백암면에서 가장 많이 채집되었다. 풍수설화 내용을 유형별로 나누어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유형은 풍수의 윤리적 측면을 강조한 내용으로, 10곳에서 채집되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적선(積善)하지 못한 사람은 명당 길지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설령 우연히 좋은 명당터를 얻었더라도 죄를 지었다면 발복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나타낸다.
예컨대 어떤 효자는 남의 땅에 시신을 거꾸로 묻어도 발복하였으나, 터 잘 보는 지관이었지만 생전에 적덕(積德)하지 못하여 명당을 얻지 못했다(용인시 역북동)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풍수서 『발미론(發微論)』에는 풍수적 윤리성이 다음과 같이 분명히 표현되고 있다. “감응의 이치는 천도로서, 좋은 마음을 얻는 것이 명당자리 얻는 것보다 낫다. 그러므로 터를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덕을 근본으로 삼을 것이니, 만약 그 덕이 두터우면 하늘이 반드시 길지를 응하여 줄 것이다. 그 까닭에 그 자손에게 복을 주는 것은 마음이고, 땅은 장차 따르는 것이다. 반대로 악이 가득 차면 하늘은 반드시 흉지(凶地)를 응하는데, 따라서 자손에게 화가 미치는 까닭은 그 근본이 마음에 있고 땅의 흉함이 역시 장차 부응한다. 대개 마음은 기의 주인이고, 기는 덕의 부응하는 바일 뿐이다.”
두 번째는 명당지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설화 유형으로서 총 9곳에서 채록되었다. 이런 유형에서는 금시발복지, 정승이 나는 묘자리, 용인의 8대 명당지 같은 명당지에 대한 주의 깊은 관심이 나타났다. 이는 전근대 시기 서민들의 계층 상승 기회가 매우 제한된 나머지, 풍수에 기댄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세 번째 유형은 지관에 관련된 이야기로서 총 9곳에서 채록되었다. 그 중 4개 소는 용하거나 유명한 지관에 대한 이야기였고, 반대로 엉터리 지관이나 지관의 실수에 관한 이야기도 두 곳에서 채록되었다.
지관의 말을 어겨서 명당을 쓰지 못하였거나 발복이 멈추었다는 설화도 있었다. 이러한 관심은 역시 명당 터에 대한 관심과 어울러 음택의 발복에서 지관의 중요성을 의식하는 표현일 것이다.
네 번째 유형은 특정한 산, 즉 주로 마을이 기대고 있는 뒷산(주산(主山)이 그 대상이 되는데, 그 산에 무덤을 쓰면 마을에 가뭄이 든다는 풍수 금기(禁忌)에 관한 인식이다. 이러한 유형은 총 6곳(용인시 삼가동 궁촌, 고림동 당산골, 기흥읍 지곡리, 수지읍 신봉1리, 이동읍 어비리, 백암면 백봉리)에서 채집되었다.
위의 풍수적 금기 관념은 문화 생태적으로도 해석이 가능한데, 마을 주산을 마을 주민들에게 삶의 원천이자 기반의 상징체로서 마을 구성원 모두가 소중하고 성스럽게 보전하여야 한다는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섯 번째 유형으로는 풍수적 형국에 대한 유비적(類比的) 인식이 총 6곳(용인시 삼가동, 이동읍 시미리, 포곡면 전대리·신원리, 백암면 근곡리, 원삼면 고당리)에서 나타났다. 이에 의하면 자라혈에 석물을 하니, 이것은 자라의 목을 누른 형국으로 발복을 멈추었다거나, 고양이가 닭을 해치기 때문에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고양이바위가 있어 발복하지 못했다거나, 호랑이 혈에는 자손이 성묘하면 죽는다는 인식 등으로 드러났다.
그밖에도 풍수의 욕심을 경계하는 내용의 이야기, 명당터는 때를 잘 맞춰 써야 발복한다는 시간적 요소의 이야기, 군신(君臣) 간의 계급갈등으로 기인한 단맥설화 등도 각각 한 곳에서 채록되었다.
[풍수 고문헌에 나타난 용인의 명당지]
『풍수록(風水錄)』(규장각도서번호 11636)이라는 일종의 풍수비결서(風水秘訣書) 중에는 용인 지역의 명당지에 대한 부분적인 소개가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문헌으로 주로 경기도를 중심으로 강원도와 충청도 일대의 명당에 관한 위치 지점 및 풍수 형국명과 산천 지세, 발복의 구체적 내용 등을 수록한 책이다.
이 책의 주 내용을 이루는 명당지는 지리적 위치, 형국, 안(案), 용(龍), 좌향, 수(水)의 향(向) 및 파(破), 발복 내용, 기타 인적 조건 등의 순서로 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용인편에는 14개 절(節)에 16개 소의 명당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 몇몇은 도내제일(道內第一), 일등지지(一等之地), 이등(二等)이라는 등의 급수도 매겨져 있다.
명당의 형국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는데, 주마형(走馬形)·삼룡쟁주형(三龍爭珠形)·회룡고조형(回龍高照形)·갈용음수형(渴龍飮水形)·초중행사형(草中行蛇形)·선인무수형(仙人舞袖形)·운중장대안(雲中粧坮案)·천녀무수격고안(天女舞袖形擊鼓案)·노서하전형(老鼠下田形)·생사출초형(生巳出草形)·주와안(走蝸案)·와우형(蝸牛形)·적초안(積草案)·래룡변학형(來龍變鶴形)·반월형(半月形) 등이 그것이다.
명당의 소점에 따른 부응이 예상되는 발복에 관한 내용으로서는 자손 대대로 유명한 공신이 나온다거나, 9대에 걸쳐 재상이 나온다는 땅, 문무과에서 급제하는 후손이 많이 나오고 큰 고을의 장상(將相)이 되어 임금을 받을 사람이 나오는 땅, 당대에 발복을 하고 삼대에 걸쳐 부귀를 떨칠 땅, 자손이 많이 번성할 곳, 2대에서 시작해서 7대에 걸쳐 장상이 나오는 땅 등의 언급이 있다.
아무리 좋은 명당이라도 적당한 사람이 쓰지 않으면 흉하다는 설명이 있는데,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은 자손이 멸망하나 김씨 성을 지닌 사람이 써야 2대에 걸쳐 크게 발복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또한 여기에 덧붙여 중남(仲男)의 자손은 한 사람이 귀머거리가 나오는데 명당의 동북방에 있는 돌을 깨버리면 다행히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매우 상세한 조언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