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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곽원진의 신도비. 1926년 8월에 곽원진의 후손들에 의해 비가 세워졌다. 비문은 후손 곽찬(郭璨)이 찬(撰)하고 후손인 곽영민(郭泳敏)이 전(篆)하고 후학 이의국(李義國)이 서(書)하였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을 지나는 국도 17호선의 원터마을 못 미쳐 오른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5㎞ 가량 직진하면 청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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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부. 본관은 순흥(順興). 남편은 안동권씨(安東權氏) 권석기(權錫器)이다. 안씨는 어려서부터 부모에 효도하였으며, 결혼 후에도 가난한 생계를 삯바느질과 길쌈 등으로 꾸렸고, 1857년(철종 8) 남편이 죽은 뒤에도 더욱 정성을 다하여 시부모를 공경하여 귀감이 되었다. 1872년(고종 9)에 효부·열녀로 정려(旌閭)되었다. 정려문이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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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구경(久卿), 호는 척약재(惕若齋). 아버지는 대광(大匡) 김정(金鼎)이다. 아들은 김처(金處)와 김허(金虛)이다. 아들 김처는 아버지가 명나라에서 죽자 미쳤으며, 김허는 벼슬이 부정(副正)에 이르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1371년(공민왕 20)에 실시된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로로 나섰다. 이후 전교주부(典敎注簿)가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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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거주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석여(錫汝), 호는 연농(硏農)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하여 용인현 수여 남동에서 거주하였다. 집안은 가난하였지만 어버이를 봉양하는데 소홀함이 없이 항상 곁에서 모시고 입에 맞는 음식과 계절에 어울리는 옷을 준비하는 데 온갖 정성을 다하여 용인현에서 이름난 효자였다. 1859년(철종 10) 사마시에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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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개국공신.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 남천로(南天老),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남을번(南乙蕃)이며, 형은 영의정 남재(南在), 아우는 우정승 남지(南贄)이다. 1374년(공민왕 23) 성균시에 급제, 1380년(우왕 6) 사직단직(社稷壇直)이 되고 이어서 삼척지군사(三陟知郡事)가 되어 왜구를 격퇴,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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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무신. 기개와 호기의 대장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로 출생지가 분명하지 않으나, 『용인읍지(龍仁邑誌)』 ‘충효열 인물’ 조항 중에 “용기가 매우 뛰어났으며 이시애(李施愛)를 토벌, 건주위(建州衛)를 정복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라는 기록이 있어 용인 출신임을 가늠하게 한다.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태종의 부마인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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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목원규의 정려각. 목원규의 본관은 사천(泗川)이고, 자는 문유(文有)이다. 1828년(순조 28)에 용인에서 목우석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소 몸가짐이 단정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많은 칭송을 들었다. 그가 별세한 지 18년 만인 1891년(고종 28)에 동몽교관조봉대부(童蒙敎官朝奉大夫)로 증직하여 이듬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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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광조의 묘와 신도비.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으로,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중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유교를 통해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했고, 소격서(昭格署)의 폐지를 단행했다. 대사헌에 올라 신진사류를 과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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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회헌(晦軒). 고려에서 정승을 지낸 박전지(朴全之)의 고손이며, 할아버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며, 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고,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딸이다. 아들은 영의정 박원형(朴元亨)이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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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지구(之衢), 호는 만절당(晩節堂). 증조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고, 할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며, 아버지는 병조참의를 지낸 연흥군(延興君) 박고(朴翶)이다.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따님이다. 아들은 찬성사(贊成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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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열(仲說), 호는 읍취헌(挹翠軒). 아버지는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박담손(朴聃孫)이며, 어머니는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 이이(李苡)의 따님이다. 부인은 대제학 신용개(申用漑)의 딸이고, 맏아들은 박인량(朴寅亮)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능하여 15세에 이르러서는 문장에 능통하였다. 당시 대제학(大提學)이었던 신용개(申用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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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1771년(영조 47) 과거에 급제하였다. 통덕랑(通德郞)에 올랐으나 모친께서 병으로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어 병을 돌보는 데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약재를 구하여 탕약을 해드렸다. 병세가 위독해진 뒤에는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리니 수명이 조금 연장되었다. 돌아가신 후에는 졸곡(卒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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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심대의 정려각. 