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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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Exchange of Work |
이칭/별칭 | 길쌈두레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걸재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의 7개 지역에서 1970년대까지 일을 서로 거들어 주던 협동 노동 형식.
[개설]
명 품앗이는 공주 지역에서 공동 작업으로 행하던 전통 사회 길쌈 공동체이다. 명은 무명천을 짜기 전 상태인 실을 일컬으며, 목화로 실을 뽑는 행동을 명 잣기라 한다. 명 품앗이가 이루어지는 시기는 가을 수확이 끝난 후 겨울 동안 행하며, 봄이 되어 들일이 시작되면 쉬었다가 음력 7월 논농사가 한가로워지면 추석 전까지 시행하였다. 명 품앗이는 여인네들이 명 잣는 일을 공동으로 행하는 것을 일컫는데, 이는 품앗이 형과 공동작업 형으로 나뉜다.
[품앗이 형]
미리 품앗이 할 대상을 정하여 한 집에 하나씩 출력하여 모인 여인들이 하루 한 집의 명을 잣는 작업을 계속하는 형식이다. 목화의 재배 면적이 비슷한 경우 가능하며 차이가 많으면 이를 행하지 못한다. 차이가 많은 집이 한 집 또는 두 집이고 나머지가 비슷하면 장정 품의 반을 계산하여 곡물이나 재화로 보상(품삯)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매우 적다.
작업을 하는 공간이 넓어야 하기 때문에 일하는 집으로 옮겨가지 않고 한 집을 정하여 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을에 따라 2~3집을 정하여 시행하기도 하였다. 이 경우 단체의 규모는 7~15호 정도이며, 경작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한 마을에 2~3개의 명 품앗이 단체가 있었다. 단체는 대상을 정하여 행하는 형태이며, 대표자는 뽑지 않았다. 다만 일의 순번 관리와 품삯을 계산하는 등의 잡무를 맡는 여인은 구성원 중에서 글을 아는 여인이 있으면 글 아는 여인이, 글 아는 여인이 없으면 계산에 밝고 기억력이 좋은 여인이 맡았다.
일 하는 날 끼니는 각자 집에서 먹는 유형과 유사를 정하여 행하는 방법이 있다. 각자 먹는 경우는 시간을 정하여 각자의 집에 가서 먹고 오는 것이고, 유사를 정하는 경우는 일의 순번이 닿은 집에서 점심과 1회의 새참을 내는 정도였다. 예전에는 여인의 품삯이 별도로 정해지지 않아서 일을 한 양과 인정에 따라 보상 물품을 주는 형태였다. 따라서 노동으로 돈을 벌 기회가 없어서 유사의 품삯을 주는 형태를 구성원들이 반겨했다.
[공동작업 형]
각자의 일을 한 장소에 모여서 하지만 서로의 일을 돕거나 대행하지 않고 자기 일만 하는 유형이다. 목화 경작의 규모와 관계없이 시행할 수 있다. 삼베를 짜기 위해 삼의 실을 매는 작업도 함께 할 수 있다. 유사를 둘 이유도 없어서 모든 단체가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는 형태였다.
[명 품앗이의 민속 예능]
일을 목적으로 하는 부녀자들의 단체라서 특별한 민속 예능은 없었다. 다만 부녀자들이 일을 하면서 힘들지 않게 소리(민요)를 즐겨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단순 노동의 지루함을 달래고 번민을 잊고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다.
명 품앗이꾼 중에 소리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를 중심으로 단체가 구성될 정도였다. 명 품앗이 현장에서는 「베틀가」, 「방아질 소리」, 「부녀자 신세 타령」, 「아리랑」, 「마전질 소리」, 「화투풀이」 등의 민요를 불렀고, 놀이마당에서 부르는 「창부 타령」이나 「노랫가락」, 「청춘가」 등은 불릴 기회가 매우 적었다.
[명 품앗이 분포]
명 품앗이는 밭이 많고 논이 적은 마을일수록 흔하였다. 들이 넓고 밭이 적은 마을에서는 아예 구성되지 않고 각자의 집에서 행한 마을도 있었다. 명 품앗이가 활발히 활동한 마을은 유구읍, 신풍면, 사곡면, 정안면으로 2~5개의 단체가 있었다. 탄천면, 이인면, 반포면 등은 1~2개가 운영되었다.
명 품앗이가 없는 마을은 의당면 수촌리, 우성면 상서리, 우성면 옥성리 등이다. 명 품앗이는 1970년대 유구읍 만천리에서 마지막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직조의 산업화에 밀려 자연히 소멸되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