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B03020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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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대연 |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숙명처럼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내산리의 경우 다행히 다른 마을에 비해 피해가 거의 없었다. 전쟁이 한창일 무렵 북한군은 새벽을 틈타 조용히 마을을 지나갔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산리에는 마을사람들이 퇴각하는 북한군장교를 생포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마을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가슴 아픈 일화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최재홍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보급로와 후퇴로를 차단당한 북한군이 투항하거나 대거 퇴각하는 시점이었다. 대낮인데도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모여앉아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연미산 하늘에서 새까만 폭탄이 꼬리를 물고 떨어졌다. 폭탄을 처음 본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고 한다. 굉음을 울리며 천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느 새 군복을 입은 북한군이 하나 둘 마을을 지나 무성산 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무성산을 넘으면 정안이고 정안에서 산을 타면 바로 천안 광덕사로 이어진다. 북한군은 퇴각로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만치서 장교하나가 논두렁에서 미끄러지더니 논에 빠져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다른 인민군들은 신속하게 산속으로 이동하는데 장교 한 명이 뒤쳐진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노인회장(최재홍, 호적상 1929년생, 80세)의 증언에 의하면 40여 명의 마을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북한군장교를 포위하였다고 한다. 그는 권총을 치켜들고 마을사람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요란한 쇳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고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천만 다행으로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재홍 씨는지그시 눈을 감았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 장교도 당황했던 게지”
“우리는 뭘 몰라서 그게 실탄이 들어있는 권총을 쏴대는데도 공탄이다 소리치며 여럿이 달려들었다니까”
“전쟁이라는 게 거참 몹쓸 짓이더만 그려. 아 글쎄 그 장교를 붙잡아서 꽁꽁 묶어놨는디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하더라니까”
“예에, 살려달라고요?”
“아니, 죽여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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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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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공회당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