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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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褒忠祠 |
영어공식명칭 | Pochungsa Templ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금학로425번길 32[화지리 산1-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학주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665년 - 포충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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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90년 - 포충사 이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0년 - 포충사 이전 개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5년 9월 13일 - 요동백 김응하장군 묘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5호로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799년 - 포충사 정조 사액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83년 - 묘정비 |
현 소재지 | 포충사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금학로425번길 32[화지리 산1-1] |
원소재지 | 포충사 - 강원도 철원군 철원부 화전리 |
성격 | 사우 |
소유자 | 관내 유림 철원군 및 안동김씨종중 |
문화재 지정번호 | 강원도 유형문화재 |
[정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에 있는 김응하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우(祠宇).
[개설]
포충사(褒忠祠)는 1665년(현종 6) 강원도 철원부 화전리에 세워진 사우(祠宇) [사액 1668년]이다. 1683년 사우 앞에 묘정비(廟庭碑)가 세워졌는데,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쓰고 박태유(朴泰維)가 글씨를 썼으며 김수항(金壽恒)이 글자를 새겼다. 1799년 정조가 자필로 쓴 어시(御詩)를 내려 현판에 걸어 두었다. 어시는 다음과 같다. “남아성명문사이(男兒聲名聞四夷)[남아의 명성이 천하에 떨치니] 요동화고해동자(遼東華詰海東姿)[요동백 추증의 화로운 사령은 조선의 면목이다] 심하노유여인립(深河老柳如人立)[심하의 늙은 버들이 서 있는 사람 같으니] 여시장군의검시(如是將軍倚劍時)[알겠도다 장군이 검을 잡았던 옛 일을].”
광복 후와 6·25전쟁 때에는 향교가 유치원으로 쓰였으므로 포충사에 향교에 모셨던 선현의 위패를 옮겨 놓았으나 6·25전쟁 때 모두 불탔다. 요동백 김응하장군 묘비는 민간인출입통제선 안에 있던 것을 3군사령부 안으로 옮겼다가 1984년 4월 3일 현 포충사로 이전하였다. 8·15 광복 전에는 포충사에서 제례를 지낼 때 상당히 거대하였는데 전야제 때는 남자들이 싸리나무를 묶어 만든 횃불을 밝혀 축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를 거화대령(炬火待令)이라 하였다. 포충사는 1990년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다.
[건립 경위]
포충사는 요동백 김응하 장군의 무공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위치]
포충사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 산1-1에 있으며, 철원향교와 인접해 있다.
[형태]
포충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되어 있다. 서재와 요동백 김응하장군 묘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5호]와 포충사 사적비가 있다.
[현황]
포충사는 김응하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제향(祭享)은 1년에 1회 철원향교 제향 다음 날에 지낸다. 요동백 김응하장군 묘비도 사우 앞에 옮겨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김응하 장군을 배향하는 포충사는 철원 외에도 평안도 선천군[의열사]과 창성군[충렬사] 그리고 함경도[충렬사]에도 있었다.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포충사는 6·25전쟁으로 전소되었음에도 복원되어 현재까지 제향을 지내고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