심대의 본관은 청송으로 자는 공망(公望)이며, 호는 서돈(西敦),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1546년(명종 1)에 태어났으며 1572년(선조 5)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경기감사로 어가를 수행하여 공을 세웠다. 호성(扈聖) 공신에 녹훈되고 영의정에 증직되었으며, 청원부원군(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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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함흥군수를 지낸 안익(安翼)이다. 용인에서 출생하여 승사랑(承仕郞)을 지냈고,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릴 적 과천(果川)에 살았을 때, 부친이 병으로 고생하자 몸소 병구완에 전념하였다.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한강에 나가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드렸고, 산천에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상(喪)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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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에 있는 조선 중기 안홍국의 정려각. 안홍국은 조선 중기 무인으로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신경(藎卿), 시호는 충현(忠顯)이다. 1583년(선조 16년)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이순신 휘하에서 전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중 보성군수로 안골포에서 적과 싸우다 전사하였으며, 1642년(인조 20)에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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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문약(文若). 안희묵(安羲黙)[1795~1881]은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였다. 안희묵은 어려서부터 품행이 단정하고 학업에 열중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에 어긋남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독할 때 손가락을 끊어 피를 들게 하는 효행을 보였으며, 상을 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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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여중(汝中). 고려 후기의 성리학자 안향(安珦)의 21세손이다. 안희중(安禧重)[1728~1800]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743년(영조 19) 6월 그믐날 밤 폭우가 쏟아져 사당이 무너지려 하였으나 부모님은 모두 병석에 누워 있었다. 당시 16세였던 안희중은 급히 사당으로 뛰어 들어가 대들보를 붙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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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공소(孔昭). 할아버지는 어진혁(魚震赫)이고 아버지는 어사량(魚史良)이다. 어운해(魚運海)[1750~?]는 집안의 전통을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효도를 다하였다. 아버지 어사량이 등창으로 병석에 있을 때 입으로 고름을 빨아 낫게 하였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한겨울에 대추가 먹고 싶다고 하자 눈 속에서 대추를 구해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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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경백(驚百). 양숙공(襄肅公) 어세공(魚世恭)의 후손으로, 아들은 어사량(魚史良), 손자는 어운해(魚運海)이다. 어진혁(魚震赫)[1684~?]은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의 병세가 위중하자 목욕재계하고 냇가에 가서 얼음을 깨고 3일 동안 기도를 하였더니 잉어가 스스로 뛰어올라 왔다. 그 잉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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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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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문인으로서 무인을 능가하는 무예를 가지고 있었다. 야인(野人)을 정벌하여 정세를 편안히 하였으며, 중종의 즉위에 공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었으며, 이과(李顆)의 옥사를 다스려서는 정난공신(定難功臣)에 추대되었다. 또한 삼포왜란(三浦倭亂)을 토벌한 공으로 영의정에 오르기도 하였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지옹(智翁), 호는 청천(菁川). 증조부는 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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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실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초명은 경(儆), 자는 계중(戒中), 호는 서파(西坡)·방편자(方便子)·남악(南嶽). 영의정 유순정(柳順汀)의 11세손이며, 아버지는 목천현감(木川縣監) 유한규(柳漢奎), 어머니는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쓴 사주당(師朱堂) 이씨이다. 영조 대에서 헌종 대까지 살았던 학자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 몰두하여 『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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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윤행임(尹行恁)[1762~1801]은 시파(時派)의 중추적인 인물이다. 시파와 벽파(辟派)의 당쟁이 극심하였던 정조 대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나 탄핵 또한 빈번하여 자주 유배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성보(聖甫), 호는 방시한재(方是閑齋)·석재(碩齋). 조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며, 아버지는 익찬(翊贊) 윤염(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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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숙보(叔保). 윤관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문하평리 충간공(忠簡公) 윤승순(尹承順)이고, 할아버지는 좌명공신(佐命功臣) 소정공(昭靖公) 윤곤(尹坤)이며,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영천부원군(鈴川府院君) 윤삼산(尹三山)이다. 아들은 윤은로(尹殷老)와 정국공신(靖國功臣)인 윤탕로(尹湯老)이다. 딸이 성종의 세 번째 왕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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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수지(修之), 호는 계은(桂隱). 증조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李承顔)이고, 조부는 상호군(上護軍) 이정공(李靖恭)이다. 아버지는 증좌의정(贈左議政) 이원발(李元發)이며, 어머니는 성천김씨(成川金氏)로 중랑장(中郞將) 김남보(金南寶)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홍언수(洪彦修)의 딸인데 후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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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이자 의관.