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018
한자 儒敎
영어공식명칭 Confucianism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학주

[정의]

강원도 철원군에서 유학 사상을 실천하고자 행해지는 학문적 활동과 의례적 행위.

[개설]

유교(儒敎)는 춘추시대[B.C. 770~403] 말기에 공자가 체계화한 유학(儒學)을 숭상하고 실천하는 종교로, 4세기경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강원도 철원 지역에 유교가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철원 지역에서 궁예태봉국을, 왕건이 고려를 건국했다는 사실에 따르면, 후삼국 시대에 이미 철원 지역에 유교가 보급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궁예왕건의 신하였던 최응(崔凝)[898~932]은 유교 경전인 오경(五經)에 밝은 인물이었다고 전해지며, 철원과 평강의 인물로 알려진 고려 시대의 문신 최석(崔奭), 채홍철(蔡洪哲) 등 철원 지역에 유교와 관련된 인물이 살았다는 사실로 볼 때, 철원 지역에 이미 유교가 전래되어 향유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교육 기관]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유교가 전개된 것은 조선 전기에 향교와 서원이 설립되면서부터이다. 향교는 국가에서 관리하던 교육기관이고 서원은 민간에서 운영하던 교육기관이다. 향교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국내의 성인(聖人)을 배향하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제를 올리고 매년 봄·가을 석전제를 지냈다. 서원에서도 나라에 공헌을 하였거나 유학에 조예가 있어 명망이 있는 선현과 선사 등을 배향하고 강학을 하여 유학을 보급하였다. 또 각 마을마다 있던 일종의 초등 교육기관인 서당에서는 유학의 내용이 담긴 기본서를 중심으로 교육하여 유학의 보급에 큰 역할을 하였다.

철원 지역에 존재했던 향교로는 철원향교(鐵原鄕校)[1568], 김화향교(金化鄕校)[1403], 금성향교(金城鄕校)[1610], 평강향교(平康鄕校)가 있다. 김화향교에 전하는 김홍락(金鴻洛)의 기문과 평강향교에 전하는 윤경진(尹庚鎭)의 기문 등으로 미루어 보면, 철원 지역의 향교가 활발하게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화향교는 해방 이후 공산치하에 폐교되었으며, 6·25전쟁으로 전소되었다. 현재 통제지역에 위치해 있어 접근할 수 없다. 금성향교와 평강향교 역시 해방 이후 공산치하에 폐교되었고 6·25전쟁으로 전소되었으며, 현재 북한지역에 위치해 있어 유적지의 상황을 알 수 없다.

사당으로는 철원 지역에 포충사(褒忠祠)[1666], 모성사(慕聖祠)[1809]가 있었고, 김화 지역에 충렬사(忠烈祠)[1650], 충장사(忠壯祠)[1656], 구은사(九隱祠)[1818]가 있었고, 평강군에 산앙제영당(山仰濟影堂)[1739], 삼청재(三淸齋), 백용단(白龍壇)이 있었다. 김화의 충열사에는 민형식(閔衡植)의 중수기가 전하고 있어 그 전말을 알 수 있다. 포충사(褒忠祠)충렬사(忠烈祠)는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시 영월의 창절서원(彰節書院)과 함께 남게 되었다. 강원도 서원 3곳 중 2곳이 철원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철원의 유교적 위치가 어떠하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이다. 현재 철원 지역에는 포충사(褒忠祠), 충렬사(忠烈祠), 구은사(九隱祠)가 남아 있다.

서당은 일제 강점기 말 철원군에 11개, 김화군에 24개, 평강군에 9개가 있었다.

[현황]

강원도 철원 지역의 유교 유적으로 현재 철원향교, 포충사, 충렬사, 구은사가 남아 있어 제향을 올리고 있다. 철원향교는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제를 올리고 봄·가을에 석전제를 올린다. 또한 철원향교에서는 철원 지역에 있는 군부대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유교와 관련된 인성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더불어 성균관유도회 철원지부에서도 유교와 관련된 충효 및 인성 교육을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유교 사상은 전통 계승과 지역민의 향토의식 및 문화적 자긍심 고취에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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