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청백리인 이백지(李伯持), 조부는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이수령(李守領),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이효검(李孝儉)이며 어머니는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권복(權復)의 딸이다. 부인은 윤사흔(尹士昕)의 딸이며, 아들 이원량(李元亮)을 두었다. 형제로는 이개보(李介甫)와 이우보(李祐甫)가 있다. 1457년(세조 3)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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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판서를 지낸 이광시(李光時)이고, 할아버지는 홍복도감판관(弘福都監判官)을 지낸 이중인(李中仁)이다. 아버지는 호조판서를 지낸 이사위(李士渭)이고, 어머니는 지군사(知郡事) 임세정(任世正)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대호군(大護軍) 윤보(尹寶)의 딸이었고, 사별한 뒤 판관(判官) 권경(權敬)의 딸을 둘째 부인으로 맞았다. 아들은 증이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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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지후(祗候) 이석(李奭)이고, 할아버지는 판서(判書) 이광시(李光時)이다. 아버지는 홍복도감판관(弘福都監判官) 구성부원군(駒城府院君) 충숙공(忠肅公) 이중인(李中仁)이다. 문효공(文孝公) 전신(全信)의 외손이다. 형제로는 전서(全書)를 지낸 형 이사영(李士潁)과 지주사(知州事)를 지낸 아우 이사이(李士彛)가 있다. 아들은 이백지(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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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이석형(李石亨)[1415~1477]은 세종 대부터 성종 대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김반(金泮)의 문인이다. 뛰어난 학문으로 당대 8대 문장가로 꼽히기도 하였다. 집현전학사였으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死六臣)에는 포함되지 않으며,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를 짓는 것에 그쳤다.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에 “중국은 다만 성곽(城郭)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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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차옹(次翁), 호는 졸옹(拙翁). 할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이중손(李仲孫)이고, 아버지는 판관(判官)을 지낸 이희안(李希顔)이다. 이성동(李成童)은 조선 중기 연산군 대에 활약한 문신으로 기묘명현의 산사람이다. 1495년(연산군 1) 생원으로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지평(持平)·사간(司諫)·직제학(直提學)·대사간(大司諫)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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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불린(不磷). 고조부는 목은(牧隱) 이색(李穡). 증조부는 제학을 지낸 이종학(李種學)이며, 할아버지는 이숙묘(李叔畝)이다. 아버지는 이형증(李亨增)이고, 어머니는 조아(趙雅)의 딸이다. 부인은 선산김씨로, 김관안(金寬安)의 딸이다. 아들은 좌참찬(左參贊) 이자(李耔)이다. 이예견은 성종 대에 활약하였다. 승사랑(承仕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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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이완(李莞)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때 활약한 무신으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조카이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을 도와 공을 세웠는데, 1598년(선조 31) 노량해전(露粱海戰)에서는 이순신의 전사를 알리지 않고 병사를 독려하여 대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열보(悅甫). 이정(李貞)의 손자이며, 진주(晋州) 강세온(姜世溫)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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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정종(定宗)의 열째 아들인 덕천군(德泉君)의 11세손이며, 원종공신(原從功臣) 이기헌(李基獻)과 효자 이규헌(李奎獻)의 조카이다. 이원복은 연로한 아버지를 정성으로 보필하였다.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위해 늘 곁에서 시중들었을 뿐 아니라, 길을 갈 때는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고 업고 다녔다. 아버지의 상을 당한 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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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이익은 효종 대에서 숙종 대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송시열을 추종하여 치열한 사색당쟁 속에서 노론과 성쇠를 같이 하였다. 1659년 정언(正言)이었을 때는 술 마시고 추태를 부리는 대신을 탄핵하여 강직함을 드러냈으며, 1674년 송시열이 유배된 뒤 계속된 탄핵으로 양덕(陽德)으로 귀양 갔다가,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후 1682년 송시열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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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 이재는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영조의 탕평정치(蕩平政治)에 맞선다는 이유로 자주 파직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고 만년에는 용인의 한천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는 등 정계와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희경(熙卿), 호는 도암·한천(寒泉). 진사 이만창(李晩昌)의 아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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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이종무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활동한 무신으로, 이 시기에 빈번하게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성질이 순박하고 진실하였으며, 죽은 뒤에 용인시 고기리에 묻혔다. 태종 대에는 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여 통원군(通原君)에 봉해졌으며,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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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이중인은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충숙왕 2년에 개경의 일청재(一淸齋)에서 태어났다. 소위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 한 사람이다. 본관은 용인(龍仁). 호는 진초(秦楚). 증조부는 내시낭중(內侍郎中) 이유정(李惟精)이고, 조부는 합문지후(閤門祗候) 이석(李奭)이며, 아버지는 판도판서(板圖判書) 이광시(李光時)이다. 어머니는 행주기씨(幸州奇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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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우봉(牛峯). 아버지는 참의(參議) 이유겸(李有謙)이고, 동생은 의병 이령(李翎)이다. 이핵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집안이 모두 강화도(江華島)로 피난을 가고 자신은 의병에 입대하였으나, 혼자 남은 모친을 두고 떠날 수 없어 모시고 있었다. 이듬해 광성진(廣城鎭)에 주둔하던 동생 이령과 함께 갑곶진(甲串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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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희동의 정려문. 이희동(李喜東)[1663~?]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필만으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모친이 위독하여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간병하였으나 백약이 무효이자 엄동에 밤마다 목욕재계하고 산천에 기도하였다. 그렇게 기도하기를 백 일째 되던 날 밤 꿈에 신선이 나타나서 묘방을 일러 주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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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성방(聖方), 호는 호재(扈齋). 아버지는 형조참판 임수적(任守迪)이다. 임정(任珽)[1694~1750]은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했던 문신이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한 뒤 1728년 지평(持平)에 올랐으며, 부수찬(副修撰)·수찬(修撰)·정언(正言)·부정언(副正言)·교리(校理)·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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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정몽주의 묘. 정몽주(鄭夢周)[1337~1392]는 고려 후기에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을 세우고 개혁을 주도하였다. 조준, 정도전 등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자 정몽주는 고려왕조의 명맥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자 이방원의 부하 조영규 등이 정몽주를 살해하였다. 성리학에 매우 밝았던 정몽주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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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설곡(雪谷). 할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포은(圃隱) 정몽주이며, 아버지는 이조참의 정종성(鄭宗誠)이다. 어머니는 죽산박씨로 제학(提學) 박중용(朴仲容)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박씨로 병마사(兵馬使) 박등(朴登)의 딸이다. 아들은 정윤정(鄭允貞)·정윤화(鄭允和)·정윤관(鄭允寬)이고, 사위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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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가중(嘉仲), 호는 월봉(月峰). 할아버지는 소격서령(昭格署令) 정자급(丁子伋)이고, 아버지는 병조참판 정수강(丁壽岡)이다. 어머니는 지평(持平) 김언신(金彦辛)의 딸이고, 부인은 김수연(金壽延)의 딸이다. 아들은 정응두(丁應斗)이다. 정옥형(丁玉亨)[1486~1549]은 1513년(중종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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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자는 경모(敬模). 아버지는 정재위(丁載渭)이고, 부인은 해주오씨(海州吳氏)이다. 효자였던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은 정의현(丁義顯)[1794~?]은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정성스레 모셨고, 상을 당한 뒤에는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탈상 후에도 성묘를 거르지 않았다. 정의현은 홍수가 나 성묘하기 어렵게 되자 큰나무로 개울을 막아 물을 얕게 만든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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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증조할아버지는 조육(趙育)이고, 할아버지는 사예(司藝) 조충손(趙衷孫)이며, 아버지는 감찰(監察) 조원강(趙元綱)이다. 부인은 첨사(僉使) 이윤동(李允洞)의 딸이다. 아들은 조용(趙容)이다.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한성부 중부 행교동(현재 종로구 경운동)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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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조연의 사당. 조연(趙涓)[1374~1429]은 세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1386년(고려 우왕 12)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392년(고려 공양왕 4)에 봉상대부 공조정랑에 올랐다. 조선 태조 즉위 후 별운검이 되고, 1409년(조선 태종 9)에 길주도안무찰리사 겸 길주목사가 되어 변방의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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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형조판서 최조(崔肇)이다. 1452년(문종 2)에 형조도관좌랑을 거쳐 공조좌랑·이조참의·함경관찰사 겸 순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묘소는 원래 과천시 막계동에 있었으나, 1979년에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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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한성판윤 최사위(崔士威)이고, 아들은 이조참의와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한 최선민(崔善敏)이다. 형조판서를 역임하고, 후에 이조판서를 제수받았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묘소는 원래 과천시 막계동에 있었으나, 1979년에 용인시 남사면 완장리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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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백인(白仁), 호는 소암(素庵). 충신으로 정려된 최잠(崔潛)의 후손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위독할 때는 대변을 맛보기도 하고, 자신을 대신 죽게 해달라고 목욕재계하고 기도하였다. 아버지가 목숨이 위태로울 때에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시게 하여 목숨을 연명하게 하였다. 또 어머니가 위독하자 정성을 다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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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자영(子永), 호는 소원(少原). 증조부는 황을구(黃乙耈)이고, 할아버지는 황하신(黃河信)이며, 아버지는 증좌찬성(贈左贊成) 황사간(黃士幹)이다. 아들은 황석경(黃碩卿)과 황준경(黃俊卿)이 있다. 황효원(黃孝源)[1414~1481]은 세조 대부터 성종 대에 걸쳐 활동하였으며, 특히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왕위에 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